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May 2008

지인께 엽서 한장 써보시지요?

엊그제 우체국에서 엽서를 몇장 사왔습니다. 엽서값도 제가 마지막에 샀을때는 190원이었던가 했는데 이젠 220원하더군요. 뭐든 다오르니까요…

제가 엽서를 산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제 iPod 셔플을 찾아준 외국인 교수에서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팟 셔플은 아시다시피 클립이 달려있어서 옷 따위에 매달수 있잖아요? 솔직히 번들 이어폰이 다른 iPod에 있는것에 비하여 좀 짧은게 아닌가 싶어서, 다른 주머니에 넣자니 꼭 선이 짧더군요. 그래서 옷에 달고 다니는데, 하필이면 빠진 모양입니다. 뭐 음악을 듣고 있을때는 워낙 작고 가벼우니 떨어지더라도 귀에 매달린 이어폰에 대롱대롱 매달립니다만. 문제는 이어폰을 빼고 있을때입니다. 그때는 주머니에 넣는게 좋았을텐데 그게 귀찮다고 옷에 넣다가 그만 잊어버린겁니다.

흔하디 흔하고 사실 몇만원 안하는 물건이니 만큼(이제 5만원도 안하죠) 누가 가져갔을법하지 않아서 찾아봤지만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다니던 곳마다 물어봤는데 마지막으로 새로 하나 사야하나 싶을때 물어보니 아. 혹시 작은 액정 안달린 물건이냐 해서 색이랑 특징(떨어뜨려서 이가 약간 나갔다는)을 얘기해주니 iPod을 주더군요…

그래서 겸사겸사해서 어떤 분이 제가 수업을 듣는 교실에서 발견했다고 하시더군요. 직접 인사는 못드리겠고… 그렇다고 편지를 쓰긴 또 그래서 사무실로 엽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김에 몇장 더사서 아는 분들께 간단한 인사를 드렸습니다.

요즘 편지 많이 않쓰시죠? 미국에서는 전자형태로만 바뀌었지 이메일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실제로 이메일을 바깥에서 쓸수 있는 기계가 널리 쓰이고 있고, 일본에서도 역시 휴대폰이라는 전달 장치만 달라졌지 결국 편지가 쓰이는데, 우리나라만 그놈의 ‘단문 메시지(short-message service)’ 때문에 편지는 둘째치고 음성 통화조차도 줄어들어버렸죠. 감사하고, 사랑하고, 미안하고, 기쁘고, 슬프고… 모든 것들이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40자로 제한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뭐 요새는 MMS라 해서 장문도 보낼 수 있게 되었지만, 이제는 40자의 테두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제 주위의 아무도 MMS를 쓰지 않죠. ‘핑’하고 치면 ‘퐁’하고 대답이 오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그런가 봅니다. 좀더 우러나는 문장을 쓰고 좀더 음미하고 대답할 수 있는 문장은 오고갈 수 없는 것일까요… 마치 채팅방에서 채팅하듯이… 문자를 주고 받는 것 같아서… 너무 즉흥적이고 인스턴트 같아서… 쩝.

옆에 나라에서는 연하장 겸해서 매년 엽서를 ‘공해’수준으로 찍어내고, 애가 태어나거나 이사를 하거나 하면 지인에게 엽서를 보내는 것이 일상적이라지요? 뭐 요것도 디지털이 되면서 예전만은 못하다지만.

아무튼 제가 이걸 내일 학교 우체국에서 부치면 교수는 2박 3일이 지나야 받을 수 있겠지요. 몇십년전부터 속달이란게 있었고, 십수년 전부터는 빠른우편이라해서 1박 2일이면 됐었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등기가 아니라면 무조건 2박 3일이라지요? 마치 콩코드가 사라진 대서양 노선 같은 느낌이군요. 다른건 점점 빨라지는데 이것만 느려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번에 엽서를 쓰면서 느낀것이지만. 엽서라는게 쓰기에 따라 생각보다 공간이 많습니다. 손바닥 만한 종이에 의외로 많은 내용이 들어가죠. 하지만 또 쓰다보면 금방 채워지는게 또 엽서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하던 사람에게 혹은 지인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던 옛날로 돌아가자는건 아닙니다. 짧게나마 연락이 뜸했던 분들이라던지, 항상 연락을 했더라도 문자로 단편적인 이야기만 하시지 말고 엽서 한장 써보시는것 어떻겠습니까?

