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pass(라스트패스)를 쓰고 있다.

며칠 전 부터 라스트패스(Lastpass)라는 비밀번호 관리자를 쓰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비밀번호를 관리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주 바꾸는 편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던 것일까? 라고 말한다면 간단하게 말하겠다. 네이트하고 네이버 때문이다.

작년에 네이트에서 비밀번호 노출 사건이 벌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냥 네이버의 비밀번호를 (잘 쓰지 않아서) 바꾸지 않고 내비뒀다. 그 까닭에 ID 도용(ID theft)가 일어나 버린 것이다. 어느날 접속을 해보니까 내 ID로 바카라니 카지노니 광고에 도용되었다고 ID를 정지했다고 본인 확인을 해야 정지를 풀어주겠다는 네이버측의 메시지가 나와 있었다. 결국 본인 확인을 하고서야 사용을 할 수 있었다.

해서 가입만 해놓고 사용을 안하던 라스트패스를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즐겨가던  라이프해커(Lifehacker)에서 라스트패스를 소개하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장 안전한 비밀번호는 당신이 기억도 하지 못하는 비밀번호’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라스트패스의 비밀번호 생성기로 난수표를 만들어 네이버를 비롯한 주요 사이트 특히 전과가 있는 옥션과 네이트의 비밀번호부터 강력하게 바꿨다. 일단 바꿔놓으면 자동으로 저장해놓기 때문에 안심이다. 저장해놓으면 로그인 할 때 자동으로 입력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해괴망측한 비밀번호여도 나는 기억할 필요가 없다. 브라우저가 다르고 컴퓨터가 달라도 어지간한 브라우저는 다 지원하고, 맥과 윈도우도 모두 지원하니 상관없다. 그리고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블랙베리등 스마트폰에서 열람할 수도 있고 직접 접속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혹여나 바깥에서 암호를 열람해야할 필요가 있다면 이를 이용하면 된다(한 달 1달러의 유료서비스이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것이다. 자신의 암호를 온라인에 저장하는 것은 과연 안전한 것인가? 그에 대해서 CEO는 ZD넷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를 믿는 것에 대해서 키포인트는 우리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라고 “왜냐면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모두가 당신의 컴퓨터에서 암호화 된 정보 덩어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서비스의 경우 암호가 로컬에서 이뤄지고 복호도 마찬가지로 로컬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암호를 잃어버릴 경우 최대한의 조치는 암호찾기를 통해서 암호를 새로 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밖에 없다. 다른 모든 사이트의 암호는? 전부 암호찾기 해야지 뭐… 별 수 있나.

해서 이렇게 암호를 전부 다르게 하면 무슨 장점이 있는가? 그 장점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하다 만약 A라는 사이트가 털렸다고 해보자, B 사이트는 전혀 상관이 없다. 암호가 다르니까. C 사이트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암호를 키보드로 입력하는 것이 아니므로 키로거의 영향이 없다. 게다가 라스트패스는 피시방 등의 사이트에서 라스트패스를 이용할 경우를 대비해서 OTP(One Time Password)를 준비해 놓고 있다. 그걸 인쇄해놓고 접속했다가 용무가 끝나면 파기해 버리면 된다. 라스트패스 자체의 키로거 행위 조차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서비스를 통해서 매우 커다란 안심감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로그인을 편리하게 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우리나라같이 보안을 믿을 수 없는, 누출 시켜놓고 한다는 말이 비밀번호를 변경해주세요 라는 말만 툭 뱉어놓는 정글같은 나라에서 나를 지킬수 있는 무기인 셈이다.

스마트 요양을 해야할 때.

최근 스마트폰과 인간관계 논란을 보면서… 란 글을 쓴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중앙일보에서 “뭐 해?” “트위터” 한 침대 누운 부부도 이런 대화 란 기사를 보았다.  나는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다. 사실 명목은 내 주소록을 통째로 넘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IMEI 정보를 넘기는 것을 비롯한 프라이버시 정책의 불투명성 등에 의한 것이었다(왜 재작년인가 작년에 한번 파동이 일어나지 않았나?). 해서 그 이후로 쭉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물론 1000통이나 되는 제공 문자도 있겠다, iMessage도 있겠다 해서 그냥저냥 검소하게 절제하며 쓰고 있다. 

문제는 메일과 트위터 멘션의 푸시인데, 이것의 중독이 여간 헤어나기 쉽지가 않다. 뭔가 일어났을때 바로 알려주는 기능이 매우 편리하다. 알림음으로 알려주는데 심지어는 양치를 하다가도 깜짝 놀라곤 한다. 이게 기기가 여러대가 되노라니까 메일이 오면 아이폰들과 아이패드들과 블랙베리들이 동시에 울려대서 하루는 친구가 집에 방문을 했는데 “아주 지X들을 해대네, 정신이 없네”라고 촌평을 했다. 결국 일부 기기의 푸시를 죽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으로 사용하는 iPhone 4S의 메일과 트윗 푸시만큼은 끝끝내 죽이지를 못했다. 정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트위터로 멘션에 답을 하면 그 사람이 대답을 했는지 이메일로 메일을 보내면 답장이왔는지, 주문을 넣었으면 주문 확인이 도착했는지, 발송 확인이 왔는지 등등.  허나 이것이 배터리 수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링크는 애플이지만 안드로이드는 더 심하다)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쓰고 있다. 

