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를 팔아주세요.

솔직히 말해서 미쳤다는 소릴 들을 짓을 했다. 나는 지난달 말께, 캠코더를 샀다. 그것도 대리점에서 샀다.?

미쳤다는 소릴 들을 만하다. 아니 스스로도 반쯤은 넋이 나가지 않았다면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다. 한푼의 에누리도 없이 회사의 정가대로 물건을 샀다. 가방과 편집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AVCHD HDD형 캠코더에는 한치의 쓸모도 없는 DV 영상단자가 달린 편집키트를 덤으로 받았지만(아, Core 2 Duo에 256MB VRAM이 있으면 AVCHD를 편집할수도 있다더라), 이건 아마 20만원 싸게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산 사람도 마찬가지로 받았을 것이다.?

사자마자 내가 바보짓이네 뭐네 하면서 사게 된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내가 찾던 SR12가 전국적으로 물건이 희귀했다. 그래서 인터넷 최저가 집은 열군데도 더 전화를 해봤지만 물건이 없었다. 아니 없는 물건의 가격을 올려놓고 마치 재고가 있는양 써놓고는 그 아래에 보면 ‘구매하시기 전에 재고를 전화로 물어봐 주세요’ 란다. 지난번에 FX33을 살때 기억이 난다. G마켓에서는 33만원에 팔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는 그것을 30만원까지 낮췄다. 사실 난 삼각대도 튼튼한 맨프로토 삼각대가 있고, 블로어 정도는 EOS때문에 서너개가 굴러다니기 때문에 청소킷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당연히 난 본체만 주문하기로 했다. 전화해서 재고가 있냐니깐 있다길래 본체만 사겠다고 하자 싹 태도가 바뀌어 그건 재고가 없단다. 뭔 말인고 하니 셋트로 메모리나 삼각대 하다못해 크리닝 킷과 몇가지 잡동사니를 사지 않으면 안팔겠다는 것이었다. 뭐 그런게 있냐 싶었다.?

제대로 된 끼워 팔기 상법 아닌가? 어제 ‘이영돈 PD의 소비자 고발’을 보니 자동차에 20만원짜리 ABS를 달기 위해서 200만원 비싼 트림을 선택하게 만드는 수법이 나왔는데. 30만원짜리 카메라를 사려면 2만원어치 ‘크리닝킷’과 ‘융’ 옵션을 사야한다는것이다. 쓰잘때기 없는것이다. 사실 그것은 비싼 DSLR을 사면 그냥 사은품으로 주기도 하는 그런 형편없는 수준의 물건들 아닌가? 그것들을 잘쳐도 대량으로 사면 3~4천원이다. 상품이 비싸면 거저 몇개 주기도 한다.?
결국 요점은 32만원이나 30만원+2만원 옵션은 똑같다는 것이고 결국은 눈속임이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인터넷 최저가에는 올려놓고 보자 이거지. 그래야 히트가 올라가니까.?

그래서 다시 캠코더로 돌아와서 점원은 내게 SR12가 없으니 지금 주문하면 30명 가량이 밀렸는데 1주일에 2대 들어올수도 있고 4대가 들어올수도 있다며 최대 한달이 걸릴지 모른다며 다른 기종을 추천한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보는 수법 아닌가? 생각해보겠다고 하곤 끊었다.?

황당한 일이다. 지난번에 당했던지라 일부러 기본셋이 아니라 뭘 좀 끼운 셋으로 했는데 이젠 재고가 없으니 기다려 보란다. 희안해서 이번엔 소니스타일에 전화를 해봤다. 코엑스는 안받았고, 압구정 재고 없으며 몇주간 못본것 같단다. 그리고 명동도 이하 동문. 혹시나 해서 사는 도시의 소니 대리점에 전화를 걸었다. 있단다. 그냥 팔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곧 갈테니.?

그래서 사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4월 8일까지만해도 “SR12 물건 없어요?” “소니코리아에 물건이 없습니다 4월 8일~중순 이후에나 풀릴 것 같습니다.” 이런 글이 지식인에 올라올 정도였으니… 구하기 어지간히 어려웠던 모양이다. 가격은 정확하게 소니가 고시한 소비자가 그대로였다. 한푼의 에누리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물건을 구했다는 득의양양함과, 조그마한 안도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가게에서 물건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파나소닉의 SD9을 직접 수입해서 쓸 것을 생각하고 있었고, SR12는 고려하지 않았었는데, 브라비아 TV나 구경해볼까 해서 소니 대리점에 갔다가 얼마전에 막 들여왔다길래 한 10분 이래저래 찍어보고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가게 주인은 정말 만만디라서 블루레이 타이틀 하나를 가져와서 틀어봅시다. 하니 군말없이 틀어줬고, 리모콘으로 메뉴를 주물러보고 만져보게도 허락을 해주었다. 덕분에 브라비아 X3500/X3000 메뉴는 대충 파악이 끝난 상태라고 봐도 좋다. 그후 한 두세번 가서 이러저러한 영상소스(BD, Playstation 3, SkyHD, 지상파 HD, 샘플용 영상)를 보고 돌아왔는데 언제 살지도 모르는, 절대로 스스로 노력으로는 390만원에서 540만원하는 액정 텔레비전을 사기에는 무리라고 보여지는 젊은 대학생에게 이런저런 설명과 함께 대다수의 매장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수원에 있는 모 백화점에 갔다가 소니 매장이 있길래 한번 물어보니 그 대리점의 사장이 얼마나 후한사람인지를 여실이 알수 있었다. 캠코더도 마찬가지로 그냥 근처를 걸어가자 인사를 하고는 “지난번에 들어온다던 핸디캠 들어왔어요. 들어와서 구경하세요.” 그러길래 들어가서 만져보고 사자 라고 결심하게 된것이다. 맘대로 켜서 녹화하고 재생해보고 할 수 있었다. 역시 여행을 가기전에 캠코더를 살지도 모르겠다라는 언질만 했지, 나는 그저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은 학생일 뿐이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그것이 물건을 팔기 위한 서비스라 할지라도 꽤 ‘순수한’ 물건을 팔기 위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를 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후줄근한 티에 낡은 바지를 입고 있고 낡은 카메라 하나와 기스가 성성한 아이팟을 들고 1년 넘은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어떤 면에서 보아도 크게 얼리어답터거나 구매력 있는 고객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게 이 정도의 서비스가 나온다면 구매시나 구매후에도 어느정도 레벨의 신뢰성 있는 사후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이것저것 챙겨줬기 때문에 최저가와 소니 정가와 20만원 가량 차이가 난다는걸 안 뒤에도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했는데 좀 비싸게 사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결국은 물건이 없어서 거기서 사게되는 방식이 되었지만. 내가 높이사는 점은 쇼핑은 경험과 신뢰의 교환이라는 것이다. 물건을 단순히 파는 것을 넘어서 파는 과정 자체가 기분좋은 경험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은 상호가 신뢰할 수 있는 과정하에서야 한다는 것이다. 비싸게 사면서도 기분좋게 사고, 싸게 사면서도 기분 더러운것, 뭔가 아이러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 난 인터넷에서 좀 싸게 텔레비전을 판다 할지라도 그 가게와 계속 거래할 지도 모른다. 그게 신뢰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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