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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뉴스스탠드, 독일까? 약일까?

사실 나는 네이버 없이 살 수 있다는 선언을 2009년에 하고 거기에 대한 비아냥에 반박까지 한 이후로 네이버를 거의 들어가지 않는 까닭에 잘 모른다만, 선정적인 뉴스의 산실이던 네이버 뉴스캐스트가 사라지고 4월 1일 부터인가 뉴스스탠드라는 녀석이 생겼다는 모양이다. 사용자가 언론사를 선택해서 첫 화면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낚는 것’도 곤란해 졌다는 말이다. 덕분에 중소 언론사에서는 PV(Page View)가 급전직하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블로그를 하다보면 느끼는 것이 있는데 PV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UV(Unique Visitor)가 있고 그외에 체류 시간도 중요하다. 체류시간을 재는 방법은 Duration Time도 있고 View per Visit 라는 방식도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에는 Duration Time도 중요하지만 후자가 더 영양가 있는 통계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Duration Time은 단순히 페이지를 열어놓고 읽으면 올라가는 수치지만 후자는 접속한 사용자가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돌아다녀야 올라가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즉 다시 말해서 사이트의 내용에 그만큼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뭐 사실은 둘 다 보는게 좋지만 말이다. 나도 물론 방문자, 이른바 검색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PV가 올라가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되도록이면 체류시간의 증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링크를 추가하거나 태그를 엮거나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한 페이지만 보고 돌아가는 독자보다는 아무래도 여러페이지를 보는 독자가 더 양질의 독자이기 때문이다.

(WSJ 한국판 편집자 한정연씨)

이처럼 뉴스스탠드의 독자가 각 매체의 충성도가 높고 체류시간이 높다. 따라서 광고나 부분유료화(metered paywall)에도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제목으로 낚는 것만으로는 이제 앞으로 통하지 않게 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처럼 ‘광고 더미’으로는 기피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한겨레의 웹사이트를 (꽤) 오랜간만에 들어가봤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견을 떠나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웹사이트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그 까닭은 광고가 읽는것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뉴욕타임스에 유료화를 하면서도 광고를 싣는 것에 대해서 가독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싣는다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최근의 한겨레 웹사이트 또한 나름 그 부분에서 신경을 쓴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다른 언론사 사이트들은 여전히 문제가 많은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물론 수익화에 관한 문제겠지만… (사실 내 블로그만 하더라도 호스팅 비용과 도메인 비용을 들이는 반면 구글 애드센스 조차 달지 않고 있지 않은 까닭에 매년 적자지 않은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험으로 돌아와서 단순한 검색으로 들어온 방문자를 여러 페이지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고, 그 방문자를 RSS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등의 구독자나 팔로워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며, 그런 식으로 고정적으로 반복해서 방문하시는 분들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뉴스캐스트는 내가 볼 때 매체의 충성도를 높혀줄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우려가 되는 점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구독자’를 늘려나갈 것인가? 라는 점이며 네이버 홈 화면에 꽂느냐?라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자들이 적극적인 수용이 아니라 수동적인 수용에 익숙해져서 그냥 네이버 뉴스로 흘러가지 않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 있는데, 그것을 달랠 방법은 하나 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랙티브 등 컨텐츠의 향상과 가독성 향상을 위한 레이아웃의 정리라는, 컨텐츠의 충실화라는 정공법밖에는 없다.

한겨레를 보면서 드는 걱정

한겨레를 보면서 드는 걱정은 딱하나다.

‘출판계가 어려우면, 한겨레도 이만저만 골치가 아프겠구나’

싶을 정도로 책광고가 많다. 책광고 많은게 나쁠리 없고, 오히려 좋다. 일본신문보면 1면광고가 책광고이고 심심찮게 책광고가 나온다. 다만 걱정인건.

명박이도 나랑 똑같은 생각하는거 아닌가 싶다.
‘네티즌들이 조선일보에 광고한 업체에 압박넣듯이 명박이가 한번 출판사를 훑어버리면 어떨까?’

….. 걱정이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7,80년대 군부독재 시절이 떠오르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공안정국이긴 공안정국인가봐.

한국 신문은 전부 삼류 찌라시일 수 밖에 없는 이유.

헤드라인을 남용하는 황색 저널리즘이 횡행
일단 활자라는 특성상, 중요한 대목은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럴때 쓰는 방법이 헤드라인을 하거나 부제를 붙이거나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기존의 신문은 중요한 팩트를 강조하는데 사용한다기 보다는 신문사의 논조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어 왔습니다. 근데 그게 편향되고 편파적이라는것이 문제입니다. 뭐 언론이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는건 납득되지만 어디까지나 선동적이니 문제이지요. 그러니 막상 헤드라인을 읽어도 본문을 별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수사적이고, 선동적이며, 감정적이기 때문에 ‘요지’라는 객관적인 내용을 추리기가 어려운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친구 준영군이 미국과 일본의 신문을 사다주어서 1면을 한번  읽어보니 정말 재미있더군요. 신문 전체를 놓고 비교하는건 좀 봐주시고, 헤드라인만 어떻게 뽑는지 보시죠.