한편, 아이패드에 대한 중독도 문제다. 나는 환자로 재택 요양중이라 애당초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있다. 그래서 컴퓨터나 태블릿 PC를 사용하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고, 겨울에는 아이패드를 침대에서 사용하기가 얼마나 편한지 알게되어 점점 오래 사용하기 시작해서 급기야는 의사한테 자기전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더니 얼마전에는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시간이 노트북 보다 많아졌다고 포스팅했다. 의사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아이패드를 붙잡고 있다보니 잠자는 시간을 종종 넘기는 것이다. 아이패드의 배터리는 생각보다 너무 오래가기 때문에 조금 더 조금 더 하다보니 말이다. 절제를 해야하는데 큰일이다. 눈이 아프거나 배터리 인디케이터가 붉은색이 될때가 되서야 독에 꽂고 잘 채비를 한다.   

한편, 앞서 소개한 신문 기사의 디지털 디톡스라는 것은 실제로 내가 종종하는 것이다. 내가 트위터나 블로그, 페이스북에서 가끔 며칠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아주 조금 밖에 나타나지 않거나) 그런 경우에는 간단하게 말해서 내가 푸시를 완전히 끄고 침대에 뒹굴거리면서 노트북의 리드를 접고 SNS를 접고 메일확인도 최소화하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책이나 읽는다. 기록은 일주일에 20권이다. 정이 못견디겠으면 아이패드로 뉴스나 위키백과, 엔하위키 따위의 읽을 거리의 웹서핑 정도로 시간 때우기를 하기도 한다. (집에서 요양중인 입장에서 솔직히 이것까지 끊는건 못하겠더라) 이 기간에 만큼은 모든 푸시를 끈다. 사실 이러는 경우에는 내가 환자라서 가끔 에너지가 고갈되어서기도 하지만 이걸 한번 하면 정신력? 비슷한것이 재충전 되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한 일주일 정도 이렇게 했는데 이제는 한 사나흘 정도 이렇게 하면 다시 힘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에도 푸시를 끄지 못해 전전긍긍인 내가 할 말은 못되지만 푸시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끔은 나처럼 하루종일 집에 있지 않더라도, 학생이나 직장인이라면 주말이라도 이용해서 ‘스마트 요양’을 즐겨보는 것도 좋은 생각일 것 같다. 핑계일진 모르지만… 푸시를 줄이면 배터리 수명이 늘어난다! 푸하하. 농담이 아니다.  

 

왜 항상 정치적이어야 하는가?

나는 트위터를 하면서 초반에는 엄청 싸웠다. 내 구우가 있는데 그 녀석이 왜 너는 허구헌날 트위터를 하면서 쌈박질만 하냐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왜 이렇게 평온한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블락을 한다거나 언팔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나는 아주 평화롭고 조용한 트위터를 즐기고 있다. 어찌보면 우물안 개구리속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트위터라는게 다 그렇고, 솔직히 그런식으로 따지면 크기의 차이지 모든 인터넷이 그렇고, 모든 교류의 장이 다 그렇다. 모든 의견이 모이는 장이라는 건 허구의 개념이다. 전쟁터(무기가 말이던 칼이던) 빼고.

비결이 있다면.. 그냥 다만 팔로우를 신중하게 할 뿐이고, 말을 신중하게 할 뿐이고, 조심하게 들을 뿐이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함부로 왈가왈부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비교적 온건한 리버럴인데, 자연스레 그러다보면 얽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뭐 알다시피 그 사람들도 이해관계가 참 많이 복잡하다. 그 사람들 두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유탄이 아주 장난이 아니다. 나라고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들의 주장을 듣는 것이다. 

4.11 총선 때 나는 트위터에서 이렇게 설파했었다. 나는 악어처럼 입을 다물고 그냥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기만 하겠다고, 여기서 백날 떠들어봤자 결국 중요한 일은 기표소에서 일어난다고 말이다. 특히 선거를 앞둔 흉흉한 상황에서 입을 잘못 놀렸다간 신변에 하등 좋을 게 없다. 

