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핀테크 혁신은 없다

제목을 이렇게 적었지만 사실 핀테크 흐름에 커다란 반감은 없습니다. 토스가 대형 사고를 치긴 했어도 저는 공인인증서로 사용하고 있었고(이걸 트위터에 올리면서 공인인증서를 옹호하게 될 줄은 전혀몰랐다고 자조했었죠) 토스 자체는 편리한 서비스니까요. 스타트업에 관해 지난번에 쓴 글도 반향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스타트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타트업의 신기한 서비스는 조금이라도 더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타입이지요.

월요일에 국민은행 창구를 갔습니다. 운이 없었다고 할지 당연한 결과라고 할지, 월초의 주말 끝나고 첫 월요일에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요행이 얼마나 부질 없는지 뼈아프게 통감했다고할지요. 그런데 한가지 비책이 있었습니다. 국민은행 어플이나 리브 어플에서 먼저 번호표를 뽑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기능을 이용해 은행에 도착하기도 전에 번호표를 끊어서 평균 대기시간 한시간 걸리는걸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은행 가기 위해 소요한 시간 만큼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죠, 창구에서 은행일을 보는 사람들은 일부 거액의 현금 입출금을 하거나 뭔가 트러블이 생긴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어르신이거나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일종의 금융 접근권 약자라고 볼 수 도 있는 사람들이 창구를 사용하는데 ‘핀테크’랍시고 은행에서 내놓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젊거나 빠릿한 사람들은 창구를 이용하는 순서와 속도마저 앞따라잡게 되네요. 이게 공평한걸까요? 게다가 제가 사정상 여러 은행의 입출금 계좌를 연달아 만들어야 했는데 비대면이 아니라 대면 창구에서 발급할때,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져온 계좌 개설 목적 증빙 서류에 개설에 필요한 서류, 인터넷 뱅킹 신청서, 각종 서약서와 체크카드 신청서 등등 종이만 스무장을 만진 느낌이었습니다. 창구에 앉아서 한시간이 족히 걸렸는데 스마트폰 비대면은 이렇게 걸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번호표 뽑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말이죠.

저는 십여년전 쯤에 누구나 늙으니 쓰기 편한 인터넷 뱅킹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중년이었던 사람은 장년이 되고 그때 장년이었던 사람은 이제 노년층이 되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은행들이 ATM마저 철수시키는 마당인지라 예전보다 큰글씨 뱅킹이니 쉬운 뱅킹이니 이런 저런 편의를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여전히 공인인증서와 씨름하느니 차라리 텔레뱅킹을 쓰겠다고 하십니다. 그 유일한 예외가 카카오뱅크입니다. 어머니는 카카오뱅크로 거래 내역을 살펴보고 이체를 하는것을 무리 없이 하실 수 있습니다.

기업은행이 이번에 i-One 뱅크 앱을 개편하면서 공인인증서를 폐지했습니다. 저는 아주 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하고 있어요. 복잡한 인증절차가 없으면 없을수록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앱들의 변화의 중심에 (연령)보편적인 접근을 위해서가 일차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핀테크 혁신이 활발해져서 젊은 사람들이 편해지는 한편, ATM이 사라지고 지점이 사라지고, 지점에 상근하는 직원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앞서 말씀드린 국민은행 말씀입니다만 입출금 창구의 대기 인원이 30명을 넘어서 대기 평균 시간이 1시간을 넘기는데 처리하는 직원은 겨우 두명이었습니다. 창구가 총 4개였는데 2개 창구는 부재중이었습니다. 이 은행 지점보다 훨씬 적은 방문객을 처리하는 적은 규모의 하나은행의 점포의 인원이 더 많았습니다.

모든 은행이 카카오뱅크처럼 될 수 없다는걸 압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신들도 늙습니다. 좀 더 쉬운 인터넷 뱅킹을, 결제 서비스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나 대개의 핀테크 스타트업은 그보다는 대출이나 보험 등 소위 돈 되는 부분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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