역 앞 서점이 문을 닫다.

제가 어릴때부터 즐겨가던 역앞에 동네 서점이 있었습니다. 전철을 타고 돌아오고 나서, 수원에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와서, 아버지와 목욕을 하고 나서 집에 가는 길에 항상 들르던 서점입니다.

동네 서점이지만 아주 작지는 않아서, 찾는 책이라면 어지간한 책은 다 있었습니다. 동화책에서 만화책, 심지어는 라이트 노벨도 있었죠. 신간도 다양했고, 컴퓨터에 관심이 있을때는 컴퓨터책을 영어에 관심을 가질때는 영어책을 샀죠. 저는 수도 없는 책을 보고 닥치는대로 샀기 때문에, 도서정가제라는게 있기도 전부터 책값을 에누리 해주었고 필요한 책이 있으면 곧장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뭐 여러분이 기억하는 대개의 서점들이 그렇겠지만, 제가 평생읽어도 다 못읽을 양의 책이 있었고, 집에 책이 산더미같이 쌓인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직접 가서 책을 보고 무거운 봉다리를 들고 오는걸 더 선호했기 때문에 할인율이나 적립금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그 서점을 애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보니 셔터를 내리고 책을 싸고 있더군요. 그곳에서 너무 잘 알던 분을 보고 여쭤보니 하시는 말이. 이제 폐업을 한다고…

솔직히 동네서점이 위험하다는걸 알고는 있었고, 이 서점도 예외일 순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감하니 너무 마음이 서글프기까지 하더군요… 얼마전에 문닫았던 스타벅스 수원역점이 제 친교의 허브였다면. 제 앎의 허브는 이 동네 서점이었는데 말이지요.

아… 슬픈일은 겹으로 오는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아무튼… 좋아하는 장소가 또 없어지는구나… 생각하니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촛불집회가 불법이라기에 법전을 뒤져보니

촛불집회가 불법이라기에 법전을 뒤져봤습니다. 우선 많은 진보 성향의 네티즌이 주장하는 것은 이겁니다.




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 대한민국헌법

그것으로  인하여, 상위법인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 결사 자유를 침해하는 집시법이 문제다. 라는 것이죠. 거기에 대해서 많은 보수 네티즌이 주장하는 조항은 또 이겁니다. 문제는… 열이면 열 이걸 전부 인용해서 주장하는 경우가 없었다는 건데… 왜 그런지는 보면 압니다.

 



②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 대한민국 헌법 32조.

‘쑥’하고 앞부분만 떼놓고 볼드친 부분은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하나도 인용하지 않더랍니다. 앞부분만 읽어보면 집시법은 어떻게 보나 합헌이지만 전체 조문을 읽어보면 아리송 해지거든요.

사회적인 컨센서스(consensus)는 어떤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현행 집시법은 침해하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 그리고 어떤 분이랑 인터넷상으로 댓글다툼하면서 인용한 구석이 있습니다. 몰아부치니까 억지라고 하면서 더이상 댓글을 안달던데… 아무튼… 그때 인용했던 헌법 구문을 하나 소개해드리면서 마칠까 합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 대한민국 헌법 전문
일제치하에서는 당연히 3.1운동은 조선인의 폭동이었고,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4.19 민주 운동도 당연히 불법이었습니다. 제 6공화국 등장과 함께 개정된 현행 헌법도 그냥 거저 얻어진게 아닙니다. 우리는 3.1운동이나 4.19 모두를 불법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습니다. ‘당신네 나라’도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