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y 2013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감상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 애니메이션 영화,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을 감상했다. 시대는 디지털이라고 iTunes로 디지털로 극장과 동시공개를 하는 독특한 흥행 방식에 힘입어 개봉일 새벽에 다운로드해서 네 번인가를 돌려서 볼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46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러닝 타임 덕택도 좀 봤다만. 줄거리부터 새로 짧게 적어보자면 순수 스포일러 그 자체니 원치 않으면 다음을 읽지 않는게 좋다.

비오는 날에는 지하철을 타기 싫어하는 남자 주인공 고등학교 1학년생 타카오는 6월 초, 서 일본이 장마에 들 무렵 신주쿠에서 JR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지 않고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 들린다. 그러다가 일본식 정원에서 한 여성과 마주치는데 글쎄 깡맥주를 마시면서 안주로는 초콜릿을 먹는 것 아닌가, 어디선가 본적이 있던가? 싶어 물어보지만 없다고 대답하며 단가를 한 구절을 읊으며 사라지는데 적어서 물어봐도 모르는 구절이다. 다음에 비가와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있다. 맥주만 먹으면 속 상하지 않느냐, 왜 학교는 빠지느냐 같은 얘기를 하다가 보니, 그럼 비가 오는 날에는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라고 일종의 암약이 생기고 말았다. 장마 전선은 동일본까지 뻗쳐 그 둘은 점점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윽고 그는 속내를 최초로 터놓는다. 구두 장인이 되고 싶다고. 그는 계속되는 지각으로 학교에서 주의를 받아가면서도 밀회를 계속한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차를 마시기도 도시락을 나눠먹기도 하면서, 사회도 직업도 모르는 그에게 있어 그녀는 비밀 그 자체로 보이지만, 단지 구두를 만드는 것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일로 보인다고 생각한 그는 재료와 구두 전문학교를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구두 만들기에 열중한다. 한편 그녀는 아침에 단정하게 차려입고도 전차에 올라타는 것을 망설이고는 공원으로 향한다. 무엇이 있는 것일까? 어느날 밤 그녀는 전화에서 타카오의 도시락을 화두로 올린다. 이제껏 맥주와 초콜릿 밖에 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사람’의 도시락만은 맛이 느껴지더라고. 상대인 남자는 이제 미각장애가 나아진것이냐면서 일을 관둔게 잘 된것 아닐까라며 퇴직은 휴직이 끝나고하자고 말한다. 그녀는 다카오의 정체를 다른 사람으로 숨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달이 바뀌어 7월 도시락의 보답을 하고 싶다며 타카오가 갖고 싶어하던 구두 제작에 관한 책을 선물한다. 타카오는 조심스럽게 여성화를 한 족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흔쾌히 구두를 던져 발을 내어주고 그는 조심스럽게 발의 본을 뜬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이젠 잘 걸을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일때문이냐는 질문에 ‘응, 여러가지로’라고 답한다. 타카오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고민은 커녕 나이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마가 예상보다 빨리 걷히고 ‘마치 스위치가 켰다 꺼진것’ 처럼 날씨가 바뀌자 그녀는 타카오가 학교를 빼먹지 않아도 되었다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면이라고 바란다. 장마가 끝나고 덥고 맑은 신주쿠교엔의 일본식정원은 자신이 늘 있었던 곳과는 같은 장소이면서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어 있었다. 한편 방학이 되고 8월이 되었을 즈음 타카오는 아르바이트에 매일을 바치고 있었다. 그 와중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점점 자신은 어디에 향해야 하는걸까, 나이는 먹었어도 집에 틀어박혀 절망하다가도 날씨가 흐리기를 기도하곤 하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낙심한다. 시간은 흘러 9월이 되고 신학기. 