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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초보가 쓰는 여행초보를 위한 비행기 내리는법

여행 초보가 쓰는 여행 초보를 위한 비행기 타는법에 이어서 이번에는 내리는 순번을 한번 읊어 보고자 합니다. 사실 내리는것은 타는것의 거의 역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면세점이 없다는 정도겠지요. 그래도 입국절차를 생소하게 생각하시는 분을 위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1. 착륙/주기
순항을 하다 착륙이 임박하면 시트벨트 사인이 켜집니다. 그러면 승무원이 트레이를 접고 좌석을 똑바로 세우고 화장실 용무를 곧 마쳐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오게 되지요. 그리고 일일히 짐칸(헤드 컴파트먼트)의 잠금상태와 시트벨트와 시트, 트레이의 정위치 상황을 점검하게 됩니다. 안전벨트를 메시고 좌석을 젖히신경우 다시 세우시고 트레이는 접어서 잠그시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공항이 붐비다보면 전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하면서 생기는 영향때문에 좀 좌우로 흔들리긴 합니다만 크게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활주로에 착륙을 하면 잠시 있으면 끌고 터미널쪽으로 끌고 가게 됩니다. 비행기가 완전히 서서 안전벨트 사인이 꺼질때까지는 벨트를 풀고 일어나지 않는게 좋답니다. 간혹가다 착륙하자마자 전화기를 부리나케 켜셔서 도착했다고 도착일성을 고하시기도 하는데 기본은 몇일, 몇십일 못보다가 오는데 몇분 늦게 통화한다고 무슨 난리나겠습니까, 다른 분에게 폐가 될 수 있으니 터미널에 내려서 통화합시다.

내릴때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탈때 우선순위와 마찬가지로 어린이 동반과 장애인 승객, 일등석과 비즈니스석 승객 다음으로 일반석 승객이 내리는데 다만 내리는 경우에는 앞좌석 승객부터 내린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내리면 대개는 외길을 따라 쭉 나가시면 출입국 심사를 만나게 될겁니다.

2. 출입국심사
출입국심사는 기본적으로 여권과 출입국카드를 제시하는걸로 시작합니다. 우리나라에 돌아오는 경우라면 출입국카드는 필요가 없어요. 비행기 안에 한국 출입국 신고서가 있지만 국민은 쓰실 필요없이 여권만 들이내미시면 됩니다. 문제는 외국으로 갈때인데 비행기 안에서 도착지의 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준비해두고 있으니 미리 비행기 안에서 빠짐없이 작성해 두세요. 칸은 특별히 지시되어 있지 않은 이상 다 채워넣는게 원칙입니다. 특히 나라에 따라 체재 장소와 일수, 소지금액에 대해서 상당히 신경을 쓰니 주의하세요. 범죄사실이나 위험물질 소지 여부 등을 묻는 것은 당연히 아니라고 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내리면 되도록 서둘러 입국심사대로 가는게 좋은데 왜냐하면 붐비기 때문이죠. 밀릴때는 상당시간 대기해야한다고 합니다. 심사대에서 신고서와 여권을 제시하면 별 말없이 입국 스탬프를 찍어주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현지 말이 되시면 현지말로 하면 되지만 영어로 하셔도 되고, 어찌되었던 포인트는 짧아도 좋으니 정확하게라는 겁니다. 특히 체재기간, 목적, 장소 등은 정확하게 말하는게 필요합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지문날인과 사진촬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상이 없으면 금방 통과할겁니다.

