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와 파랑새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여러번 본 작품입니다. 네번인가 다섯번인가 봤습니다. 아시는 분께서 처음 볼 때와 두번째 볼때의 시각이 다르게 보인다고 하셔서 두번째 관람을 했고 개인적으로 빠뜨린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서 이후로 몇 번 더 본 겁니다. (결국 VOD까지 포함하면 7번을 보게 됩니다)
고등학생, 특히 고3이라는 시기는 정말 부침이 심한 시기입니다. 우선 개개인이 모두 다른 진학이나 취직이 가로막고 있죠.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3년 이상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과 헤어져서 (대개는) 전혀 모르는 타지에서 생활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그러지 않아도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이 더 심해지기 나름이죠. 제 개인적인 경험부터 말하자면 이제 이 친구들과 전부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지더군요.
하물며 미조레와 노조미는 3년이 아니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함께한 단짝입니다. 미조레에게 있어서 노조미는 자신에게 없는 활발함과 개방적인 성격을 가진 존재입니다. 극 초반에 리즈와 파랑새 동화를 보여주면서 노조미는 “우리들 이야기 같다”고 말을 하는데 미조레의 잔잔한 일상에 천진난만하고 활발한 파랑새인 노조미가 찾아오면서 생기가 돌고 나날이 즐겁습니다. 노조미를 따라 취주악을 시작하고 그녀에게 인정받기 위해 음악도 열심히해서 ‘오보에의 에이스’라고 불릴 수준이 됩니다. 초반에도 나오지만 미조레는 노조미를 늘 쫓아다니며 미조레 이외의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틈을 비집고 들어오려 노력하는게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중 하나인) 리리카구요.
두번째 볼때의 시각이 달라진다는 자세한 내용을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저 나름대로 확실히 두번째로 보면 다르게 보이는게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실제로는 결국 두 사람이 본래 생각했던것과는 달리 파랑새는 미조레, 리즈가 노조미라는게 드러나죠. 리즈는 파랑새를 가까이 의식하면서 놓아주지 않고 함께 하고자 합니다. 리리카는 극중에서 노조미와 3학년 친구들 외에 접점을 갖는 몇 안되는 인물인데 저는 미조레가 쌓여있는 폐쇄적인 마음의 벽을 리리카가 무너뜨리는 드라마의 중요한 역이라고 생각합니다(리리카가 좋아서 더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리리카와 더블리드 후배들을 미조레가 풀에 초대한다고 하니 잠시 보인 노조미의 흠찟하는 동작이나 리리카와 함께하는 오보에 합주 소리를 들으면서 잠시 보인 뭔가 심상찮은 표정은 역시 두번째 관람에서 “아 그랬던건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와서 보면 하나의 전조 내지는 암시였던 것 같아요.
극중 동화에서 리즈를 좋아해서 떠나기를 주저하는 파랑새를 놓아주는 리즈처럼 노조미는 ‘좋아해 허그’를 하며 ‘노조미의 모든 것이 좋다’는 미조레의 전신전령을 담은 ‘좋아해’ 고백을 “미조레의 오보에가 좋아”라면서 조용히 거절하죠. 그리고 돌아가며 회상에 잠기는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요. 미조레가 연주한 리즈와 파랑새 3악장은 ‘사랑하기에 내린 결단(愛ゆえの決断)’이었죠. 노조미 또한 미조레가 좋고 잘되기를 바라지만 언제까지나 자신의 뒤를 쫓느라 미조레 자기의 능력을 썩히지 않기를 바랬을겁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의 갈등을 보노라면 같은 쿄애니에서 애니메이션화한 빙과가 떠오릅니다. 쿠드랴프카의 차례에서 “절망적인 차이에서 기대가 태어난다.” 였나요. 빙과와 유포니엄은 큰 줄기에서 능력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능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갈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레이나와 카오리의 솔로 경쟁이라던지, 쿠미코 입학전의 취주악부의 갈등이라던지. 빙과의 그것과 비슷하게 이 작품 자체만을 놓고보면 노조미가 니이야마 선생이 음대에 미조레 홀로 추천한것을 보고 열등감을 느끼는데, 막바지의 ‘사랑하기에 내린 결단’ 연주를 통해 못박히듯 움직일 수 없는 미조레와의 격차를 깨닿게 되죠. 그렇게 내린 생각이 거울처럼 자신을 쫓는 미조레를 새장처럼 속박하고 있다는 결론이었죠.
다시 말하지만 그걸 뼈아프게 깨닿게 된게 하이라이트의 연주였을테고요. 그야말로 사랑하기에 내린 결단이기에 아름답고 고고합니다. 그것이 노조미의 미조레에 대한 사랑의 형태였을테죠. 미조레는 그런 노조미의 결단을 존중합니다. 그것이 역시 노조미에 대한 사랑의 형태일 것입니다. 니이야마 선생과의 문답에서 묻습니다. “파랑새는 불행했을까?”라고, 그 질문에 ‘잘 모르겠지만 리즈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며 그것이 파랑새의 사랑의 형태’라고 대답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노조미에 대한 미조레의 사랑의 형태입니다. 결국 둘은 일반 입시와 음대 입시로 서로 다른 길을 걷습니다. 초반에 긴 호흡으로 주욱 등교해서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훑으며 노조미의 뒤를 졸졸 쫓는 미조레를 보게 됩니다만 막바지에는 자신이 갈 길을 흔들림없이 걷게 됩니다.
이 작품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는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노조미가 스스로 말한것 처럼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 좋고, 노조미의 결단이 빛바래는 측면이 있지만 역시 스스로 밝힌대로 미조레를 다시 만나러 올 수도 있는거니까요. 리즈와 파랑새에 다시 비춰보면 두 사람의 사랑의 형태가 서로 만나 이뤄진 만큼 해피엔딩일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모형정원 디오라마처럼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거의 시종일관 학교안에서만 펼쳐집니다만,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도 우정이나 애정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 다 끝나서야 학교 바깥으로 나가는데, 둘의 미래가 고등학교라는 담을 넘어서도 계속 따뜻하고 밝기를 바랄뿐입니다. 앞으로도 줄곧.
추기: 역시 이런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쿄애니는 학원 애니메이션에 도가 텄구나라고 느꼈습니다. 한편으로 ‘백합은 적당히, 야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솔직히 백합 아녔다면 이 작품 인기의 못해도 5할은 날아갔겠습니다만, 아니 유포니엄 시리즈에서 백합을 빼면 그게 유포니엄이던가요(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