-뉴욕타임즈 4/22자.
“식품의약청 11개국에서 오염된 헤파린을 발견”
   – 미국내 81 명 사망과 관련 되어 있어
   – 중국은 오염이 심각한 질병을 유발하는 것을 부정
“사드르(이라크 도시), 기본적인 서비스가 흔들린다.”
   – 발생된 지연이 무장집단을 막기 위한 노력에 위기를 일으키다.
“공사장 사망 증가에 따라 건축 책임자가 조사 받아”

-워싱턴 포스트 4/21자
“가족의 DNA가 범인 체포를 위한 도구로.”
   – 개인정보보호론자, 개발중인 기술이 가족을 유전자 정보원으로 만든다 주장.
“올림픽 선언에 못미치는 중국”
   – 인권, 오염, 언론 자유에서 갈길이 멀어.
“오바마, 어조를 신랄하게 하다.”
   – 펜실베니아 투표가 가까워지자 클린턴은 오바마의 네거티브 전환을 비판.

아사히 신문 3/31
“도로재원을 둘러싼 수상제안 – 09년도 일반화 찬성 58%”
   – 민주 대응은 평가 양분
   – 본사 여론 조사, 내각 지지율 31%.
“교토의정서기간 내일 본격 개시”
  – 기온가스 6% 감소, 5년의 국제 협약
  – 온난화 대책이 사회의 가치관이 되다.

저희집은 중앙과 한겨레를 구독합니다. 30일자 배달된 중앙일보와 한겨레의 헤드라인과 비교해보십시오.

중앙일보
“휴일 서울 한복판은 전쟁터였다”
   – 시위대, 전의경 50여명 포위한채 무차별 폭행
   – 쇳조각, 돌 던져 부상자 속출… ‘시가전 보는 듯
“고 윤영하, 한상국 조천형… 6년만에 마침내 영웅이 되다”
   – 제 2 연평해전 첫 정부 주관 기념식

한겨레
“비폭력 호소마저 곤봉, 방패로 찍어”
   – 경찰, 충돌 막으려 드러누운 ‘YMCA 행동단’ 짓밟아
   – 시의회옆 곳곳 비명… “정부 비폭력 말할 자격 있나”
“서울광장 원천봉쇄… 항의시민까지 연행”
   – 전의경 1천여명 동원 진입막아… 시민-경찰 종로서 격렬 대치

어떠십니까? 차이점이 보이시나요? 모르시겠다면 자세히 한번 보십시오. 미국과 일본의 신문은 헤드라인을 사실 요약을 해서 뽑습니다. 수사여구가 들어가질 않습니다. 미국쪽 언론은 특히 행위자와 행위, (필요하면) 그 행위의 대상을 한꺼번에 헤드라인에 넣습니다. 영문법 1장에 문장구성요소만 떼어도 이게 영어 문장의 최소 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문법 책에서 자주 쓰는 형식으로 설명하면 S+V형 호은 S+V+O 형이죠.

일본 언론도 매우 드라이합니다. 요컨데, 사천 대지진만 해도 우리나라 언론에서 생지옥처럼 헤드라인을 뽑았던 반면 일본 신문은 “사천 대지진 – 사망, 실종 2만 7천인” 이렇게 간결하게 뽑았습니다.

반면, 특히 ‘조중동’ 3사는 찌라시라고 놀림받을 정도로 자극적이고 수사적인 헤드라인을 뽑는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한겨레라고 정도의 차이이지 다를 것은 없습니다. 중앙일보의  ‘서울 한복판은 전쟁터”나 한겨레의 “비폭력 호소마저 곤봉, 방패로 찍어”는 어디까지나 기자나 에디터의 주관 어린 묘사 혹은 결론입니다. 한쪽은 너무 추상화처럼 흐릿하고, 한쪽은 너무 한곳만을 찝어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아닌것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그런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오롯이 사실만은 아닌 것입니다.

양 기사를 읽어보고 헤드라인을 고쳐써봤습니다.
‘정부 담화에 따라 경찰이 강경 대응.. 충돌 발생’
굳이 부제를 하나 덧붙이면 ‘양측 감정 격화에 따라 폭력 발생, 경찰-시민 부상자 OO명’  정도 겠지요.

