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는 수개월전 까지만 해도 EOS-20D를 가지고 있었다. 사진기 깨나 만져봤다는 사람들도 당시 스무살도 안되었던 내가 EOS-20D의 사진 카운터를 1만 7천장을 끊었다는 사실에 ‘어이쿠’ 한소리 안하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사진을 모두 뽑아서 쌓으면 사진 한장에 0.01mm 두께라는 가정하에 1.7m라는 높이가 쌓인다.
나는 미쳤다는 소리를 불구하고 사진이 필요하다면 공연장 바닥에 엎드려 포복전후진을 했고, 무릎이 깨지건 말건 간에 무릎을 꿇고 사진을 찍어댔고, 땀이 비오듯 내리는 여름에도, 얼어붙은 금속제 보디에 동상걸릴것 같던 겨울에도 항상 이 녀석을 ‘휴대’하면서 사진을 찍어댔다. 만 칠천컷, 그것은 이렇게 실현한 수치였다.
나는 이렇게 찍은 사진을 항상 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간략히 후보정해서 당시 운영하던 ‘미니홈피’의 사진첩에 올렸는데, 하루는 한시간 동안 찍은 사진이 170매가 넘어서 그것을 추려 올리는게 아주 고역이었던 적이 있었더랬다. 분당 2.8매 꼴이니 오죽했겠는가…
어찌됐던 그렇게 나는 고3 시절과 재수시절을 사진기를 통해서 기록했다. 내가 얼마동안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클리셰로써 자주 사용하던것이 ‘솜털이 나있던 친구들의 얼굴에서 거뭇거뭇한 굵은 수염이 나기 시작했을 무렵’을 나는 사진으로 매일매일 담았다. 학교에서 만나던 매일매일, 수능을 마치고 매일매일 놀러다니던 무렵, 나는 항상 카메라로 사진을 담았고, 그것은 ‘살아있는 바이오그래피’가 되었다.
우여곡절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사진기를 꺼냈을때, 나는 생각치도 못했던 문제에 직면했다. 사진을 찍는 것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엄청난 공포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교양영어 선생이었던 Mr. Roney는 ‘블로그에 올리려고 하는데 혹시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는 요청에 쾌히 승낙하고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괜찮아 보이는 포즈를 취했더랬다.
내게 있어서 사진은 마치 펜을 들고 하는 노트 필기(note-taking)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살았던 순간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펜을 들고 일기장에 자신의 일상을 적듯-혹은 나나 다른 사람들이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듯이- 나는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이오스’의 검은 마그네슘 바디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는 것에 대한 이상한 공포감을 주었다. 이제는 너나 할것없이 가지고 있고, 역시 너나 없이 자신을 향해서 찍어 댈 정도로 익숙해진 마당에 그냥 길거리에서 컴팩트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무심코 지나갈정도로 디카에 대한 ‘공포증’이 사라진 지금이라지만, 여전히 DSLR은 그러한 대중의 ‘디카’라는 인식에서 두어 발짝 멀어져 있었고, 내가 이오스로 사진을 찍고 나면, 사진이 잘나왔는지 확인하는 내게 그거 언제 볼수 있냐는 말을 하는게 보통이었던지라 ‘대포같던’ 내 카메라와 그것을 자신을 향해 겨누던 나에게 자연스레 반감이 생긴것도 사실일테다. – 게다가 나는 매일 같이 사진을 찍어대는게 자연스러워졌던 내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어느새 나 또한 적응이 되어 버렸던 터였다.
덕분에 상대편의 거친 반응이 내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래서 어느새 이오스가 내 생활에서 멀어져갔고, 앞서도 말했듯이 플래시까지 1.5kg짜리 이오스를 눈이오나 비가오나 들고 다니던 나의 게이지도 결국은 앙꼬(Empty)를 향해 내닫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가라사대, 모기 잡는데 대포를 쓰지 말지어니, 나는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컴팩트 디카를 다시 쥐었다. 그간 우리가 똑딱이라고 폄하하던 똑딱이는 이제는 더이상 그 옛날의 똑딱이가 아녔다. 켜면 빠릿빠릿 군기 잘든 신병 마냥 전원이 들어오고 DSLR의 신속한 포커싱에 익숙해졌던 나조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경쾌한 포커싱도 생겼다. 더더욱이 최근의 추세는 고 ISO에 손떨림 보정이니 그 모두를 DSLR에서 사용하던 나에게 구색이나마 도움이 됐다.
나는 다시 불이 붙었다. 손바닥보다도 작은 보디에 날렵한 카메라로 나는 그야말로 모든것을 찍었다. 나를 찍었고, 하늘을 찍었고, 친구들을 찍었다. 화질 문제에 있어서는 고해상도로 인화를 안해본 나로서는 그 차이를 구별하기는 힘들었다. 원체 나는 스냅샷이 전문이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흔들림으로 인한 선명도 저하는 숙명이었고, 그게 또 맛이었다. 즉 다시말해서 DSLR을 꿈꾸는 많은 디지털 포토그래퍼들의 숙원인 ‘쨍한 사진’과는 정 반대였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디지털 카메라로 ‘잘 찍은 사진 한장’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수백만원의 보디를 사고 또 수백만원의 렌즈를 산다. 나 또한 그런 대상중 하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기에게 대포를 겨누고 있었것이었는지 모른다.
