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September 2015

목소리의 형태(聲の形)

목소리의 형태(聲の形)라는 만화가 작년까지 일본에서 연재되면서, 그리고 올해 한국어 판이 나오면서 한국에서도 꽤 반향을 일으켰다. 이 만화의 초반에 주축이 되는 이야기이며 무겁게 다뤄진 것이 장애, 혹은 장애인에 대한 어린 시절의 따돌림, 그리고 그를 반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주인공은 삶의 의욕을 잃자, 자살하기 이전에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면서, 어릴적에 ‘철모르게’했던 청각장애인 여자 주인공에 대한 ‘사과’를 하는것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결국 이런 저런 굴곡을 거치면서 남자 주인공이 삶의 의욕과 희망을 발견하게 되고, 여자 주인공이 따돌림과 차별로 인한 상처를 이겨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깔끔하게 그려졌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사실 내가 국민(초등)학생일 때가 생각 나서이다. 사실 그런 따돌림이라는건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흡사 불똥이 그렇듯이 언제 누구한테 튀길지 모르는 것이기도 하다. 더 기가막힌 것은 어제 내가 당하다 옆에 친구가 당할 수도 있고, 역으로 옆에 친구가 당하다 내가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따돌림이라는 것이 이성의 궤에서 벗어난 행위다 보니 상당히 감정적이고, 비논리적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더 성가신건 나이 먹고 알만큼 안 사람들이 그러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이 그런다는 것인데, 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이 구체적으로 뭘 하는 것인지, 무엇이 잘못인지도(잘못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당하는 입장에선 자신이 왜 당하나, 왜 고통을 입는 것인가, 왜 괴로운가를 모르다 보니,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켜 보면서 고민하며 상당히 자기 비관적이 되기 쉽다. 한마디로 괴롭힘을 당하는 쪽이나 괴롭힘을 하는 쪽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른다는데 있다.

떠올려보면, 나 자신도 결코 어릴때가 유쾌하다고 생각되지 않는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 자신이 왜 그랬나 싶을 때가 있는데, 여자애를 골렸다거나 부모가 외국인인 아이를 골렸다거나. 이 작품에도 잘 묘사되어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했다지만, 결국 그 돌에 맞아 누군가 상처를 입었으며, 결국 그 화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1. 극중에서도 묘사됐지만 과거의 자길 패서라도 말리고 싶은 부끄러운 경험이다.

미숙했구나, 자신이 어리다, 어리석었다. 라는 것을 스스로 세월이 흘러 생각하면서도, 역시 극을 보면서도 느껴지지만 좀 더 책임감 있는 어른이 일찍 그걸 바로잡아 이끌어 주었다면, 나도 그 친구들도 좀 더 일찍 괴롭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자책감으로 ‘지나간 일’을 반성하지만서도, 그 잘못은 결코 지나간 일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희미하며, 사는 곳이 어딘지, 이젠 알 도리도 없는 그 친구들을 언젠가 어떤 일이 생겨서 만나게 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건 글쎄,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면 자기가 용서를 구하러 길을 떠난 주인공도, 그를 용서한 여자 주인공도 꽤나 용기 있었던게 아닐까.

이 글을 쓰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2,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야구단을 만들어 활동한다는 시사 프로그램 한 꼭지를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엉뚱한 계기로 시작한 글인데, 아무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응, 읽으면서도 좋은 이야기네’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좋은 작품이네 라고 수긍하게 된다.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란다, 다음 달에 번역본이 완간 된다.