타카오가 등교를 했는데 그 앞에 나타난 그녀는 유키노라는 그 학교의 고전 문학 선생이었다. 전말인 즉, 유키노 선생은 한 3학년 여자 학생의 남자친구가 고백을 했다는 것에 그 여자아이에게 원한을 사서 한 반 전체가 악성 소문을 퍼뜨리고 급기야는 학부형에게까지 들어가서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어 학교를 쉬게 된 것이었고,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하라는 일부 학생의 간청도 있었지만 마음이 여린데다 학교에서 사건화 되지 않기를 바랬었고, 결국 이렇게 그녀가 직접 나타나 퇴직하게 되는 것으로 일이 정리된 것이다. 타카오는 사건의 당사자를 찾아가 따지다 그 주위의 인물들에게 된통 당하게되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신주쿠교엔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처음 헤어졌을때 단가와 답가를 읊고 그 해석을 읊조린다. ‘비가 온다면 여기에 머물러 주겠소?’ ‘비가 오지 않아도 여기에 있겠소’ 그 구절은 달리 아닌 교과서에 있었던 만요집이란 단가 구절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교복을 보고 자신이 고전 문학 선생임을 알리기 위해서 그 구절을 읊었지만 그는 그의 세계, 구두에만 몰두해 있었다. 둘이 그렇게 다시 만났을때 갑자기 벼락이 치고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쫄딱젖어 정자에 피신했지만 완전히 젖었기에 근처의 그녀의 집에 가게 되고 옷이 마르는 동안 타카오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으며 그녀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담소를 나눈다. 둘은 똑같이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중에서 제일로 행복한 순간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한 때 타카오는 그녀에게 좋아한다 고백을 하지만 얼굴을 붉힌 그녀는 넌지시 자신은 ‘선생님’이잖니라며 거절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구두없이’ 혼자 걸어가는 연습을 해왔다며, 다음 주에 시코쿠의 본가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좌절한 그는 다 마르지도 않은 옷을 갈아입고 집을 뛰쳐나간다. 그녀는 한동안 앉아 눈물 흘리며 있다가 그와 함께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마침내 신조차 신지 않고 복도로 박차고 나가 옥외 비상계단으로 뛰쳐 따라 내려간다. 비상계단 중간, 층계참에서 마주친 그녀에게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라고 철회한 다음 이뤄지지 않을 꿈이니까, 자신은 할 수 없는 인간이니까,  그냥 안되는 아이인줄 알면서도 아이 장단 맞춰준 것 아니냐면서 따져묻는다. ‘선생님’이면 그냥 학교나 가라고 하지 그랬냐면서. 마치 아까 그녀의 말을 파고 들듯이… 중간에 계속 고개를 젓기만 하던 그녀는 그의 말을 막기라도 하듯 계단의 위에서 힘껏 뛰어내리며 와락 껴안으며 말한다. 네가 매일 차려 입고도 학교에 갈 수 없어 공원에 있던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장면은 줌 아웃해서 둘이 서있는 건물과 신주쿠교엔을 보이며 암전하고, 엔딩곡과 함께 타카오는 학업과 함께 구두 만들기를 계속하고 그녀는 이사를 하며, 그곳에서 다시 교편을 잡는다. 둘은 서신을 통해서 연락이 닿는듯 한다. 눈이 내리는 정원에서 그녀로부터의 편지를 접으며 완성된 그녀의 신발을 꺼내며 언젠가 재회를 기약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새로 적고보니 별로 짧지 않구나. 아무래도 말을 줄이는 재주는 없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약 46분의 단편에 가까운 작품인데, 템포도 좋고, 메시지도 잘 짜여있다고 생각한다. 길이가 짧은 만큼 주변인물은 거의 곁가지로 쳐져 있고, 두 사람의 2인극이라고 보면 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성우(이리노 미유, 하나자와 카나)들이 하는 만큼 나름 잘 이끌어나간다고 생각한다(하나자와 카나가 27세 여성 역할을 하니 좀 목소리가 젊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절규 부분은 놀라우리만큼 감정이 이입되는 연기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사랑이 테마이지만 내가 캐치하고 싶은 메시지는 달리 있다. 첫번째로 소년인 타카오의 성장을 향한 욕구이다. 신비에 쌓인 이제 막 호감을 갖게 된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단지 사회니, 직업이니 그런것은 전혀 모르는 미숙한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만 15세의 고등학생에게 무엇이 있을까?