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HHKB Studio 키보드를 받고서, 한주를 보내고 주말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책상 위의 컴퓨터와 침대 위의 노트북 컴퓨터를 오갈 때마다 930g이나 하는 키보드를 들고 왕복을 했습니다.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잘 때는 머리맡에 두고 잤네요.
저는 책상 위에서는 HHKB Professional Type-S와 로지텍 MX Master 3S를, 그리고 침대 위에서는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과 필요에 따라, 내장 터치패드와 로지텍 MX Anywhere 3S를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의 키보드 옆에는 커다란 마우스 패드가 있어, 그 위에서 MX Master를 사용 했고, 침대 위에서는 문자 그대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장점의 MX Anywhere를 아무런 받침 없이 사용했습니다.
이 키보드를 받고 나서 제가 겪은 가장 커다란 변화는 마우스나 여타 포인팅 디바이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키보드 하나로 입력은 완결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키보드가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서 예비로 한 대를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제가 왜 이 정도로 이 키보드에 빠졌는지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저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애플製 컴퓨터보다 IBM(및 레노버)製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노트북은요. 초등학생 때부터 ThinkPad를 사용했습니다. 그 당시에 그 노트북에는 UltraNav(터치패드와 겸용인 Track Point)가 없고 Track Point만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평생에 걸쳐서 몇 대의 IBM과 Lenovo ThinkPad를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적응을 못하는 포인팅 스틱에 대한 저항이 전혀 없었습니다. 평생 쓴 녀석이니까요.
그리고 키보드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2006년에 HHKB Professional 2 구입 이래로 30대 후반의 인생의 절반 가량을 HHKB라는 특수한 배열의 키보드를 쓰며 보냈습니다. 여기서 정전용량 무접점이니 기계식이니 하는 의론은 의미가 없습니다. 애당초 오리지널 HHKB는 후지츠에서 제조한 멤브레인 키보드였고, 정전용량 무접점으로 바뀌게 된 것도 후지츠가 멤브레인 키보드 제조를 중단하면서 적당한 방식을 찾다 걸린 것이거든요. 그러한 사정이 어찌되었던 간에 저는 HHKB 레이아웃을 거의 반 평생 사용했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HHKB Studio는 거기에 매우 우수한 스위치와 키캡을 사용하고 있어 타건감이 매우 뛰어납니다. 또, 마우스 클릭 버튼의 경우 ThinkPad X1 Yoga의 왼쪽과 스크롤 버튼을 채터링이 생길 정도로 혹사했는데 HHKB Studio의 경우, 단순한 버튼이 아니라 Gateron제 로우 프로파일 갈축 스위치를 채택했습니다. 이 말인 즉슨 몇 년은 충분히 맘껏 사용해도 지장이 없다는 얘기겠죠.
이런 키보드가 유무선 겸용인데다 윈도우는 물론 맥과 아이패드에서도 완벽하게 동작하는 가운데 4대의 기기를 오갈 수 있습니다. 제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 키보드를 들인 이후로 웹 서핑을 할 때는 그냥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서 손가락만 까딱거리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편하고 쾌적한지 모르겠습니다. 트랙볼이 유행인데, 이건 트랙볼보다도 손을 덜 움직입니다. 그러다가 타이핑을 할 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커서를 움직이던 손을 움직이지 않고 바로 타이핑을 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편한 것인줄은 Track Point로 진즉에 알았지만, 요즘 들어 새삼 다시 체감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