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때 숙제로 작문을 하나 썼던 기억이 있다. 내 곰인형–그렇다 푸른곰에 관한 글이다– 보통 애들은 그냥 성실하게도 종이에 연필로 적어서 냈을텐데, 나는 집의 컴퓨터와 프린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컴퓨터로 작성해서 글을 써서 제출했다. 나는 그것을 무난하게 제출했는데, 그 내용을 음독해서 외할머니와 큰이모에게 읽어드리고(방송작가로 일하고 계신다),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는데 그 작문에 어찌나 감동을 하셨는지 큰이모는 당장 컴퓨터를 최신형으로 신장해주셨고 프린터를 새로 주셨다. 나는 그것을 인쇄해서 사본과 원본 파일을 외가로 보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이라는 녀석이 데이터 백업과 보존의 중요성을 그렇게 알 턱이 없었다. 외가의 이모는 어떻게 그 글을 평가하고 있을지 모르나 아버지는 그 글을 때가 될 때마다 참 괜찮은 글이었는데… 라며 아쉬워하셨고. 내가 쓰는 모든 글은 그 글을 베이스라인 삼아 벤치마킹 당했다. 유감스럽게도 나이가 먹으며 머리는 굳는 것일까? 벤치마크 결과는 베이스라인을 하회했고 나는 그 복사본과 원본을 구해서 도대체 어떤글인지 조차 알 수 없는 글에 참패를 당하는 굴욕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 글의 내용이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
최근 나는 예전의 글을 많이 인용하곤 한다. 예전의 블로그 글을 읽다보면 섬뜻할 때가 있다. 내가 이런글을 썼단 말인가. 라고 좌절스럽다. 내가 말하기에 뭐하지만 지금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라고 물으면 자신이 없다. 좋은 블로그 글, 좋은 기사를 보면 좌절하게 된다. 요즈음 심신이(특히 심적으로) 많이 지쳐서 그런 까닭도 있지만… 나는 결국 다시 한 번 과거의 글에 속박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차라리 이번에는 내가 무슨글을 썼는지 알 수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괴로운 노릇이다.
글쎄, 과거의 나를 의식하지 않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라고 생각해보자고 해보지만 쉽지 않은 노릇인것만은 사실이다. ‘환상의 작문’은 나오지 못할지라도 과거의 포스트는 나오지 못할지라도. 당장 지금의 글을 묵묵히 써나갈 수는 있을 수는 없을까. 일단 그렇게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환상의 작문은 없다.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글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