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은 묵묵히 구두를 만드는 것 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구두장인의 꿈을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밝히며 쑥쓰럽게 구두의 본을 떠도 되겠냐고 묻고 그녀를 위한 신을 위해 조심스럽게 본을 뜨며 극 내내 그녀를 위한 신을 만들어 가면서 구두 학교를 위한 학비를 보태고 재료와 도구를 사기 위해 학업과 동시에 묵묵히 일하는 모습은 순애이기도 하지만 그의 성장을 위한 달리기이기도 하다. 그녀를 향해 애가 달는 그의 모습과 함께 그가 깨닫게 된 걷는 연습의 길을 응원 하고 싶다. 두번째로, 그녀, 유키노의 치유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깊은 트라우마를 입었다. 그녀는 메이크업에 세련된 옷을 차려입고서도 전차 승강장에 들어선 다음에도 전차를 타지 못하고 공원에 들어서서 유일하게 맛을 느낄 수 있는 맥주를 마시며 초콜릿을 안주삼아 지냈었다. 그녀는 좌절한다. 27세가 되었지만 15세의 자신보다 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다고, 지금도 있을 곳을 모르겠다고, 사실 생각해보면 한창 활기차게 활동해야할 27세의 나이가 되서 자신의 제자한테 음험한 짓을 당한다는 쇼크를 받는 것도 큰 일이지만 사실, 하루 아침에 자신이 있던 직장이나 학교, 인간관계에서 자의반 타의반 붕 떠버려서 정처없이 헤매는 것 또한 참으로 고독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주위가 돌아서서 숨을 죄여오고 가까운 연인조차 배신하고 자기가 발을 내딛고 걸을 기반이 없다는 것.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 소년이었고, 그 후유증으로 생긴 미각장애에, 한정되지만 ‘미각’을 되돌려 준 것이 그의 요리였다. 그와의 시간을 통해 그녀는 상처입은 마음을 달랬었고, 잠시나마 ‘머물 장소’를 찾았다. 미약하나마 인간관계의 ‘끈’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그에게 구원받은 것이다. 주저앉아 버린 그녀는 그곳에서 일어나 그를 의지해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둘의 서로를 향한 애뜻한 연모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랑 이야기는 전술한 대로 그 과정 자체가 가치가 있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보듬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채워주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격려해주는 그런 이야기라 나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십대의 남자 주인공의 조바심 어린 마음을 기억하고 20대 중후반의 여 주인공의 좌절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단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극 마지막에 소년의 지나가듯 하는 수줍은 고백과 서로를 따듯하게 감싸안는 포옹 밖에는 직접적으로 나오거나 하지 않아도 그 둘에게는 분명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恋(こい)」는 「孤悲(こひ)」라고 썼습니다. 고독하고 슬프다는 의미입니다. 8세기의 만엽인들───우리들의 먼 선조───이 사랑이라고 하는 현상에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연애(恋愛)」는 근대가 되어 서양에서 유입된 개념이라고 하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옛날의 일본에는 ‘연애(恋愛)’가 아니라 ‘사랑(恋)’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본작「언어의 정원」의 무대는 현대지만, 그려내는 것은 그러한 사랑(恋)───사랑(愛)에 이르기 이전의, 고독하게 누군가를 희구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와의 사랑(愛)도 유대도 약속도 없이, 먼 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개인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현 시점에선 그 이상은 전달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랑(孤悲)」을 끌어안고 있거나 끌어안았던 사람을 북돋워줄 수 있는 게 가능한 작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출처