물론 주제가 주제다보니 꽤나 무겁고 ‘불편한’ 내용일 수가 있고, 꽤나 화제에 오른 작품인데, 그래도 결국 그만큼 많이들 공감하고, 나처럼 스스로를 돌이켜 보도록 한 탓이 있지 않을까. 그래봐야 잘못한게 경감되는 건 하나도 아니고 역시 내가 겪었던 ‘경험’이 위안받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둘의 결말을 보면서3, 미래와 희망, 가능성으로 가득찬 ’다른 나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위로가 되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 마치 ‘성모’처럼 용서하고 웃으며 받아 들이는 것을 위화감 있게 생각하는 듯 하는데, 글쎄 나로써도, 그때 괴롭혔던 애들을 다시 만난다면, 솔직히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냥저냥 괜찮아, 하면서 쓱 웃지 않을까? 자기를 부정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픈 기억도 잘못한 기억도 오롯이 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내 팔에는 당시 애들이 가위를 난로에 달궈 지져서 생긴 화상자국이 있는데, 어렸을때는 얼룩처럼 남아 눈에 띄었던 것이 세월이 흘러서는 거의 표가 나지 않게 됐다. 물리적인 상처도, 감정도 기억도 세월에 의해 풍화되는구나. 그러면서도 이렇게 정말 어쩌다보니 떠올리는걸 보면 어릴때가 이렇게 중요하다. 정말. 가까운 시일에 될지는 정말 모르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이 경험들은 정말 소중하게 사용할 것 같다. 자녀 교육에 신경 좀 써야 겠다. 생기지도 않았고, 생길지도 모르는 자기 아이에게도 그렇지만, 다른 아이가 잘못하거나 피해를 입는 것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게 잘못을 그리고 아픈 경험을 반성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참 잘 그려진 작품이다.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1. 나도 주인공도 결국 자기 자신이 새로운 따돌림의 피해자가 된다.
  2. 이 글은 본디 트위터에 올린 것을 정제하여 옮긴 것이다.
  3. 전술한 대로 한국어판은 아직 완간되지 않았지만 원서를 구입해서 완결까지 다 읽었다

광고 차단(Ad blocker) 패닉

애플의 Content Blocker API에 대한 반응은 엄청났다.


오죽하면 이런 반응이 나왔는데. 사실 내가 생각해도 호들갑인 것이,

In the end, though, the kerfuffle may not have a huge impact on Facebook. The ad blockers affect Web browsing, but Forrester Researchys smartphone users spend 85% of their time in apps, which are not affected.
결국 이 난장판은 페이스북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을지 모른다, 포레스터 리서치(Forster Research)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는 사용시간의 85%를 광고 차단앱이 힘을 쓸 수 없는 앱에서 보낸다.

솔직히 사파리는 생각만큼 그렇게 자주 사용되는 앱이 아니다.  사파리 웹뷰를 권장하겠지만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호락호락 내줄 것 같지 않고. 나만 해도 대다수의 뉴스와 블로그는 웹 보다는 앱을 통해서 본다(가령) RSS 리더라던가.  많이들 알지만 앱을 낸 많은 컨텐츠 회사는 앱을 설치하는 링크를 페이지 위에 걸어놓고는 하지 않나.

오리려 나는 딥 링크가 더욱더 구글이나 페이스북을 엿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용자는 근년 무언가가 궁금하면 앱을 통해 쉽게 구글을 쓰지 않고 원하는 정보를 얻고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트래킹을 효과적으로 벗어날 것이다. 애플은 iOS 9에서 구글로 검색하지 않고도 검색창에서 이러한 앱의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만들었다. 구글도 딥링크를 통해 이를 검색 결과에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검색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기사에서 광고 차단기를 차단하는 것은 결국 사용자가 광고 차단기에 대한 욕구 자체를 잃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즉 눈엣가시 같은 광고, 사용자를 뒤쫓는 광고의 젛멸이 광고차단기에게 타격을 줄것이라고. 일단 이 사이트는 광고는 없다. 그러나 대개의 광고 차단 소프트웨어를 쓰면 내가 사이트에 인용한 트윗들이 정상적으로 표시 되지 않고, (딱히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닌) 공유 버튼이 사라져 버린다. 나는 그게 여러분에게 있어 최고의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지 않는다. whitelist를 이럴때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D Touch에 대해 생각해봄