얼마전 친구와 샤픈에 관한 논쟁으로 한번 대판 싸운적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미안한데.. 솔직히 아마추어가 찍은 사진에 샤픈이 얼마나 들어가면 어떻길래 내가 그렇게 핏대를 올렸는가 생각하면 허허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게 결국은 우리나라 디카 유저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나는 감히 말한다. 우리가 사진을 활용해봐야 그거 전부다 출력하려면 허리가 휠터이고, 당장에 그걸 뽑아 보관하는 것 조차 일이다. 나만해도 지금 이오스를 제외하고 다른 카메라로 찍은것을 합치면 당장에 사진 라이브러리가 3만장을 넘는데, 그것들의 용도는 99% 블로그를 비롯한 웹이었다. 솔직히 기백만원짜리 카메라에 기백만원짜리 렌즈를 사봐야 ‘아웃포커스’인지 뭔지 하는 국적불명(정확히 말하면 일본에서 수입된 일본식 영어조어다… 정말 일본에서 가지가지 나쁜거 따라하는데는 일가견이 있다 우리는)의 이름을 가진 효과를 가진 샤픈 올리고 컨트라스트 올린 ‘쨍’한 사진이다.
노이즈가 얼마나 될런지 모르겠지만 그거 디씨인사이드니 레이소다니, 싸이니, 블로그니 웹에 올리면 솔직한말로 리터칭 조금만 하면 이게 이오스로 찍은건지 똑딱이로 찍은건지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은 화각이나 심도, 그리고 EXIF 정보 뿐일터. 그나마도 크기 줄이면 줄일수록 파악하기도 힘들어진다. 아마도 장담컨데 DSLR을 쓰는 사람중에서 프로페셔널이나 하이-아마추어래도 인쇄를 하거나 현상을 하면 했지, 그 사진을 원본 수준의 고해상도 파일로 웹을 올리는 사람은 Phil Askey(해외 유명 디지털 카메라 사이트 DPreview의 운영자 겸 리뷰어) 정도 밖에 없을것이다. 그나마도 우리나라 사람들 인화에 들이는 돈, 정말 아낀다. 오죽하면 3X5가 사진 인화의 기준가격일까. 4X6으로 뽑아도 크고 시원시원하고 5X8만 되도 ‘어머 주름봐, 뾰루지났네’ 그러면서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법석떠는게 한국사람들이렸다.
조그마한 카메라를 쓰면서 좋은점은 사람들이 덜 당황한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훨씬 덜 경직되고 자연스런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조그마한 몸체 덕택에 훨씬 자유로운 앵글과 그립을 사용할 수 있었다. DSLR의 무거운 몸체로 하이앵글이나 로우앵글을 사용해보시라.
솔직히 위에서 말한 ‘샤픈 논쟁’을 했던 친구가 훈수를 두기를 ‘세상 사람들이 전부다 너처럼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 정론이다, 하지만 오늘 뉴스를 보니 요번에도 경상수지가 적자랜다. 코흘리개 사진이나 이미 사진 커뮤니티에서 잔뜩 웹 엔트로피를 넓히는데 공헌을 하는 그렇고 그런 사진을 찍어대서 화면이나 코딱지만한 인화지로 감상하는데 1000만 화소를 육박하는 카메라를 지르는 것은 아무리 봐도 내 머리로는 합리화가 안된다. DSLR이 싸졌으니 기왕 하는거 DSLR로 사자는 사람 많이 봤다. 솔직히 그렇게 해서 재미본 브랜드도 있다. 내가 처음 컴팩트 디카를 샀을때 그 값이 105만원이었다. 그게 400만화소짜리 느려터진 녀석이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민첩하고 잘나오는 지금 내가 쓰는 컴팩트 디카는 값이 20만원을 조금 넘는다. DSLR이 싸진만큼, 컴팩트 디카도 싸졌다. EOS20D를 사기 조금 전에 샀던 IXUS500이 50만원이 넘었는데, EOS 20D를 쓰는 동안 컴팩트 디카가 값이 절반이 됐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말은 DSLR이 싸진 만큼 컴팩트 디카도 싸졌으니, 쓰잘때기 없는 지름하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배우던 90년대 초엽에 지금은 많이 사세가 기운 삼보컴퓨터의 회장이 말하기를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데 누구나 운전을 배우고 정비를 배울필요는 없다. 오토로 몰면 한달이면 배울 수 있을 뿐더러, 정비를 배울 필요는 더더욱이나 없고, 사정만 허락하면 뒷자리에 앉아서 편안히 앉아가면 그뿐’이란 말이 생각난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생각해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