비가 내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잔잔하게 이뤄지는 감성적인 이야기가 컴팩트하고 농밀하고 전술한대로 템포가 좋게 시계열로 빠르게 진행되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연출한 빗물이 연출하는 다채롭고 신비로운 효과가 도심과 자연속에서 연출하는 모습도 신선했고 여전한 배경과 소도구(프롭)묘사도 감탄할 만했다. 이번에 대담하게 시도한 인공적인 배경 뿐 아니라 자연적인 배경에 대한 시도 또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사랑은 완성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에서 한 여름 순애보는 지나갔다. 마침 일본은 장마가 한창이다. 신주쿠교엔 어딘가에서 둘의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질 것 같은 그런 상상을 해본다.

아, 아쉽지만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는 픽션이며 신주쿠교엔을 모델로 하고 있으나 실제 신주쿠교엔에서 음주는 금지되어 있다.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이걸 영화 끝나고 굳이 자막으로 넣다니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잔인하구나, 현실은.

ps. 역시 언젠가 구두를 전해주고 재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이폰, 안드로이드 단상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국에서 아이폰의 장점은 거의 없다. 앱의 경우 국산 앱의 경우 안드로이드가 훨씬 더 활발하게 개발 된다(유료 앱의 경우에는 모르겠으나 유료 앱 자체가 거의 없다). 안드로이드 위주의 서비스가 중심이 된다. 컨텐츠는 거의 안드로이드 위주가 된다. 한국인의 취향에는 안드로이드이다. 벨소리를 맞추어 넣는데 있어서 안드로이드에도 이래저래 제약을 넣는 일부 타국과는 달리 한국은 그냥 MP3 파일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에 아이폰과 달리 매우 편리하다. 동영상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국에서 보는 동영상 파일을 간편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갤럭시S3를 쓰면서 투박한 앱의 모습등을 제외하면 아이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약 7~8할 가량을 이미 갤럭시로도 할 수 있다. 물론 역으로 몇 할 가량은 아이폰으로 불가능한 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예전에는 안드로이드로 가능한 일이 별로 없었는데 시일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무섭게 말이다. 이제 여기에 안드로이드만의 장점을 살린 안드로이드만의 앱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플랫폼 전쟁을 할 생각은 없는데 애플 플랫폼에서는 국내 사용자들은 점점 변화하고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앱들을 보면 국산 앱들은 크게 없다는 생각이다. 최근 감탄해서 사용하는 앱을 봐도 그렇다. 꽤 새로 많은 앱들이 나오고 있고 꾸준히 다운로드 받고 구입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만큼 국내 개발자들의 수가 줄었다는 뜻 아닐런지 생각한다(최근에 사전 앱을 몇개 사고 택배 조회 어플의 인앱구매를 하긴 했는데).. 최근 몇몇 어플리케이션 특히 서비스형 어플리케이션과 무료어플리케이션의 발표를 보면 아이폰 보다 안드로이드의 발표가 우선되는것을 쉽게 볼수 있다. 당연하다. 인스타그램 조차도 페이스북에 인수되고 제일 먼저한것이 안드로이드버전 준비였으니까.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은 절반의 사용자가 안드로이드 사용자라고 밝혔다. 뭐 안드로이드의 점유율을 생각하면 상당히 아이폰이 선방하는 거지만. 얼마나 빠른 시일 안에 침투하고 있는지 알 수있다. 그러니 다른 서비스로써는 당연히 안드로이드를 노리는것이 당연하리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경직된 과금구조라던가. 여하튼 이제는 아이폰에 있으면 안드로이드에 있는것은 딱히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도 놀라운데 구글 플레이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면 조마조마해진다.

아무튼. 내가 다른 곳에선 안 살아봤으니 잘은 모르겠는데 최소한 한국에 있어서만큼은 예전에 아이폰과 다른 스마트폰의 앱의 역학구도가 역전되고 있다. 뭐 다음 WWDC에서 뭔가 혁신적으로 뒤집힐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는다만 그래도 뭔가 나오지 않는다면 위험할 것이란 것 하나만은 예측할 수 있다.