3D터치(3D Touch)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휴대폰을 쓰는건 정말 간단하고 직감적입니다. 아직 실물을 사용해보지 않았으니 뭐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3D터치는 어떨까요. 살짝 탭하고 누르고 꾹 누르고. 이걸 들은 순간 사실 제일 염려한건 접근성입니다. 음 그러니까, 손이나 시각이 부자유스러우면 섬세한 위치나 힘 조절이 힘듭니다. 굳이 장애가 있는 분이 아니더라도 우리 엄마한테 “이걸 탭해봐”하는 것보다 “이것 살짝 눌러봐, 그리고 이건 꾹 누르고”하는건 좀 복잡하겠죠. 

지난달 24일(미국시간)은 역사적인 사건의 20주년을 맞이하던 날입니다. 윈도우95가 나온 날이었죠. GUI운영체제가 메인스트림이 된 시발점이 된 날입니다. 여기에 하나 더 하자면, 오른쪽 마우스 단추가 시민권을 얻은 날이라고 해야겠네요. 

사실 윈도우던 맥이던 이 날 이전에도 GUI운영체제는 꽤 있었지만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본격적으로 일반용으로 채용한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까지는 왼쪽 버튼만 썼고, 맥이 오른쪽 버튼이 달린 마우스(엄밀히 버튼은 아니지만)를 내놓은건 2000년대 중반의 마이티마우스 이후입니다. 그전까지는 하나가지고 썼고 단축키로 썼습니다. 당시에 제가 읽었던 윈도우95 소개책에서 윈도우95는 오른쪽 단추가 작동하는 마우스가 필요하다고 고장났다면 사라고 했던게 생각나네요. 

저는 기본적으로 마우스 오른쪽 버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버튼을 하나 더 늘리는 것은 익숙해지면 편하지만 학습의 허들이 생기고 조작의 허들이 됩니다. 버튼 하나짜리 마우스 보다 두개가 손을 움직이기 힘든 분에게 허들이 되는건 사실이고 윈도우3.1때까지만 해도 마우스 사용법을 튜토리얼로 갖고 있었는데, 거기에 “오른쪽 버튼을 눌러 뭘 하세요”라고 하는 것 또한 학습거리입니다. 실제로 나이가 드신 아버지는 여전히 어려워 하시구요.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버튼은 그 편의성으로 인해 20년간, 없어서는 안되는 녀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능으로보나 이런저런 성격으로 보나, 3D터치는 여러모로 오른쪽 클릭과 닮았습니다. 직관성에 관한 우려도 있고 저처럼 접근성에 관한 우려도 있는데 제가 읽어본 닛케이의 기사에서는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 당황하지만 익숙해지면 사용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고 느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잡스와 연계해서 직관성이 떨어진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만, 미야모토 시게루의 게임을 생각해보면 게임의 오브젝트에서 이걸 움직일수 있나? 하면 움직일수 있고 이걸 움직이면 어떻게 되나 하면 또 뭔가 변한다는 겁니다. 그게 사용자로 하여금 호기심과 동기부여, 게임의 몰입이 가능케 한다는건데요, 게임이 이걸 누르면 어떻게 될것이다. 라는 규칙성과 뭐가 나올까? 라는 의외성이 핵심입니다. 의외성을 빼고 나면 오른쪽 클릭과 다를게 없습니다. 눌러보고 싶어질 것이고 가능하면 아마 사용성을 향상시키게 될 것입니다. 

마우스 왼쪽 버튼이 20년 지난 지금도 주된 수단이듯(극단적으로 말해, 윈도우나 맥이나 마우스 버튼 하나로 여전히 쓸 수 있습니다), 아마 탭하는 것 자체도 앞으로 크게 변화가 없겠지요. 깊게 터치가 보여줄 가능성을 기대해 봅니다. 

