허먼 밀러 에어론 의자(Herman Miller Aeron Chair)가 도착했습니다

2달반의 기나긴 기다림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6월 2일에 허먼 밀러 에어론 의자를 샀다는 요지의 포스트를 올리고 한달 반이 넘게 지났습니다. 의자를 계약한지 한 달 가까이 지나서 글을 올렸으니 두 달 반이 지난 셈입니다. 어느 날 잘 모르는 번호로 ‘의자가 도착했는데 배송해드릴까요’ 라는 연락을 받고 서는 뛸 듯이 기뻐 당연히 배송을 부탁했고 이틀이 흘러 거대한 상자가 집에 도착했습니다.

족히 1m 높이는 되어 보이는 허먼 밀러 상자에 배달, 현관이 그냥 막혀버렸습니다

트위터에서 저를 구독하시는 분이라면 아시는가 싶지만 저는 물건을 개봉하는 걸 즐거워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물건을 개봉하는 것을 정말 괴로워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개봉하는 단 한번의 순간을 최대한 음미하고 싶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보통 가족이 역정을 내서) 마지 못해 개봉하면서 만면에 미소를 띄우는 그런 타입입니다. 이번 의자도 무려 두 달 반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가까이 뜯지 못하다가 그 다음날 올 오븐 레인지를 들여놔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현관을 막을 수가 없어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허먼 밀러 에어론 C사이즈(그래파이트). 아마 당분간 금액면에서나 크기면에서나 당분간 다시 없을 규모의 언박싱
뒷면에서 보면 이런 느낌

200만원짜리 의자를 구입하는 것이 주는 압박감과 자기 암시?

얼추 200만원이 넘는 의자를 언박싱해서 상자와 가구를 피해서 방에 낑낑거리며 놓고 나서 본격적으로 앉았습니다. 187cm에 100kg가 넘는 동생(동생은 시디즈 T50 시리즈를 사용하고 있습니다)에게도 앉혀보았습니다만 “돈이 좋다” 라는 알기 쉬운 코멘트를 해줬습니다. 의자라는 가구에 200만원을 쓰게 되니 의자에 앉지 않고는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서서 돌아다니거나 침대에 눕거나 엎드려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만 의자를 바꾸고 나니 의자에 앉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첫날에는 불면증도 있었던 것도 있어서 족히 십수시간을 앉아 있었는데 허리며 엉덩이가 전혀 배기거나 아프지 않았습니다.

클래식 에어론(Aeron)이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인상을 끈 메시 좌판, 좌판과 틸팅박스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 붕 떠있는듯한 느낌이 들고 실제로 붕 떠있는 셈입니다. 다만 곡면을 그린 좌판과 그 주위의 프레임 때문에 불안하게 둥실둥실 거리지 않는 것도 하나의 묘미입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의자에 200만원을 들였는데, 그게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돈 값은 하는가? 가 문제인데(이미 어느 정도 답 나온거 같지만), 정말 편합니다. 며칠동안 앉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메시로 된 좌판에 앉을 때 마다 메시가 푸욱 들어가면서 떠있는 듯한 느낌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한 게 아니라 좌판 양옆의 프레임이 확실히 엉덩이를 감싸기 때문에 굉장히 안정적입니다. 그리고 허리와 등과 허리를 받쳐주는 등판에는 메시 말고도 요추/경추 받침이 있어 이 또한 매우 훌륭했습니다. 여담이지만 메시는 단순히 하나의 망이 아니라 UV 라이트를 비춰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등판과 좌판 모두 몸이 닿는 다른 부위마다 몇개의 다른 탄성을 갖도록 몇개의 다른 구획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 의자는 앞으로 그리고 뒤로 틸트가 되는데요, 저는 이 글을 타이핑을 할 때처럼 컴퓨터에 문장을 칠때는 앞으로 틸트를 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컴퓨터를 쓰다보면 무의식적으로 굽은 등이 되기 쉬운데 이러면 굉장히 바른 자세로 키보드와 마주할 수 있습니다. 틸팅이 되는 의자를 앉다보면 또한 무의식적으로 뒤로 기대려고 하는 습관이 생기는데 앞으로 틸트를 한 상태에서 틸트를 고정하면 ‘도망갈테면 가보라지’ 하고 화면과 키보드에 집중하게 됩니다. 유튜브 동영상을 본다거나 할 때처럼 집중이 필요 없을 경우에는 틸트 잠금을 풀고 평평하게 앉아 있으면 몸무게가 실리는 대로 편하게 기울여 봅니다. 릴랙스 하는거죠.

