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간단히 말해서 미야자키 옹께서는 한숨 놓을 수 있겠습니다. 상업적으로든 결과물로든 말이죠. 나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어떤 의미에선 도대체 이게 뭐야? 싶었던 포뇨보다는 나았습니다.
2010/08/24 – [문화,엔터테인먼트] – 마루 밑 아리에티라…
2010/08/29 – [문화,엔터테인먼트] – 귀를 기울이면을 다시 봤어요
2010/09/04 – [문화,엔터테인먼트] – 지브리에 현상에 대한 재미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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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파격을 시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부하(workload) 내지는 역할이 줄었으며, 그 결과물이 일단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갔다는게 중요합니다. 위의 세번째 링크의 글에서는 픽사를 예를 들어 지브리의 창의성 결핍을 들었으나, 픽사의 애니메이션은 여러분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시간이 들어갑니다. 스케치에서 개봉까지 6~7년이 걸린답니다. 근데 개봉은 잘해봐야 2년 텀이죠, 그걸 위해서 크리에이티브 팀의 몇몇 키 크리에이터를 중심으로 몇개 팀으로 나뉘어, 예를 들자면, A 팀의 작품이 개봉하면 B 팀의 작품은 렌더링을 뜨고 있고, C 팀의 작품은 목업을 떠가며 캐릭터를 구상하고 있고, 다시 A 팀은 브레인스토밍 중이고 이런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지브리 같은 구조에서는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나마 지금 아리에티 끝나고 하야오 감독 작품이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해서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하고 제작을 하던 지브리 상황에서는 절대로 픽사처럼 다양하게 나올 수도 없고 마치 “찍어내듯” 정확하게 척척 나올수도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 ‘포뇨’에서 제작을 내려놓았고, ‘아리에티’에서 감독을 내려놓았습니다. 각본도 공동 작업입니다(출전: 일본어 위키 백과). 즉, 말해서 순수히 자신이 혼자한 작업은 기획 작업 뿐이라는 거죠. 이제 이 노인이 천천히 후임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거죠. 솔직히 말해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물러나고 그가 사망한다 할지라도 지브리가 하야오 테이스트를 완전히 벗어날지는 의문시 되고 또, 하야오 류 내지는 하야오 풍도 계승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좌우간, 이렇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역할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후임들의 부하는 늘것이고, 후임들의 일들이 늘면 좋건 싫건 미야자키의 영향을 받은 ‘후임들의 테이스트’가 작품에 섞여 들어가게 되며 자연스럽게 미야자키의 취향에 얽메여 있는 상황은 해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스튜디오 지브리처럼 1인이 지배적인 구조에서는 어쩔 수 없이 미야자키 하야오를 필사적으로 모사(트레이스)하는게 일단 최급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니까요. 일단은 하야오옹이 건재할때 지도를 받아가면서 하야오 류 내지는 하야오 풍이라도 제대로 따라하고 나서 그 이후에 독창 노선 어쩌구 해야지, 안그랬다가는 거덜낼 겁니다.
지금은 그래서 스튜디오 지브리는 전환의 물결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목하 견습 중인 셈이죠. 전번 포스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브리 작품이라 많은 사람들이 일단 신뢰한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후임들에게 전환을 하는 입장에서 지브리 네임밸류는 두가지 면에서 생각해봐야겠죠.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해야하는 부담감 내지는 채찍, 그리고 어느 정도 실수를 해도 커다란 참패를 면할 수 있다는 안도감 내지는 완충장치죠.
그러니 우리는 아리에티를 평가할 때는 이런 컨텍스트에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부터는 영화의 내용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최대한 감상에 해가 될만한 언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원치 않으시는 경우 관람전에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허나 일단 극장에 들어가서 보노라면 나름대로 호감갑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지브리 작품 전통적인 면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 마루 밑의 가족의 생활과 극 초기의 활극(?)은 흥미롭고, 십대 초중반의 소녀의 첫 모험과 소년과 만남이라는 얼개 또한 같습니다. 그리고 그 둘의 만남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헤쳐 나가는 둘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역이 있으나 그 악역을 원망할 수 없다(…) 또한 같구요. 극의 마무리도 그렇고.
이런 여러가지 클리셰를 지키면서도 이 영화가 시종일관 재미있었던 까닭은 이 영화가 주인공의 나이가 올라간 만큼 드라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인인 아리에티가 인간인 쇼우를 만나고, ‘자립’의 한 과정으로써 시작한 첫 인생의 과업에서 실수를 하고 시무룩해하는 모습이나, 자기가 쇼우를 만나고 인간에게 들킴으로써 자신의 가족에게 해를 입혔다고 고뇌하다가도, 금새 맘을 다잡고 자신이 사태를 수습해야겠다고 혼자서 험한 길을 나선다거나, 인간인 쇼우를 만나서 경계를 풀며 다가가서 서로 모험을 해서 위기를 해결하는데 이르기까지 과정. 물론 시간 관계 때문에 깊게 터치되지 못한게 아쉽습니다만, 인형의 집과 인간의 집에 얽힌 그 집을 거쳐간 3대간의 숙원이 마침내 4대째인 쇼우와 아리에티의 만남으로 해소 된 일련의 흐름 등.
이 작품은 여러모로 하야오를 필사적으로 모사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작품입니다. 해서, 서두에서 말했듯이 앞으로 트랜지션이 잘 이뤄진다 가정하면, 하야오옹은 이제 마지막 작품을 감독하고 이제 실무에서 정말로 은퇴해도 지브리가 탈 없이 굴러갈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짐작 합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봤을때 근년 지브리 작품중에서는 가장 맘에 드는 작품입니다. 만약 21세기 들어서 나온 지브리 작품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아마 마루 밑 아리에티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심각하게 저울질 해보겠는데, 개인적으로는 마루 밑 아리에티가 더 호감이 갑니다.
만약, 위의 노란 박스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반드시 영화의 엔딩크레딧까지 다 보고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엔딩크레딧이 길지 않고, 엔딩크레딧이 흐르며 나오는 노래도 좋고, 그 밑에 깔리는 애니메이션도 꼭 보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지 않아?” 라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물론 이미 극중에서 살~짝 그럴것 같았어 싶었지만요 ^^ 의외로 대다수의 분들이 그냥 털썩 일어나셔서 대단히 안타까웠습니다. 에바 신극장판으로 치자면 미사토의 예고편을 안보고 일어나신 것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손해 보신겁니다.
하아… 이거 저는 역시 껍데기만 먹물이군요… 어찌 영문학을 전공하는 문과 학생이면서 이렇게 영화 감상하나 쓰기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군요 ㅡㅡ;; 그러니 블로그가 IT 블로그가 됐겠죠?
ps. 카미키 류노스케나 시다 미라이 모두 목소리 연기 다 괜찮았습니다. 아… 그리고 중요한 사실을 빼먹었는데 이 작품의 음악은 히사이시 조가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군요. 하나 더 사족을 더 하자면. 엔딩이 좀 허했다. 라는데 시작부터가 그걸 암시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