3. 짐찾기
출발지 공항 카운터에서 부쳤던 짐은 항공기와 함께 공항에서 내려졌을것입니다. 입국심사를 통과하면 전광판에 항공기 편명과 출발지와 짐이 나오는 컨베이어벨트 번호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걸 따라서 자신이 타고온 벨트를 찾아가서 빙글빙글 도는 가방들 중에서 자신의 짐을 찾으면 됩니다. 이럴때를 대비해서 여행을 많이하시는 분들은 독특한 모양이나 색의 가방을 사용하시기도 하신다는데 자신의 가방이 검정색에 바퀴달린 중간크기의 가방이라면 유심히 보셔야 할겁니다. 비슷하다고 무조건 들기 전에 카운터에서 짐을 부칠때 붙여줬던 스티커와 수화물표의 번호, 그리고 이름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들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미 짐들은 엑스레이로 검사가 다 끝났습니다. 따라서 만약 신고할 고가품이나 반입규제품이 없다면(대개는 없겠지요) 그냥 초록색 면세 출구로 짐을 끌고 나가면 입국장이 나오게 되고 면세구역을 나오게 됩니다. 간혹가다 세관에서 의심이 가는 경우 세관으로 가지고 오라고 푯말을 걸어놓은 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세관 카운터로 가서 짐을 열어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별로 그런 경우는 없는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출국절차보다 입국은 더 쉽지요? 귀국하는 절차는 대체로 우리나라에서 출국하는 절차와 동일합니다. 다만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공항마다 틀리니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돌아오시는게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인천공항은 터미널이 하나입니다만, 외국의 공항의 경우 두개 많게는 5개(런던 히드로)까지의 터미널을 두는 경우도 있고, 항공사마다 이용하는 터미널이 제각각입니다. 그러니 이용하는 터미널을 미리 파악해두어야 하겠습니다.  

컴팩트, DSLR… 해외여행갈때 카메라 어떤걸 가져갈까?

5월에 도쿄여행을 할때 준비물을 준비하면서 잠시 고민을 했었다. 카메라를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고민을 했었다. 결국은 DSLR을 가져갔다. “역시 여행지에서 찍을 사진이 멋져야 한다” 라는 것이 1.2kg(렌즈 포함)의 EOS-50D를 들고가게 한 이유였다. 글쎄 얼마나 멋진 사진을 찍었는지는 솔직히 내 자신으로는 답하기 힘들다. 하지만 너무나도 확실한건 이 녀석을 들고 다니느라 얼마나 어깨죽지가 아팠는지 모른다는 것과 커다란 덩치를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처음날에는 목에 카메라를 매고 돌아다녔더니 이튿날 부터 몸이 죽어났다. 물론 다른 관절도 아팠지만 목 죽지가 결려서 전자사전을 써서까지 약국에서 파스를 사다 붙이고서야 겨우 일정을 속행할 수 있었다. 집에서 떠나서 아픈게 얼마나 서러운지 그 당시에는 앞으로 사흘이나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까지 했었다. 아팠다. 그래서 그 다음 날부터는 어께에 스트랩을 매기로 했다. 백을 매듯이. 그랬더니.
 
문제는 귀찮다는 것이다. 스트랩이라는것이 그렇게 길지 않아서 목에 건 상태와는 달리 어께에 맨 상태에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결국 스트랩을 벗어서 접안을 하는데 그게 귀찮더라는 것이다. 손에 들고 있던것이라도 있거나 사람이 붐비면 더더욱이 힘들었다. 매고 다니는데도 걸치적거리고 부딪히는게 신경쓰이는데 이걸 벗어서 찍고 다시 걸고 하자면 필연적으로 잠시 서던가 걸음을 늦춰야한다. 한마디로 거치적 거리니 그냥 넘긴것들이 많았다. 물론 찍고 싶은 것은 찍었다. 수백장을 찍었고 웹에 업로드 한것만 200장이 넘으니까. 하지만 열정적으로 찍어댔던 첫날에 비해서 다른날의 볼륨이 팍팍 줄어있었다.
그러고보니 관광지 등지에서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동양인이던 서양인이던 봤지만 생각보다 DSLR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첫날 오다이바의 관람차에서, 그리고 둘쨋날에 도쿄도청에서 느낀 것이지만, 이 거대한 빌딩숲에 경탄하였다. 나는 이 도시를 전부 훑는건 깨끗하게 단념하고 겉핥기나 잘하면 본전이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면 신주쿠에만 30층이 넘는 건물이 50동이 넘는다.
   
