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사람을 갈아 만든 혁신이란 신기루

어느새 ‘혁신’이라는 단어가 곧 사람을 좀 더 효율적으로, 좀 더 기계적으로, 좀 더 경쟁적으로 갈아 넣는 것이 되어버린 것 일까요. 소위 O2O 스타트업들은 한 줌의 기술로 플랫폼을 만들고 사람들을 값싼 인건비와 경쟁으로 갈아 넣는 것으로 대부분을 메꾸는 것을 혁신입네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벤처 캐피탈로부터 막대한 펀딩을 받고 그 결과는 밸류에이션(평가액)이라는 지표로 나타나 상장도 되지 않은 회사가 얼마 가치가 있네 하며 장부상의 돈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이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뉴스를 보면 무슨무슨 스타트업이 얼마를 새로 펀딩 받았으며 밸류에이션이 얼마인지, 다시 말해서 창업자들과 투자자들의 잠정적인 재산 가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심심찮게 보도되곤 합니다만 그 플랫폼, 그 시스템 하부의 사람들은 어떤가 말입니다. 누가봐도 실질적인 고용 관계인데도 자영업자입네, 하면서 근로시간과 최저 임금을 보란 듯이 우회하며 장점이라는 IT 기술로 운전을 하는 기사에게 점수를 매겨 가차없이 해고 협박을 하고, 배달하는 기사를 실시간으로 추적해서 배달 속도가 늦어져도 쪼아대고. 디스토피아도 이런 디스토피아가 있겠습니까?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인문학 발언 이후로 한국 사회, 특히 기술 업계는 한때 인문학 붐마저 일으켰습니다. 입사 시험에서 인문 상식을 줄줄 꿰게 하거나 말이죠. 하지만 이런 오늘날의 상태를 보면 적어도 기술 업계에서 휴머니즘은 파탄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사람에 대한 공감능력과 감수성이 없는데 상식과 책 구절을 외워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물론 이들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서비스가 편리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날 주문해 그날 바로 오거나, 밤에 주문해도 새벽에 도착하는 당일배송/새벽배송도 그러하고, 서울에서 불러도 내려다 주지는 않는 지역에 사는지라 타본 적은 없지만 타다에 대해 대체적으로 의견은 호의적이었습니다. 마트와 쇼핑몰의 당일배송/새벽배송을 이용해보고 나서 마트나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횟수가 확 줄어들었습니다. 타다에 대한 반응을 생각하면 택시기사들이 타다에 이를 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택시 자체의 서비스 질 문제는 차치하겠습니다).

문제는 처음에는 최소한의 ‘척’이라도 하던 것이 없어졌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쿠팡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쿠팡맨 직접 배달을 하면서 “정규직으로 채용”을 내세웠지만 정규직인 케이스 자체가 적습니다. 그리고 배달이 폭증하니 지입 화물기사들로 대거 떼우고 있죠. 이쯤 되면 택배회사 하나 더 생긴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 싶습니다. 코스프레라도 하던 때가 그립다고 할지.

하루배송, 당일배송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을 생각해 봅니다. 한 군데서 시작하더니 두 군데, 세 군데 시작하고, 이제는 안하는 곳이 없습니다. 하루배송과 당일배송으로 사람이 얼마나 갈려나가는지 알더라도 피할 길이라면 오프라인 서점으로 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게 현실이죠. 인터넷 서점 문제만 언급해도 논문이 나올 판이니 깊게 다루지는 않겠지만 당일배송과 하루배송이 오프라인 서점에 타격을 많이 주었다는데 이견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은 인터넷 서점이 택배사를 거쳐 택배 기사들을 갈아서 오프라인 서점을 구축했듯이 O2O 스타트업들이 ‘자영업자’들을 갈아서 기존 소상공인들을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과자나 식품 생필품들 중에서 쌓아 둘 수 있는 건 온라인으로 사면 어마무시하게 싸더군요. 그런데 ‘자영업자’를 갈아서 새벽에 신선상품도 배달한다네요?

지금은 정부도 4차 산업 혁명이니 뭐니 하면서 이들에게 호의적이고, 소비자들도(솔직히 저도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호의적이지만 계속 갈등을 일으키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역시 원조인 온라인 서점의 예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도서 정가제’라는 재갈이 채워졌죠. 뭐 굳이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벤처 캐피탈의 돈을 태워가며 사람을 갈아가는, 카드로 쌓은 탑이 얼마나 오래 흔들리지 않고 버틸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아직 단 한번도 이익을 낸적이 없는 쿠팡을 위시한 O2O 스타트업들을 보면서 한면으로는 한때는 “언제 흑자 한번 내려나?” 싶었던 아마존닷컴이 생각나다가도, 다른 한면으로는 ‘닷컴 버블’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어느쪽이 되었든 이대로라면 우리는 상당한 후유증을 떠안게 될 것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Posted

in

by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