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 에반게리온이 추가 되었을때, 트위터에서 (적어도 제 주위에선) 사방팔방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에반게리온을 물리적으로 볼 기회가 거의 없었을 젊은이들이 실시간으로 트위터로 감상을 올리는걸 보면서 서로 히죽히죽 거리며 네타바레를 참기 위해 노력하곤 했죠. 저도 기회가 기회인지라 다시 쫙 봤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제 머릿속의 에반게리온은 처음 보았을때 불법 다운로드 해서 본, 저화질의 모습인지라 넷플릭스에서 트는 것처럼 Full HD에 리마스터링된 영상을 보노라니 Fly me to the moon이 사라진 것 이상의 어색함이 있더군요.
제가 에반게리온을 본게 언제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2000년 전후라고 생각됩니다. HFC 모뎀을 달았을 무렵이지 않을까 싶은데 기억하시는 분 아시겠지만 잘 해야 8Mbps(1MB/s) 정도 나오는 물건이었죠. 비록 저화질이라 할지라도 26화의 TV 애니메이션 전편을 다운로드 받아 보는건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올바른 것을 구하는 것도 그렇고 구하더라도 받는데 시간이 들어갔죠.
뉴스나 신문기사 따위에서 초고속 인터넷이나 모바일 브로드밴드에 대해 설명을 할때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 한편을 다운로드 받는데 n초(혹은 n분) 걸린다”라는 말이죠. 마치 “여의도의 면적” 같은 추상적인 표현입니다(솔직히 여의도가 얼마나 큰지 아시는분 얼마나 계십니까?), 솔직히 장편 영화를 다운로드 받아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영화 한편이라는 잣대도 사용된 코덱이나 해상도, 화질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한물 갔다고 생각하는 것이 솔직히 요즘, 넷플릭스나 왓챠플레이, (글쓰는 시점에서 종료가 예정되어 있는)푹(pooq) 같은 서비스가 있으니 다운로드 받는게 더 번거로운 실정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나요? 그러면 애니플러스나 애니맥스는 물론 이들 애니를 한군데에 모아둔 라프텔이라는 서비스도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현지 방송을 쫓는다면 지오블록을 건너서 아베마TV나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을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전 같으면 영화를 보려면 당나귀에서 토렌트, 아니면 웹하드를 써야했지만 이제는 그냥 사이트에 들어가서 스트리밍 버튼만 누르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최신 영화를 사거나 빌려 볼 수 있는 방법도 있고요.
분명 오늘날 이렇게 영상을 즐기는 것은 2000년대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법입니다. “주문형 비디오”가 있을 것이라고 90년대부터 말을 해왔지만 우리 생활에 이렇게 자리 잡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인터넷의 사용방법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는 지난번에 기자들 집에 특수한 공유기를 놓고서 대부분의 경우 100Mbps 이상의 인터넷이 필요 없고 좀 더 빠른 스트리밍 등을 내걸면서 기가급 인터넷을 권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필요가 없다는 기사를 올린바가 있습니다.
5G 시대랍니다. 1Gbps 가까이 나오는 속도를 집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즐길 수 있다는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시큰둥하네요. 이해가 안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거 어디다 써먹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