대강을 이해하기 쉬운 헤드라인과 강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사 같이 글을 쓰면 수사적인 표현이 없을수 없습니다. 또 그런 표현이 없다면 글을 읽는 맛도 떨어집니다. 하지만, 헤드라인과 강조에서는 어디까지나 팩트가 필요합니다. 뭐 그걸 고치라고 고친다고 해서 지금 우리나라 신문이 어떻게 되기에는 100년은 이르지만.  
 

[옛날에 쓴글] 보충 수업 허용이 두렵다.

2003년, 고등학교 2학년때 한겨레 신문에 기고했던 글이다. 어쩌다 보지도 않는 신문에 오피니언 란에 이걸 쓰게 됐냐면, 그냥 이 글의 시각이 교육문제에 진보적인 성향의 한겨례 신문의 방침과 잘 맞겠다 싶어서였다. 아마 내가 이 글이 실렸다는 사실은, 한겨레 신문사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실을 수 없다고 해서 그냥 고등학생이라는 것만 밝히는 조건으로 알려주고 나서 이게 실리겠구나 싶어서 그 다음날 신문을 사서 보았기에 알게 된 것이었다. 신문사에서도 글의 성격상 학생이라는것만 밝히고 말았지만, 나는 그 다음날 2학년 부장을 하시던 김영군 선생님한테 불려가서 혹시 너 한겨레 신문에 글썼냐?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김한솔이 이 나라에 한명밖에 있는것도 아니고 어떻게 단정하셨는가 신기할 따름이지만. 나는 그때 아뇨 저희는 중앙일보 보는데요. 라는 대답을 하니 알겠다며 돌려 보내셨다. 안보는 신문에 기고하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한겨레 신문이 진보 성향이라는 것이 널리 알려진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죄송해요 김영군 선생님… 이해해 주시리라 믿어요.

지난 8월28일 정부는 보충 수업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발표하였다. 그 범위는 학과 일정에 상관 없는 한도 내에서 진행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발표를 보고 과연 이 나라의 교육 백년지대계가 어떻게 꾸려지기에, 이러한 어이없는 정책이 입안될 수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우선 그 내용의 터무니 없음은 고사하고, 그 정책을 입안하게 된 상황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 재학생으로서 말하건데, 지금도 상당수 학교에서 정부가 금지하고 있는 문제 풀이식 수업 진행이 저녁 11시까지 계속되고 있다. 귀가해서 과제물 하다 보면 두시를 넘기기 일쑤다. 그런 다음날 아침 예닐곱시까지 등교를 해야한다. 어떻게 교육 당국이 이런 현실을 모를 수가 있는가 예산 감사 때문에 책걸상을 못 바꾸네, 비품을 못 바꾸네 너스레를 떨 정도로 교육감 시찰과 감사로 난리를 피우면서 어찌 정작 학생들이 학교에 몇시간 동안 붙어있는지를 감시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학력 저하 등을 이유로 입안자는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내놓은 대책안이겠지만, 우리 학생의 학력저하 문제나, 사교육 문제는 보충학습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수많은 학교가 ‘특기적성 교육’이라는 이름의 시간으로 꽃꽂이를 하네, 붓글씨를 하네 하며 신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에게 특기적성에대한 선택권은 없이 담임 교사가 백지로 특기적성 교육 희망원을 걷고 적당히 반을 나눠 문제 풀이식 보충수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걸 보고 우리네 교육 관료께서는 보충 수업이 없네 하는 모양인데, 말 그대로 눈가리고 아웅하기다. 최소한 병원 진단서를 끊어와야 일찍 하교할 수 있는 형편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아침에 등교해 상당수 학생들이 엎드려 새우잠을 잔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하루 종일 기운이 없이 지낸다. 교육 당국의 형식적인 관리, 감독이 이런 결과를 낳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만약 교육 당국이, 하다 못해 학교의 연말 수입?지출 내역만 살펴보아도, 아이들 저녁 밥값으로 나가는 돈이 한두푼이 아니고, 저녁 시간에 불이 켜져 있는 학교가 수두룩하다는 걸 알 수 다. 그런데도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보충 수업을 허용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 상황에서 그것을 아예 빗장 열고 허용을 하시겠단다. 그럼 불법으로 온갖 탈법, 편법을 동원해 보충 수업을 하는 이 마당에도 이 지경인데, 허가해주면 도대체 어느 지경까지 봐주겠다는 말인가 학교에서 이렇게 탈법과 편법이 판을 치는데, 자라나는 학생들이 원칙을 지켜야한다는 말에 콧방귀나 뀌겠는가 대통령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와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법과 원칙”을 무시하여서는 안된다고 할 때마다 씁쓸할 뿐이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보충 수업 허용 입장을 유보하고 실상을 조사해보아라. 그렇다면 그 결정이 틀린 것임을, 보충 수업을 한다고 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자각할 수 있으리라.
김한솔/고등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