애플이 조용하게 그러나 엄청나게 많은 것이 바뀐 아침

현지 시각으로 9월 9일 아침은 애플이 꽤나 많은 것이 변한 날이 될 것이다. 이번 애플 키노트는 나름 재미있게 봤다. 맥주 한잔 걸치면서 불꽃놀이 구경하듯 견물하니 두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여러사람들이 아이폰과 아이패드 프로의 사양을, 그리고 애플TV나 애플 펜슬 같은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실시간 검색어나 트위터 트렌드를 점령하는게 재미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정말 많은 것이 하루사이에 바뀌었다. ’취미’라던 텔레비전은 어엿한 메뉴로 승격했고(이와타 사토루씨가 돌아가신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아이폰이 그렇듯 한때는 완벽하다고 불리우던 아이패드의 크기가 커졌으며, (와콤이 눈에 빔을 켜고 노려봤을) 필압감지 스타일러스도 생겼다(그걸 보자, 역사적인 아이폰 첫 발표때 “누가 스타일러스 같은걸 원하나요?”라던 잡스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에겐 가장 우수한 스타일러스를 10개나 가지고 있는데”)카메라는 2011년 ‘스티브의 유작’ 아이폰4S이래로 무려 4년만에 800만 화소에서 올라갔다. 사실, 겉보기에 아이폰6와 비슷해 보이는 것이지만 우리가 늘 사용하는 전화기에서 가장 많이 소통하는 곳, 화면에서 이뤄지는 터치 제스처를 한바탕 갈아엎었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몇년간 탭하고 넘기고 밀고 꼬집거나 벌려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사용 개념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했다. 멀티터치를 소개하며 “우리가 특허냈어요!”라고 천진난만하게 웃다가 말년에 안드로이드(와 삼성)를 회사의 금고의 1페니까지 털어서 핵열폭격을 하자던 스티브가 생각난다. 이번엔 특허 등록 잘해뒀길 바란다.

사실 뭐 이런저런 생각이 안드는건 아니다, 가령 압력을 감지하는 터치패널이면 손을 다루는게 불편하거나(아니면 극단적으로, 지체에 장애가 있다거나) 시력에 불편함이 있다면 뭔가 그를 배려한 설정이 필요하겠구나. 라고 느꼈다.

아이패드가 커지고 강력해지고 디지타이저가 붙고 키보드가 따라오는 것을 보며 약간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클래식’인 아이패드 에어가 업데이트 되지 않은것도. 실제로 전번 제품을 사용하시는 분들 중에서 프로세싱 능력이 크게 모자랐다고 느끼시는 분은 크게 없는듯 했다. 그래설까… 오리지날 아이패드 무게와 거의 비슷한, 약13인치에 달하는 액정을 넣은 ’판때기’를 드는 느낌은 어떨까…

그리고 애플이 그야말로 밤중에 홍두께처럼 건드린 와콤과 닌텐도를 생각도 해봤다. 뭐 이런건 아무래도 좋다. 정말 중요한건 2011년 팀쿡이 정식 CEO가 된 이후로 사실상 애플의 모든것이 오늘을 기해 거진 다 뒤집어졌다라는걸 생각해보자. 한 손으로 조작해야 한다는 아이폰은 이제 옛날의 일이고 아이패드도 이제는 세가지 사이즈며, 맥 라인업은 온전히 그때 모습을 갖춘 녀석이 없다. 아이팟은 죽었고. 텔레비전과 음악에 뛰어 들었고 시계란 녀석을 팔기 시작했다.

이번 제품들이 과연 얼마나 큰 상업적인 성과를 거둘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말을 않겠지만, 팀쿡이 조금씩 조금씩 자기의 행보를 걸어나가면서 나름 자신의 애플에 대한 비전을 관철해왔고 (목하 정체중인 아이패드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준수한 반응을 얻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애플일것이다.