위에 사진에 있는 50층 규모의 신주쿠 도쿄모드학원 코쿤타워 하나에 3개 전문대학이 입주해서, 알고있기로는 1만 5천명이 재학하고 있다. 이런 건물이 수십채가 있고 이런 부도심이 한두개가 아니다. 30층 이하의 건물은 도드라지지도 않을정도니 그 건물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있다면 도대체 이 도시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것인가. 숙소가 있었던 시부야역전의 유명한 횡단보도의 인파나 주말의 아키하바라의 인파, 히가시 신주쿠의 인파… 도쿄는 확실히 복작복작 거리는 도시였다. 처음의 해외여행이다보니 당연히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도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여행에 돌아와서 나는 워크맨의 나라 일본은 지금 다시한번 GHQ 점령중? 이라던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거대한 도시의 어지간한 관광스폿을 다 훑었지만 DSLR을 들고 있었던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던것 같다. 서울에서 코엑스나 명동을 돌아다녔대도 이렇게 눈에 안띄일리가 없다. 그나마 봤던 도쿄도청의 관광객 무리에 있던 동양인은 한국인임이 ‘감’으로 볼때 확실했다.  
그 예외적인 경험을 제외하면 과장 좀 보태서 나빼고 전부 컴팩트 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를 썼었다. ‘그’ 오타쿠의 성지라던 아키하바라도 워낙 용건만 보고 대충 훑어본 것도 있지만 나처럼 한복판에서 DSLR을 들이댔던 사람은 보지 못했다. 아니 일정 전체를 볼때 사진을 찍는 사람중에서 DSLR을 매고 다니던 사람이 없다고 장담하긴 그렇지만 확실히 적었다. 롯본기 힐즈 윗층의 전망대에서는 도쿄타워가 보이는 창쪽에서 사진기를 주고 부탁하면 사진을 찍어주는데 (그리고 자기네가 같이 찍은 사진을 판다), 도쿄 타워를 찍을겸 옆에 있으면서 보아하니 전부다 휴대폰이나 컴팩트 카메라지 DSLR 카메라를 맡기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DSLR은 확실히 사진을 잘 찍어줬다. 특히 오다이바나 롯본기에서 핸드헬드로 조명으로 밝혀진 레인보우 브릿지나 도쿄 타워를 찍을 때는 ISO가 1600 까지 올라가도 사진을 건질만했기 때문이다. 맑고 화창한 대낮에는 솔직히 컴팩트를 든들 큰 차이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DSLR은 빛을 발하는 것이 사실이다.  어찌됐던간에 여행에 돌아와서 사진으로 남긴건 적지 않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더 찍을 수도 있었다. 이상의 이유로 나는 다음에 여행을 갈때는 무거운 DSLR을 가져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을 할것 같다. 지금도 그때 결렸던 어깨나 걸치적 걸리던 경험은 정말 잊혀지질 않는다. 태어나서 그렇게 결려본적이 없으니까. 물론 하도 걸어서 생긴 관절통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지만.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산지 석달도 안된 신품이었던 관계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세관에서 신고를 하고 나갔었다. 렌즈번호와 시리얼번호를 적고 신고서 부본을 받고 나갔다. 물론 잡동사니만 사와서 세관은 별로 무리없이 넘어갔기 때문에 괜히 등록했나 싶지만. 나름대로 고가의 DSLR이라면 세관 신고를 해야한다는 점도 잊어선 안되겠다.
이상 여러가지 단상을 적어봤다. 여행을 생각하는 여러분도 참고가 되길 바란다. DSLR을 살때 렌즈 2~3개까지 포함해서 사서는 가방에 들고 다니는 경우를 봤는데 솔직히 해외여행할때 카메라 가방을 들고가는것 자체가 한적한 휴양지에서 유유자적하는게 아니라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가본사람은 알것이다. 내가 보기에 어딘가 잡지에 실려야 한다거나 웹에 거대하게 바탕화면 처럼 쫙 깔리도록 찍을 작정이 아니고서야 대개는 조그만한 컴팩트 카메라 하나면 충분할 것같다.