나의 경우.. 딱히 대놓고 정치 얘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고등학생때 부터 크루그먼의 팬이었기 때문에 IHT를 읽거나 New York Times 웹사이트를 통해서 그의 컬럼을 때때로 읽곤 했다. 그의 컬럼 중 몇개는 수년전에 이 블로그에 (무단으로;죄송)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다. 그러니까 굳이 정치적인 얘기를 하지 않아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누구를 이상적으로 지지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내가 크루그먼 컬럼을 올리고 블로그에 정치얘기를 하다가 정치 얘기를 하지 않았던건 IT블로거로 노선을 정리하면서(정확히 말하면 악플에 못이겨서 그냥 정리를 해야겠다고 여겼던 까닭) 선명성을 높이기 위함이고 그것을 계승해서 트위터에서도 그런 셈이다. 

보신주의라고 하면 보신주의일 수도 있으나, 나는 한편으로 우리나라 트위터스피어, 더 나아가서 웹스피어의 정치편향성에 좀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수가 없다. 물론 거슬러올라가서 케텔, 하이텔시절의 큰마당시절부터 시대담론을 형성하던 장이었던 것을 인정안할 수 없지만, 이제는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정치성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인터넷 인구는 늘어났고. 인터넷으로 못하는게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온 국민이 인터넷을 한다. 인터넷에 온국민이 모여들고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인터넷으로 은행일을 보고 인터넷으로 주식을 하고 인터넷으로 일을 하는데, 인식은 90년대의 엘리트 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트위터는 초기의 소수가 사용하던 인식에 더해 사회를 바꾼다는 인식까지 더해져서 그 엘리트 주의가 더 심한듯 하다. 마치 집단각성이라도 보는 듯 하다. 

어째서 온국민이 바글바글 거리는 인터넷에서 온국민이 정치를 의식하지 않으면 건전하지 않은 것인가? 가령 생각해보자, 시장이나 마트에서 이웃주민을 만날때마다  “아, 정치인들이 정치를 올바르게 하지 않는구나” 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걸어다닌다면 정신이 온전할리 없다. 

정치를 언급 안한다고 해서 정치를 모르는것은 아니다. 블로그에 드러나는 인간상은 극히 작고,  트위터에 드러나는 인간상은 블로그에 비해서도 더욱 더 작다. 휴대폰의 스크린을 끄고, 노트북의 리드를 닫고 정확히 무엇을 할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때이다. 그냥 자기가 즐거운 이야기, 자기가 잘하는 이야기, 자기가 파고드는 이야기, 자기의 일상, 자기의 생각, 거기에 곁들여 정치가 나오면 모르겠지만, 정치가 주가 되고 정치가 없어서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 된 것이다. 

트위터로 할 수 없는 것들..

나는 트위터를 정말 좋아한다. 트위터로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개의 트윗을 보내고, 수십 개의 멘션을 주고 받는지 모르겠다. 그 중에는 일상의 언어일 수도 있고, 내 단상일 수도 있고, 기술적인 내용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본 재미있는 기사의 링크인 경우도 있다. 몸이 좋아지지 않고서는 단순히 기사를 읽고 간단하게 촌평을 달아 링크를 트윗하고 이후에 생각을 다는 트윗 스타일은 내게 꽤 맞았던 것 같다. 뭐 거대한 팔로워 팬덤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나름 리트윗 되면서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트위터는(굳이 트위터에는 국한하지는 않겠다.  가령 페이스북도 그렇다) 영속성이 없다. 트위터를 마이크로 블로그라고는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남긴 트윗은 어디로 갔는지 알길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에게서 받은 트윗을 캡쳐하고 링크를 북마크 해두었기 때문에 원하면 지금이라도 열어 볼 수 있지만 링크 없이는 그 멘션은 그 어디에서도 열람할 길이 없다. 

하지만 내 블로그는 다르다 애당초 어원인 web+log 란 말 그대로 내 블로그를 천천히 살펴보면 내가 했던 관측이 들어맞는 순간과 오판의 기록이 모두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는다. 마치 책과 같다. 게다가 이 블로그는 티스토리나 싸이월드와는 달리 내가 자비로 가동되는 서버위에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비용을 내는 이상, 즉, 운영을 할 의지가 계속되는 이상 계속적으로 망할 일 없이 운영될 것이다. 오죽하면 내 걱정은 내가 죽었을때 운영료 지급이 끊겨서 이 기록이 유지 될 수 있을까 일 정도니 말 다했지 않는가? 

해서, 트위터로 이런저런 영감이 담긴 말을 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말들이 리트윗(retweet)을 통해서 반향을 샀다. 그를 통해서 나름 자그마한 기쁨을 얻었다. 그렇지만 그 글이 남지 않는 다는 것은 솔직히 쓸쓸한 일이다. 물론 트위터를 백업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만..

결국 본명대로 남겨야 하는 기록은 블로그에 남겨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트위터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몇년 전 캐논의 기가막힌 잡지 광고 카피가 생각난다. 기록은 추억을 지배한다. 나는 지금도 어릴때(그래봐야 고등학교 때지만) 사진을 보면서 그 말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내 블로그의 지난 글을 보면서도 그렇게 느낀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키를 두드리고 발행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