야후의 텀블러 인수 그리고 우리식의 창조경제에 관하여

야후가 텀블러를 인수했다. 대략 1조 2천억원이란다. 인스터페이퍼(Instapaper) 사용료로 3달에 3달러씩 내고 있는 마르코 아먼트(Marco Arment)는 졸지에 적거나 많거나 드디어 돈을 만지게 되게 되었다(마르코 아먼트는 텀블러의 초기 기술 개발 책임자로 텀블러의 초기를 책임지던 사람이었다 현재도 주주 중 한 명이다). 사실 텀블러의 창업자인 데이빗 카프(David Karp)도 사실 자신이 CTO로 일하던 벤처가 씨넷(CNET)에 팔리면서 그 분배된 돈을 종잣돈 삼아서 텀블러를 만들었으니 마르코 아먼트도 이 기회에 뭔가 시작할런지 모르겠다. (텀블러는 뉴욕에 있지만) 실리콘 밸리의 삶의 순환인건가. (굳이 따지고 보면 마르코 아먼트도 뉴욕에 살지는 않는다)

창조 경제다 말이 많은데… IHT 조간을 읽는데(IHT는 뉴욕타임즈 국제판이다), 데이빗 카프가 고교를 중퇴하면서 텀블러를 만들기까지, 그리고 그의 개괄적인 성격이 대략적으로 소개 되어 있길래 재미있게 읽었다. 사실 위에 CNET 얘기도 이 기사에서 발견한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 많다. 정규 교육과정을 중퇴하는 것이며, 뜬금없이 도쿄로 날아가서 일한다거나 그러다가 뜬금없이 귀국한 고교 중퇴인사람에게 CTO를 맡긴다거나 뭐 그런 자잘한 것(?)도 그렇거니와, 회사의 M&A도 드물고, M&A가 되었다고 해도 그 결실을 나누어 준다거나 그런 것 또한 매우 드문일이다. 애시당초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라던가, 기타 직원들, 구글의 기타 직원들, 뭐 그리고 이번의 텀블러의 마르코 아먼트가 조금이나마 결실을 얻을 수 있었던건 스타트업이었던 자신의 회사에서 M&A나 주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뭐 그런거 있던가, 우리나라에… 이런 제도가?

뭐라고 해야하나, 이렇게 해서 벼락부자가 되면 물론, 그걸로 펑펑 하면서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로 시드머니를 해서 펀드를 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은것도 사실이다. 데이비드 카프가 그렇듯이, 설령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잘되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그것도 임원 정도로 대박이 터질바가 아닌 이상 평생 까먹기는 글렀고, 결국 다시 무언가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뭐 설령 어떻게 잘 되는 경우가 생겨서 돈이 만에 하나 생겼다 하더라도 데이빗 카프처럼 젊은 나이에 돈이 생긴다 할지라도 회사를 차릴 여력이 되지도 않고, 위험부담도 너무 크다. 몇 천만원, 좋다, 몇 억 아니 그래 인심 쓰자, 몇 십억을 받았다 치자. 그거 가지고 기업起業 한다치자, 그걸 텀블러나 인스타그램, 트위터처럼 뒷받침해줄 회사도 없고… 망하면 그냥 끝이다. 그러니 그냥 집이나 사거나 아니면 대출금이나 갚는다. 창조경제? 소가 웃는다.