인구의 99%를 커버한다는 목표로 설계된 의자의 제일 큰 사이즈이기도 해서 그런가 동생보다는 약간 작지만 역시 181cm 쯤 되는 키인 저도 높이를 높이면 다리 받침이 필요할 정도로 올라갑니다. 대신 이러면 제가 쓰는 사무용 책상에 놓은 해피해킹 키보드에 딱 맞게 높이가 조절되서 키보드가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아 딱 좋거든요. 발이 좀 불안하긴 하지만. 이 문제는 발받침대(풋 레스트)를 사서 하나 놓는 걸로 해결했습니다. 강추합니다, 발받침대.

같은 허먼 밀러의 Embody나 다른 회사 제품과는 달리 뒤로 틸트는 안 함/중간 각도/완전히 뒤로 젖힌 각도, 세가지만 됩니다. 중간에 어디에서 멈추거나 고정이 안되는데 다만 이 녀석은 틸트 장력을 굉장히 세세히 조절할 수가 있어서 체중을 실어서 근육의 힘을 이용해 힘껏 뒤로 밀어야 될 정도(사실상 등받이에 기대도 틸트를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뒤로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휙휙 넘어가는 수준(사실상 등받이에 기대면 똑바로 앉아있는게 어려운 상태)까지 장력을 조절 할 수 있습니다. 틀림없이 어느 지점에서 마음에 드는 지점을 찾을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 틸트 잠금을 풀면 몸의 중심이 살짝 이동하는 것 만으로 기울여 휴식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각도를 조절할 수는 없지만 스프링과 몸이(정확히는 체중이) 알아서 각도를 조절해주는 느낌이라 흡사 어릴 때 외가에 있던 흔들 의자에 앉아서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 발받침을 갖춰놓으니 그냥 과장 조금 더 보태서 안락의자 기분이더군요. 이렇게 잠시 한숨을 돌리다가 작업에 다시 들어가거나 아니면 앞으로 기울여 더 ‘몰입’하거나 하는 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만이라면 헤드레스트가 없다와 틸트 고정 없음, 잘 쌓이는 먼지 정도

사실 몸집이 꽤 큰데(키도 그렇지만 몸무게도 꽤 나갑니다), 이 녀석 같은 경우 허먼 밀러에서 설계상 보증하는 무게가 159 킬로그램까지라 그런 제가 앉아도 부담이 없을 정도로 굉장히 튼튼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어~지간히 몸무게가 나간다고 생각하는 저지만 그래도 여유가 충분히 있고요. 좌면, 등판 등 모든 부품에서 불안함이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인구의 99%를 커버하는 제품에서 가장 커다란 C 사이즈를 가장 높여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특히 팔걸이 부분은 좌우/앞뒤/위아래로 가동합니다. 이 또한 가장 높여서 사용하니 인체공학 서적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과 같은 90도 각도로 벌린 팔꿈치를 팔걸이에 기대고 사용하는게 가능합니다. 이러면 해피해킹 키보드 같이 작은 키보드는 팜레스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굉장히 편하고 타이핑을 장시간 해도 어깨가 많이 결리지 않습니다. 왜 인체 공학 서적이나 전문가들이 이렇게 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은 자세가 만들어집니다. 이전에 쓰던 의자에서는 팔걸이가 덩치에 비해 높지 않아서 불가능 했었습니다.

포스트 하나를 칭찬에 할애하는 중인데 그럼 불만이 없느냐면 그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사소한 건데 요컨데 헤드레스트가 없다거나 아까전에도 언급했듯이 틸트 고정이 없다, 제품 이곳저곳에 먼지가 굉장히 잘 쌓인다는 점입니다.

헤드레스트가 없는 문제의 경우에는 저는 아직까지는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분들이 서드파티제 헤드레스트를 장착하는 것으로 해결을 보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아까전에도 언급한 안락의자 느낌에 머리까지 받쳐주니 잠깐 졸기도 하시는 모양이더군요. 있으면 좋고, 나쁠것은 하나 없지만 없어서 문제는 없다. 가 제 소감입니다. 뒤로 기대면 정말 편하게 릴랙스 할 수 있는 만큼 헤드레스트가 아쉽게 여겨지는 것일텐데 애당초 저는 지금까지 의자에서 고개를 젖혀서까지 쉰다기 보다는 오히려 굽은 자세가 되서 허리가 아팠던 적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나는지라 오히려 이렇게 등과 허리를 받쳐주는게 오히려 더 고맙네요. 그래도 있었다면? 그것도 좋았을 것 같습니다.

