쿄애니 “먹고 살수 있는 인재를” 업계 상식을 뒤집는 고용과 임금

35명이 희생된 교토 애니메이션 제1 스튜디오의 방화 살인 사건은 국내외의 팬에게 슬픔을 줌과 동시에 추도의 목소리와 지원의 움직임이 매일같이 늘고 있다. 거기에는 작품의 팬임과 동시에 ‘만든 이’에 대한 강한 마음이 있다. 쿄애니는 어떤 스튜디오였나?

질이 높고 정성들인 작품 만들기를 지지해온 것은 쿄애니의 인재 육성 및 노동 환경이었다. 히카와 류우스케 메이지 대학 대학원 특임교수(애니메/특촬 연구)는 “도쿄 1극 집중으로 외주/프리랜스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있어 교토에 거점을 두고 정상적인 고용으로 영상 퀄리티의 향상과 안정화를 행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브랜드화 되는 계기가 되었고, 지방 스튜디오(도야마현의 P.A. WORKS 등)가 여러개 설립되는 마중물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1981년 창업, 도쿄의 제작회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던 핫타 히데아키 사장의 부인 요코 씨가 근처의 주부들을 모아 셀 원화에 색칠하는 “컬러(仕上げ)” 공정을 하청받으며 시작, 이후에는 작화와 연출, 디지털 처리까지도 손 대게 되었다.

작품 만들기를 위해 취재에 협력해 스탭과도 친교가 있는 교토문화박물관 학예과의 모리와키 기요다카(森脇清隆) 영상 정보실장에 다르면 핫타 부부는 스태프를 “부모로부터 자식들을 맡고 있는 마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완전 성과제로 신인이라면 월 수입 수만엔이라는 저임금/장시간근로가 문제시되어 온지 오래된 업계에 있어서 핫타부부는 애니로 먹고 살 수 있는 인재를 사내에서 키우는 것을 목표로 정사원으로 채용해 안정적인 수입을 보증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하청에서 벗어나 오리지널 작품에 힘을 들이게 되었다. 11년에는 “KA에스마문고”라는 출판사업을 일으켰다. 원작의 권리를 가진 출판사가 버는 것이 아니라 원작도 자사에서 충당해서 “현장에서 땀을 흘린 사람들이 보답 받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생각에서부터 였다. 방화 사건은 쿄애니 자사 발 히트작이 계속해서 태어나서 만범순풍의 시기에 일어났다.

모리와키씨는 방화의 현장이 된 제 1스튜디오를 방문해본 적이 있다. “육아중의 스태프를 위해서 장난감들이 놓인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스페이스가 있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재능을 길러내기 위해 일하기 쉬운 환경을 정비했다. 그 결과 여성도 다수 남아, 여성 스태프가 많은 것은 쿄애니의 특징 중 하나다.

09년 히트작 ‘케이온!’은 감독, 캐릭터 디자인, 각본 등 메인 스태프가 전부 여성. 주인공 여고생들은 이상할 정도로 가느다란 다리나 커다란 가슴이라고 하는 애니에 있을범직한 남성 시선의 체형이 아니라 건강적인 몸이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사춘기의 아름다움이나 귀여움을 표현했다. 속편이나 영화판도 만들어질 정도의 히트에는 여성팬의 공헌도 컸다.

“모두가 한데 모여 만든다” 는 핫타 사장이 잘 사용하던 말이다. 배경을 만들기 위한 취재 로케에 동행했던 적이 있던 모리와키씨는 “감독이나 미술담당 등 전문을 넘어서 의견이 활발하게 교환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한다.

TV 애니메이션 “빙과”(12년)의 원작자이자 작가인 요네자와 호노부는 사건을 맞고 쓴 블로그에 로케이션 헌팅에 동행했던 추억을 적었다. “여기가 소설의 이미지에 맞는 장소입니다 라고 말했던 때, 제작진의 분들의 눈의 색이 바뀌어 저는 어정쩡하게 접근하지 못할 진지함을 가지고 자료를 모아주셨습니다.”

TV 애니메이션 “타마코 마켓”(13년)의 무대였던 데마치 야나기 상점가(교토시 카미교구)의 꽃집 “꽃의 봄바람”. 카메이 미치마사 亀井道正 점장은 “10명 이상의 스태프들이 와서 꽃의 반입이나 청소의 방법까지 세세히 취재해 가셨죠”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생화에 함께 멀리서 온 신비스러운 새가 꽃의 사이에서 튀어나와 주인공 타마코와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이야기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온다니”. 놀랐던 것은 그 후 국내외부터 팬이 상점가를 방문해왔다는 것이다.

“사건을 믿을 수 없다.” 라고 카메이상은 말한다. 지금은 연일 팬이 헌화대에 바칠 꽃을 사기 위해 온다. “피해자에는 여성이나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고 들었는데 헌화대의 꽃에는 귀여운 꽃이나 예쁜 색을 한 꽃을 둘까요?” 라고 손님에게 권하면서 꽃다발을 만들고 있다.

스태프에 존경의 뜻

쿄애니 작품은 팬에게 있어 스태프의 ‘얼굴’이 보이는 애니였다. 대형 스튜디오와는 달리 소수정예의 가족경영같은 스타일, 예를 들어 “케이온!”과 “타마코 마켓”의 주요 스태프는 거의 같아, 팬은 스태프의 이름을 기억하기 쉽다.

“팬은 작품의 엔드 크레딧에 나오는 이름을 한명씩 기억해 “만드는 이”를 존경해 작품의 팬으써만이 아니라 애니메이터의 팬이 되어갑니다.” 라고 말하는 메이지대에서 애니메이션 문화론을 가르치는 레나트 리베라 루스카 강사(애니메이션 프로듀서). “해외의 열심인 팬들은 애니메이터의 정보를 일본어로 모아 공유합니다”. 국내외에서 추도의 목소리가 매일같이 느는 것도 “작품을 넘어서 스태프에 대한 친근감이나 존경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

쿄애니의 지명도는 국내외에 널리 알린 작품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06년)이다. 엔딩곡에 맞춰 캐릭터가 절도있게 움직이며 춤추는 ‘하루히 댄스’가 유행, 당시 개설된지 얼마 안된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는 ‘춤추어 보았다’ 라는 제목을 단 동화가 전세계에서 업로드 되었다. “쿄애니는 캐릭터의 심정을 나타낼때 말 뿐만이 아니라 배경이나 구도에도 섬세하게 표현한다. 그것은 언어나 문화를 넘어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고 리베라 강사는 말한다.

(아사히 신문 전자판 7월 30일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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