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고등학교 2학년때 한겨레 신문에 기고했던 글이다. 어쩌다 보지도 않는 신문에 오피니언 란에 이걸 쓰게 됐냐면, 그냥 이 글의 시각이 교육문제에 진보적인 성향의 한겨례 신문의 방침과 잘 맞겠다 싶어서였다. 아마 내가 이 글이 실렸다는 사실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실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고등학생이라는 것만 밝히는 조건으로 알려주고 나서 이게 실리겠구나 싶어서 그 다음날 신문을 사서 보았기에 알게 된 것이었다. 신문사에서도 글의 성격상 학생이라는것만 밝히고 말았지만, 나는 그 다음날 2학년 부장을 하시던 김영군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혹시 너 한겨레 신문에 글썼냐?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김한솔이 이 나라에 한명밖에 있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단정하셨는가 신기할 따름이지만. 나는 그때 아뇨 저희는 중앙일보 보는데요. 라는 대답을 하니 알겠다며 돌려 보내셨다. 안보는 신문에 기고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한겨레 신문이 진보 성향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죄송해요 김영군 선생님…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지난 8월28일 정부는 보충 수업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범위는 학과 일정에 상관 없는 한도 내에서 진행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발표를 보고 과연 이 나라의 교육 백년지대계가 어떻게 꾸려지기에, 이러한 어이없는 정책이 입안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우선 그 내용의 터무니 없음은 고사하고, 그 정책을 입안하게 된 상황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으로서 말하건데, 지금도 상당수 학교에서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문제 풀이식 수업 진행이 저녁 11시까지 계속되고 있다. 귀가해서 과제물 하다 보면 두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런 다음날 아침 예닐곱시까지 등교를 해야한다. 어떻게 교육 당국이 이런 현실을 모를 수가 있는가 예산 감사 때문에 책걸상을 못 바꾸네, 비품을 못 바꾸네 너스레를 떨 정도로 교육감 시찰과 감사로 난리를 피우면서 어찌 정작 학생들이 학교에 몇시간 동안 붙어있는지를 감시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학력 저하 등을 이유로 입안자는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내놓은 대책안이겠지만, 우리 학생의 학력저하 문제나, 사교육 문제는 보충학습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수많은 학교가 ‘특기적성 교육’이라는 이름의 시간으로 꽃꽂이를 하네, 붓글씨를 하네 하며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에게 특기적성에대한 선택권은 없이 담임 교사가 백지로 특기적성 교육 희망원을 걷고 적당히 반을 나눠 문제 풀이식 보충수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보고 우리네 교육 관료께서는 보충 수업이 없네 하는 모양인데, 말 그대로 눈가리고 아웅하기다. 최소한 병원 진단서를 끊어와야 일찍 하교할 수 있는 형편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아침에 등교해 상당수 학생들이 엎드려 새우잠을 잔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하루 종일 기운이 없이 지낸다. 교육 당국의 형식적인 관리, 감독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교육 당국이, 하다 못해 학교의 연말 수입?지출 내역만 살펴보아도, 아이들 저녁 밥값으로 나가는 돈이 한두푼이 아니고, 저녁 시간에 불이 켜져 있는 학교가 수두룩하다는 걸 알 수 다. 그런데도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보충 수업을 허용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 상황에서 그것을 아예 빗장 열고 허용을 하시겠단다. 그럼 불법으로 온갖 탈법, 편법을 동원해 보충 수업을 하는 이 마당에도 이 지경인데, 허가해주면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봐주겠다는 말인가 학교에서 이렇게 탈법과 편법이 판을 치는데, 자라나는 학생들이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말에 콧방귀나 뀌겠는가 대통령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법과 원칙”을 무시하여서는 안된다고 할 때마다 씁쓸할 뿐이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보충 수업 허용 입장을 유보하고 실상을 조사해보아라. 그렇다면 그 결정이 틀린 것임을, 보충 수업을 한다고 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자각할 수 있으리라.
김한솔/고등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