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우리는 사물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곤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EOS 20D(이하 ’20D’ 혹은 ‘스무디’로 호칭)는 바로 그런 사물입니다. 제가 이 녀석을 처음 사용한것은 2004년 9월의 일로 이 녀석을 가지고 2009년 3월, 오늘까지 약 3만 8천컷 가량을 찍었습니다.?
이 녀석은 저에게 있어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 고등학교 막바지의 추억(일부는 유감스럽게도 자료 보관 상의 실수로 유실되었습니다), 즉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기록이 이 녀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개중에는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여자아이의 사진도 있고, 둘도 없는 친구의 풋풋한 얼굴도 이 녀석으로 남겼습니다. 이 녀석으로 사진을 배웠고, 이 녀석으로 수많은 친구들이 ‘퍼가서’ 즐겨 주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제가 찍은 사진을 맘에들어 하기에 액자에 인화를 해서 생일 선물로 주었더니 아주 좋아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찍었던 사진 중에 ‘맑은 하늘 아래 우리 모교’라는 사진은 수백장이 넘게 싸이에서 스크랩 되기도 했었지요. 추억은 셀수가 없습니다.?
이녀석은 친구 녀석들도 따라서 여행을 다닌 카메라입니다. 미국 동부와 일본, 독도를 다녀왔고, 센서 청소를 위해서 일본 캐논 본사의 도쿄 메인 서비스 센터를 다녀오는 호사도 누렸더랬습니다. 제가 처음 사진을 배울때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길 사진기를 손에 쥐면 눈을 감고(보지않고도) 작동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지라고 주문을 한적이 있으신데, 바로 이녀석이 제가 눈을 감고도 모든 조작계가 훤하던 녀석이었습니다. 이곳저곳 항상 끼고 돌아다녔던까닭에 이곳저곳 수리하고 교체했었는데, 이번에 CMOS 센서에 이상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퇴역하게 되었습니다. 되도록이면 그대로 쓰고 싶었지만 일단 가격이 가격인지라(수리비용이 60만원 이상) 새로 구입하는 편이 낫겠다는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과 의논하고 자문을 해본 결과 20D는 보관하고, 새 기종으로 구입하기로 하였습니다.?
새 카메라(EOS 50D)가 처음으로 찍는 사진이 ‘선배’ 사진기의 퇴역사진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노릇입니다. 그간 저에게 해준 것이 많았던 카메라이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간략하게 언급하지 않는다면 무척이나 쓸쓸할 것 같습니다. 고맙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