 

액티브 엑스 박멸이라는 대증요법

잠시 윈도우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예스24에서 책을 사려고 했다. 무의식적으로 장바구니에서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갑자기 화면 하단에 다운로드를 묻지 않는것 아닌가? 난 깨달았다. 내가 작업하는 브라우저가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아니라, 내가 평소에 작업하던 Chrome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한번 시험삼아서 프로그램을 설치해서 깔아 실행해 보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결제는–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때와 거의 변함없이–부드럽게 잘 되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주로 맥으로 쓰다보니. 윈도우 컴퓨터에서는 무조건 윈도우 이외의 컴퓨터가 아니면 안된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맥에서는 예스24에서는 결제를 할 수 없다.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많이들 액티브 액스를 없애면 된다고 생각한다. 액티브 엑스에 대한 혐오는 증오 수준이다. 물론 액티브 엑스는 절대악 수준이다. 하지만 액티브 엑스는 그냥 컨테이너 수준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전염병의 매개체에 지나지 않는다. 공인인증서나 안심클릭/ISP가 바이러스라면 액티브 엑스는 공기나 물, 오염된 대변, 음식, 침출물 같은 같은 것이다. 만약 그 바이러스가 공기로 옮는것 뿐 아니라 물이나 음식물로도 옮는다고 생각해보라. 물이나 음식물을 들이마셔서 바이러스가 옮으면 대책이 없다. 공인인증서/안심클릭 등도 마찬가지다. 엑티브 엑스는 바이러스로 치면 공기에 지나지 않고, 자바(물)라던지 아예 네이티브 바이너리(음식)로 전파해 버리면 대책이 없다. 진짜로 해결하려면 항바이러스제제를 써서 근원(공인인증서/안심클릭/안전결제 등)자체를 박멸하는것이 정답이다. –공인인증서와 안심클릭, 액티브 엑스에 관한 생각 중에서

우려했던 대로, 이 안심클릭과 공인인증서라는 ‘바이러스’는 결국 액티브 엑스라는 ‘매개’를 피해서 교묘하게, EXE파일로 결제플러그인을 다운로드 하는 방식으로 ‘전파’되었다. Chrome을 쓰는 윈도우 사용자들은 ‘아, 이제 크롬과 파이어폭스에서도 되니 잘 됐네’하고 불만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겠지만, 여전히 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즉, 다시 말해서 이것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매개체 하나를 막은 것에 불과하다. 진짜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근간이 되는 안심클릭이나 공인인증서 체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멀티플랫폼으로 지원되도록 다시 짜던지, 아니면 철폐를 하던지. 내 생각에는 플러그인 방식 또한 결국 충수염으로 배아프고 열나는 환자에게 그냥 타이레놀 먹이고 얼음찜질하는 정도의 요법이라고 보인다.

스마트 피로(Smart Fatigue)

요즈음 전화기를 쥐고 있자면 따분함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아이폰을 쥐어도 그렇고 갤럭시를 쥐어도 그렇고 좀처럼 흥미를 이끄는 것이 없다. 아이폰이 그러니 안드로이드를 쥐면 좀 나을까 했는데 인터페이스의 차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폰을 칫솔과 같은 일상품에 비유를 한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가위를 들고 허공에 대고 싹둑싹둑 거리는 느낌이다. 화면을 움직여보고 앱을 실행해봐도 트위터를 살펴보거나 페이스북을 들여다봐도, 웹브라우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봐도 그냥 허공을 보거나 심연의 바다를 멍하니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이 현상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싶어서 생각해보니 혁신 피로에서 따서, 스마트 피로(Smart Fatigue)라고 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락스크린을 해제하고 앱화면을 뒤지면서 이것저것 건드리면서 금방 돌아가는 현상을 보면서 한때의 용어가 생각나기도 한다. 게임 불감증이라는 말이 있는데 게임이 너무 많으니까, 게임 하나하나에 파고들지 못해서 게임의 깊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뭐 그런 얘기가 있었다. 흠. 그래서 한때는 앱이 너무 많으니, 앱 불감증이란 말을 쓰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앱 자체에 피로를 느끼고 있으니 그야 말로 피로요 허무니. 흠…

이제는 더 이상 한때는 스마트하고 참신했던 기기가 더 이상 새롭지가 않은 그런 느낌이다. 이제는 일상에 너무 녹아났기 때문인 듯하다. 정말 대단한 안경이나 시계라도 나와야 흥이 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