이날 아침, 많은 기능과 특징이 새롭게 변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변한것은 다른것도 아닌 애플이다. 그 앞길에 무엇이 있을까? 전방주시, 그리고 그저 기다려볼 뿐이다. 스티브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까? 라고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팀 쿡이 어떻게 나올까? 기다리는것도 슬슬 무리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게 애플이니까. 예전엔 안그랬나? 나이 탓인가?

푸른곰, 그리고 푸른곰의 모노로그가 걸어갈 길

푸른곰의 모노로그 10년, 동면에서 기지개를 켜며

“푸른곰의 모노로그”가 시작한지도 올해로 10년이 됩니다. 여러분이 보시는 아카이브는 제가 처음으로 태터툴스(텍스트큐브의 전신)으로 작성한 포스트이고, 사실 그 전후해서도 글이 좀 더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이 블로그를 그냥 싸이월드의 연장선 정도로 생각해서 개인사 신변잡기나 지금 생각하면 용케 이런거 올릴 생각했네 싶은 내용도 있습니다. 아무튼 도메인을 연것도 2005년 무렵이고 본격적으로 시작한것도 이즈음입니다. 그냥 간단하게 10년이라고 치죠.

과연 어디까지 다룰 것인가?

사실 이 블로그의 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건 제 블로그 처음 오륙년간 괴롭혀온 문제입니다. 내 개인사를 다루는 블로그를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주제를 담은 블로그가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죠. 결국 푸른곰과 그 뒤에 실재하는 인물은 떼어 내기로 결심하고, 개인을 위한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거의 업데이트 되지 않았다가, 세상이 변하여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로 계승됩니다. 자, 그럼 제 실체를 덜어낸 푸른곰의 모노로그는 과연 푸른곰의 어디까지를 담을 것인가? 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아카이브를 살펴보시면 제가 예전에는 꽤나 다양한 내용을 떠들었다는 것을 아실수 있습니다.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시사현안에 관한 글이 있을 정도였죠. 지금은 트위터를 포함해서 적어도 ’푸른곰’으로써는 대놓고 드러내는 스탠스는 없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말엔 정치 문제 댓글로 불판을 달구기도 했습니다. 하도 시달리다가 글자체를 꼴보기 싫어서 지워버렸던 기억이 나는군요.

의외로 최근에 와서는 그런 고민은 덜 한 편입니다. 푸른곰 블로그에는 주로 IT, 특히 애플 관련한 내용을 많이 올리게 되었고, 2009년에 들어 시작한 트위터에 ’푸른곰’이란 가면을 쓰고 비교적 자유롭게 떠들었습니다. 애니메이션 얘기도 잔뜩하고, 이런 저런 얘기를 잔뜩 했어요. 어떤 블로그 구독자께서 팔로우 하셔서 같이 얘기를 나눴는데, “혹시 이런 얘기를 해서 질리시지 않으셨나요?”라고 여쭙자, “아뇨, 저도 좋아합니다”라고 하셔서 안도하고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게 좋은 관계로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푸른곰이라는 것은 제 2000년대 전후부터 사용한 닉네임과 ID였고, 뭐 여차할때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의 인터넷으로부터 ’실제 저’를 완충시키는 벽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습니다. 저는 푸른곰이고 푸른곰은 저일까요? 사실 트위터에서 저는 자유로웠습니다. 농담을 하기도 하고, 한때는 싸웠고, 좋아하는 취미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마음껏 떠들었습니다. 전술한대로 예전에 그리고 트위터 초창기에 정치적인 문제로 하도 데여서 정치에 관해서는 섯불리 스탠스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IT도 애플도 다른 회사도 잘 있어요. 다른나라 얘기라면 또 나름 관심이 있습니다. 또 모르겠습니다. IT블로거 푸른곰을 기대하고 보신분께서 왠 신변잡기와 애니메이션 오타쿠 같은 짓거리만 하는건지 질리셨을지도. 하지만 글쎄요. 만약 제 신상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는 이상. 아마 그게 저와 가장 비슷한 모습일 겁니다. 그리고 굳이 그걸 감출 필요가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점잔떠는게 정말 옳을까?