틸트 고정의 경우, 뒤로 기울여서 편안하게 작업하시는 경우가 많은 경우, 체중을 굳이 싣지 않아도 기울임 각도가 고정되기 때문에 편한데요. 이 의자가 휴식을 취하기 위한 의자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지만서도 뒤로 틸트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뒤로 기대서 체중을 가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특정 각도로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먼지 문제. 산지 며칠이나 됐다고 좌판 밑의 틸팅 박스하고 손잡이 부분, 등받이 뒷편을 꼼꼼히 먼지 털이로 청소해야 했습니다. 이걸 한 달 두 달 방치했다가는 장난이 아니겠구나 싶었어요.

때론 자기 암시가 주는 모티베이션도 중요하지

우리는 적지 않은 시간을 컴퓨터를 조작하며 보냅니다. 현대의 사무작업은 사실상 책상 머리 앞에 앉아서 컴퓨터를 조작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화를 받거나 조작하는 정도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사실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버릇이 없고 주로 침대에 눕거나 앉거나 엎드려서 생활을 해왔고 컴퓨터도 그 자리에서 해결했습니다. 그러다 데스크톱을 사용하면서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어야 했습니다만 이제야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의자라는 가구에 200만원을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실제로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로 잘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먼 밀러와 이 의자를 디자인한 돈 채드윅은 인구의 99%를 포용하는 설계라고 주장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 에어론이 맞는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허먼 밀러의 라인업에 돈 채드윅과 함께 오리지널 에어론을 설계한 빌 스텀프가 만든 엠바디(Embody)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것 아니겠습니까?

비싼 의자를 샀으니 앉아야지라는 일종의 자기 암시를 가지고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확실히 줄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게 수면 위생 측면으로 볼 때 건강한 것이죠. 그리고 엎드려 있거나 하는 생활을 안하게 되고 의자 자체가 편하니 허리를 안마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는 느낌입니다. (반면 어깨 부분은 예전만은 못해도 여전히 안마를 합니다) 그 외에도 한 일주일 넘게 사용하니 왼쪽의 틸트 조절 기능이나 우측의 텐션 조절과 높낮이 조절, 뒷면의 요/경추 지지 기능 조절, 팔걸이의 각도와 높이 변경을 자유자재로 구사해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니 기능과 조작법을 전부 외웠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나 자기 암시가 주는 모티베이션이나 효율의 향상 또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만약 저처럼 불행인지 행운인지 이 의자를 앉아볼 기회가 있으셨다면 꼭 앉아 보시고 본인에게 맞는다면 지갑과 상의를 해보시는 건 어떠실까 합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구석 구석 살펴보기

앉은 상태에서 왼쪽 아래에는 틸팅 조절 레버가 있습니다. 바깥쪽 레버는 앞으로 기울일때, 안쪽 레버는 뒤로 기울이는 경사를 조절합니다
경추와 요추를 지지하는 지지대인 PostureFit SL, 사진의 다이얼을 돌려 핏감을 조절합니다
PostureFit SL을 조절 하는 다이얼, 위 아래(높낮이)가 아니라 앞 뒤로 움직여서 몸과 밀착 정도를 조절 합니다
팔걸이 조절 레버, 처음에는 굉장히 뻣뻣했습니다 레버를 올리고 팔걸이를 위아래로 조절합니다. 좌우 양쪽에 하나씩 있으며 독립적으로 무단계로 움직입니다
좌석에서 우측 밑으로 보면 틸트 텐션을 조절하는 레버가 있습니다.
우측 팔걸이에 좌판 승강 레버가 있습니다

기타 잡담

허먼 밀러 홈페이지에서 해외 사용자들 보증 규정을 보면 12년 보증을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부품과 공임이 포함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이를 지키는 수입사는 한군데도 없습니다. 회사에 따라 1년이 지나면 공임, 출장료에 부품값까지도 받는다고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부품값은 받지 않지만 공임과 출장료는 부담해야 한다는 곳도 있고 제각각입니다. 모두가 허먼 밀러의 Dealers 페이지나 Stores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는 업체인데 그야말로 실제로는 보증은 엿장수 맘이라는 것, 그리고 팔때는 대대적으로 12년 보증을 내세우면서 팔고 나서는 말이 바뀌는게 상도의적으로 어떤가 싶은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의자는 중고로 파는 경우도 있는데 중고 제품에 대한 보증 취급도 제각각인 것이 문제입니다. 한두푼 하는 물건이 아닌데 말이죠.

그외에, 한국에서 일반소비자에게 판매되는 일반적인 에어론은 풀 옵션 장착인데, 가죽 암레스트나 스테인리스 다리 같은 고급 옵션이 있지요. 기왕 살거 조금 돈을 들일까 생각도 들고, 에어론에만 앉아보고 엠바디는 시야에 두지도 않았던게 좀 걸리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