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오늘 9시 53분. 어떤이가 불을 당깁니다. 예, 그렇습니다. 13년전 오늘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있었던 날이죠. 사망 192명 부상 151명의 전무후무한 대참사였습니다. 매일 같이 이용하던 지하철에 불이 붙는 순간, 도심 수십 미터 지하에 갇혀 연기와 화염 속에 숨막혀 죽을 수 있다는걸 안 순간 우리는 전율했습니다. 분노하고 공포에 빠진 국민들은 자신이 사는 사회의 어떤 것이 이런 참사를 만들었는지 그야말로 암중모색하듯 뒤졌습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로 서울의 수많은 건물을 이 잡듯 뒤져,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던 것처럼, 언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지하철의 피난유도시설의 부재와 불구덩이로 만든 열차 속 방염처리되지 않은 내자재, 불이 붙는데도 패닉 상태에 빠진 철도원에게 모든 판단을 맡긴 체 역에 추가로 열차를 진입시킨것도 모잘라서 승객들을 가둬두도록 마스터키를 잠그도록 한 체계적이지 않은 매뉴얼 등등. 거론하자면 끝이 없군요. 덕분에 열차에는 방염개조가 이뤄지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천이 아니라 아예 금속제 좌석이 도입되었고, 종이로 된 걸림 광고마저 다 치워버렸습니다.
벌써 2월 중순입니다. 앞으로 2달이면 이번엔 불길이 아니라 수면에 갇혀 목숨을 잃은 국민들의 2주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건 뒤에도 배를 등지고 살아남은 선장의 인면수심함과 해경의 무능력함. 기타 등등. 국민은 분노했고, 유병언과 그 자식을 찾는 여정은 흡사 간첩을 찾는 듯한 전면적인 노력을 거쳤고, 그 과정의 일거수 일투족은 황색언론과 호사가들의 입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이달 초 타이완에서 지진이 있었을 때 일입니다. 사실 저는 일본쪽 뉴스를 많이 읽고 있고, 6 규모의 지진이 작은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큰 일이 아니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만,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수색은 114명의 시체를 꺼내고서야 종료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착각이 있었을까요? 저는 스스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동일본 대지진당시 일본에서 당장 큰 사망자를 낸 것은 강진으로 인한 건축물 혹은 인프라스트럭쳐의 파괴보다는 쓰나미였다는 점을 생각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층건물, 상업건물은 기본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내진설계, 보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큰 문제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태가 겉잡을수 없이 커졌을때 생각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진이 왔다면, 우리나라에 진도 6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 건물은 과연 얼마나 된단 말인가’ 아니, ‘내가 사는 건물은 안전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스스로 반성하게 됐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불길과 연기에 휩싸이고, 물속에 묻히고 땅이 꺼져 우리 국민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반복되는 대답은 제각각이지만 한 줄기로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돈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 안전성에 대한 타성에 젖은 오만, 위험성에 대한 막연한 무지, (만드는 쪽과 시행하는 쪽 모두의)규정에 대한 미필적/고의적 경시. 이 모든 과실들이 우리가 어쩌면 이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라는 것을 뒷받침 합니다. 우리가 이들 사고의 교훈을 알았더라면 뒤에 일어난 사고는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한 점 희망을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은 살아 오지 못하고, 다치신 분이 입은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상처는 온전히 아물 수 없습니다. 이를 유족이나 생존자 가족 모두 오롯이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인정합시다. 작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20주년이라 잠시간 화두에 올랐습니다. 한편으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은 이제 뉴스에서 단신 정도 거리로 중앙로역에 보존된 구역에 참배하는 가족의 모습이 단신 정도에나 오릅니다. 올해 4월 중순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글을 쓰는 동안 인기 토크쇼 진행자인 코난 오브라이언이 한국에 왔습니다. 그가 노량진에서 산 산낙지를 보며 ‘헬조선’을 탈출하겠구나! 라고 우스개가 돌다가 ‘수족관에 기증했다’라고 하자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는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합니다. 지극히 자조적인 표현이지만 지옥에까지 빗대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견디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선량한 국민의 위로 하늘이 무너지고, 아무런 죄 없이 불길에 휩싸이고 물에 묻히고 땅속으로 떨어진다면, 여기를 더 떨어지기 어려운 지옥, ‘헬’이라고 부르는데 아깝지 않다면 어디에 걸맞는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주거에 대한 걱정을 덜고, 자녀를 안심하고 낳고 기르게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은 사고. 세월에 풍화되어 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잊는 순간 문자 그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불이 휘감고 물에 잠기고 땅이 꺼지는 지옥이 됩니다. 재난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장 많은 것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나 학교에 건의해 AED를 놓고, 인공 심폐 소생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그곳은 지옥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천국, 아니 못되어도 현실이 될 수 있겠지요. 당신이 방재 담당자이거나 결정권자, 혹은 정말 기대하지 않지만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무언가 대단한 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일 항공기 사고중 가장 커다란 사상자를 낸 일본항공 123편 사고는 엔지니어가 리벳접합, 그러니까 무식하게 말하면 철판대고 구멍 뚫고 못박기를 규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작업이 엄청난 결과를 일으킨다는 얘기입니다. 설령 아무런 권한이 없더라도 무언가 압력을 가할 방법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헬조선’을 문자 그대로 지옥으로 만들지 않도록 우리는 일어난 일을 눈돌리지 말고, 잊지 말고 무엇이 잘못 되었고,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가(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를 명심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럽지만) 그 궤적을 기록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현재(2016년 2월) 합법적으로 담배를 구입 가능한 연령은 1997년생부터입니다. 이들은 삼풍백화점 참사를 그리고 지금 중고등학생이하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겪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입니다. 한창 대학생이 되고 졸업반이 되고 구직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우리가 스스로 현재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리는건 술자리에서 하는 씁쓸한 농담마냥 웃어 넘어갈 수 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헬조선’을 물려주고 학교 졸업과 함께 내던져버리는건 나와 당신의 모라토리엄의 부채를 연체이자까지 얹어 떠넘기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헬조선이라면 그 헬조선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사는 곳이 헬조선이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윗세대를 원망하듯이 우리를 원망할 것이고, 우리가 윗세대를 보고 비교하고 절망하는 것을 포기하듯이 우리를 보는 것을 환멸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오만가지 부조리가 젊은이들을 인내하게 만드는 헬조선을 만들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직장도 결혼도 내집도, 심지어 내가 누울 방마저 빼앗아가는 헬조선이 나와 내 다음 세대의 그나마 평등하게 남은 소중한 목숨마저 빼앗지 않도록 우리는 과거를 학습하고 반성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닭살같은 말을 하긴 싫지만, 희망도 절망도 목숨이 있고 나서 이야기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스스로 끊는 것과 남에게 빼앗기는건 다른거니까요. 더 이상 어처구니 없는 일로 죄 없는 시민이 ‘학살’당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제나 저 다음 세대가 살 나라가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지옥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급한 모든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판교 공연 공연장 추락사고, 그리고 나라가 다르지만 2016년 가오슝 지진,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그리고 생존자와 그 가족분들께 위로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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