예전에 블로그의 존재의의를 설명하며 트위터가 140자를 넘는 글을 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 드린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신변잡기가 됐던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됐던, 아니면 진지한 IT에 관한 글이 됐던, 140자로 다 끝나기에는 아까운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블로그란 매체는 누적되지만 트위터는 일순에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연히 어딘가에 옮겨서 적는게 가장 좋습니다. 어디에? 일단 저에게는 10년째 움직이고 있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뭔가 따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고 시도해봤지만 딱히 그게 효율적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미 ’인격분할’과 그 실패는 앞서 말씀 드렸듯, 한번 경험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푸른곰은 푸른곰에 푸른곰 그대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생각해봤습니다. 점잔떠는게 정말 좋을까?

물론 그러면 겉으로는 고고한 이미지를 ‘표면적’ 혹은 ’피상적’으로 지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즐거운 얘기, 좋아하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로 블로그를 하지?라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전 건강사정으로 재택 시간이 길긴 하지만 전업으로 글을 쓰는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글을 쓰지도 않습니다. 당장 이 블로그도 계속 운영비는 들어가는데 제가 얻는 수입은 제로입니다. ‘제가’ 보기 싫단 이유로 애드센스 조차 치워버린게 몇년전 일인지 기억조차 안납니다.

이후의 방향성

뭔가 거창한 얘기가 됐네요. 아마 이 블로그는 최근 얼마간 있었던 것과는 약간은 달라질 것입니다. 제가 관심 갖는 분야에 관한 글이 올라올테고, 역시 지금처럼 IT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번 7–9월 애니메이션 중에서 뭐가 재미있는데 그런 이유라던가, 작품에 관한 생각을 적을 수도 있고 그 외에 이런 저런 얘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당장 욕구 불만 환자 마냥 풀어 낼 생각은 없으므로 온통 도배되지는 않을테니, 대략 어떤 얘기를 할것 같다… 살짝 간을 보고 싶으시다면 트위터를 한번 살펴봐 주세요.

글쎄요, 당장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보진 않습니다. 일단 그럴만한 기력이 없어요. 하지만 조금씩 바뀔겁니다. 제가 지금은 망한 구글리더 시절부터 죽(아마 개중 일부는 한RSS 시절때부터 일겁니다) 구독해온 블로거 분들의 피드를 보면 ‘꽤 변했구나’ 싶을때가 있습니다. 구글때는 폴더, 지금쓰는 Feedbin에서는 태그로 관리합니다만, 예전에 정했던 태그에서 완전히 무관하게 되어버리시거나, 흔해빠진 상업성 블로그가 되거나 아니면 그냥 블로그 자체가 1년이고 2년이고 동면 상태에 빠져버린 케이스도 있었습니다. 제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건, 일단은 블로그를 하는 즐거움을 리셋, 리프레시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제가 애플 관련 블로거가 됐듯이 블로그는 퇴적하면서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도락’이 변질되어 주객전도 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더 이상 못해먹겠네하고 내팽개치지 않도록, 즐거움과 진지함을 갖춘, 빠짐없이 하나로 제대로된 푸른곰이 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해서 광고 하나 없이, 협찬이나 금품제공도 없이. 그냥 순수하게 블로그를 하고 싶어서, 그게 즐거우니까! 계속하자! 이런 순수한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10년을 마주하고 푸른곰의 블로그의 또 다른 10년을 위해 경주하려고 합니다.

부디 여러분의 이해와 응원을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

푸른곰

추신) 본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당장 래디컬하게 뭔가가 일어날것 같진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사이트 제목 아래에 있는 설명, 그것도 당분간 둘 생각이구요, 트위터의 Bio란에도 계속 (적어도 당분간은) IT블로거로 기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