억울하다. 정말 목놓아 울고 싶을 정도로.

나는 여지껏 해외여행 한번 해본적이 없다. 비행기를 좋아해서 비행기 종류를 외지만, 타본건 단 한번 제주도 어렸을때 왕복해본게 전부이다.

유학이니 어학 연수 학원이나 과외 없이, 순수하게 한국에서 공부해서 외국에서 살다온 애들, 각종 외고 출신들이 바글거리는 대학 외국어 특기자 전형에서 영어 소논문과 토론을 해서 악을 쓰고 밀어붙여 합격했다. 몸이 좋지 않아 누구네처럼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없었던게 천초의 한이다. 내가 만약에 조금만 몸이 좋았다면 콩팥 한쪽을 팔아서라도 도미를 했을 것이다.

그런 나는 소원이 하나 있었다. 나는 몸이 안좋다. 여행이 힘들다. 그래서 남들 다가는 다른 나라 한번 가보는것이었다. 설령 대마도라도 좋다고 한적도 있었다. 갔다와본 사람들이 부러워 죽겠다. 여권을 태어나서 세번이나 발급 받았지만 스탬프를 찍어본적이 없다. 가이드북을 닥치는대로 본다. 집에 보면 론리플래닛, DK 등 가이드북이 지역별로 몇권씩은 있다. 전화로 동경에 있던 준영이에게 롯본기에서 어디어디 가보라고 안내했던 기억이 남는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가끔은 울것만 같다.

돈을 모았다. 용기를 내서 솔직히 말해서 언제 가도 상관 없을 정도로. 근데 요즘 환율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 연초에 여름쯤에 다녀올까 해서 총 비용을 산정했는데. 중요한건 당시에 숙박료가 한국돈으로 12만원인데, 지금은 17만원이다. 9일을 있을까 생각했는데 방값만 50만원이 올랐다. 여비로 가져가려던 금액이 150만원으로, 당시환율로는 17만엔이었는데, 지금은 11만엔이다. 17만엔을 지금 가저가려면 6만엔이니까 79만원 가량이 더들어간다. 포기다…

나야, 그래 뭐 놀러가는 여행, 갔던 사람들 이야기나 기념품 받아들면 부럽지만 22년을 참았는데 좀 미루면 어떻고, 심하면 좀 안하면 어떻겠냐. 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떻하나. 공부하러 나간 사람, 일하러 나간 사람…. 어떻게 이렇게 망쳐놓을 수가 있냐….. 저 비용이 안들어가도 되거나 절약해도 되는 비용이 아니라 사실상 생활의 구명줄인 사람들이 있다…

유로가 1800원을 돌파할때 독일에 있는 한 블로거가 하소연을 하길래 나는 눈물을 흘렸다. 정말 나는 이렇게 되지 않았으면 했다고, 투표날에 뭐 일찍 일어나서 투표하진 않았어도 문닫기전에는 뛰어가서라도 했다고. 여기선 해볼만큼 해봤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힘내라고. 물론 선진국에서 공부하면 자기 자신의 영달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그게 우리나라에는 도움이 안되겠나. 솔직히 말해서 어려웠던 70년 80년대 구미에서 공부했던 인재들이 없었으면 우리가 반도체는 팔 수 있었겠나…  이국에서 얼마나 고생을 하고 서러움을 느껴야할까…. 자기가 뽑지도 뽑을수도 없는 무능한 위정자가 이 지경으로 나라 경제를 망쳐서 그 댓가로 고생하게 될 자기 운명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 론리플래닛 새 개정판이 나왔길래 주문했는데 아래 메시지가 있더라. 환율이 올라서 책값이 올랐단다. 이명박 이 쥐보다도 못한 새끼는 이제 책상머리에 앉아서 여행하는 상상도 못하게 하려는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