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법무부의 전쟁, 그리고 우리나라

애플이 법무부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가디언이 잘 정리했습니다). 작년 있었던 샌 버나디노 총격 테러 사건의 용의자가 가지고 있던 아이폰 5c가 모든 문제의 시작입니다. 그는 클라우드에 백업을 중단했습니다. iOS는 8.0 이후 기본적으로 암호로 장비를 암호화했고, 5s 이후로는 하드웨어 차원에서 보안이 강화됐습니다. 그리고 애플은 자신들은 풀 도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 사건이 표면화 되기 전 지난 몇 달간 FBI와 법무부가 애플을 어르고 달랜 것이 밝혀졌습니다. 사실 연방 정부의 이러한 액션은 수많은 지역에서 수백개의 증거로 수집된 아이폰이 잠긴 상태로 잠들어 있어서 지방 검찰들이 무척 짜증이 나있다는 점에서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CEO 팀 쿡은 이례적인 고객에 대한 편지를 써서 애플은 이 전화를 풀 도리가 없고 미국 사법 당국이 자신들에게 아이폰의 잠금을 풀 수 있는 ‘뒷구멍(백도어)’를 만들라고 강요하는 것이며 이런 뒷구멍을 만들면 해커가 유용(exploit)할 가능성도 있을 뿐더러 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주장했습니다. 팀 쿡은 이 요청을 ‘소름 끼친다(chilling)’고 까지 말했으며, FBI가 우리에게 악성 종양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까지 주장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테러 방지법에 대한 무제한 논의(이른바 필리버스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글쎄요, 법안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조지 W. 부시 정권에서 9/11 테러 이후로 도입했던 애국자법과 마찬가지로 정보기관에 막대한 권한을 주는 법안이라고 추측됩니다. 물론 강력한 권한이 반드시 악용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폭로했던 것처럼 마냥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헌법 제 18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통신비밀보호법으로 하여금 그 절차와 범위를 제한하고 있습니다(‘범죄수사 또는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보충적 수단으로 이용되어야 하며 국민의 통신비밀 침해가 최소한에 그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3조 2항) 저는 헌법상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어디까지나 필요 최소한으로 제한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사실 지금도 빈번하게 통신 기록에 대한 열람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합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카카오톡의 운영사인 카카오는 2015년 하반기 투명성 보고서에서 수사기관에 제공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2015년 10월 이후 당해년도 연말까지 3개월간 9건의 통신제한조치 요청 중 8건을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테러를 막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초 헌법적인’ 법규로 이뤄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 현재의 법 체계로도 충분히 수사 당국은 필요한 정보를 법원의 심사를 거쳐 얻을 수 있습니다. 인신 구속만 하더라도 현행범이라면 긴급체포를 할 수 있고, 사안의 경중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법원의 영장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급한 일이라면, 가령 테러범이 폭탄을 들고 어슬렁 거린다고 가정해 봅시다. 한가하게 이메일로 통신 내역을 전달받는게 아니라 있는대로 뒤져서 신병을 확보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지금 애플은 미국 법원의 명령과 법무부의 압력과 싸우고 있습니다. 애플을 자유의 투사처럼 볼 생각은 없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고, 스노덴의 말마따라 이번 10년간 가장 중요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애플이 여기서 투항하게 된다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전화기도 마냥 안전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덧붙임. 헌법 재판소가 원고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광범위한 인터넷 패킷 감청의 위헌 여부에 관한 헌법 소원에 대해서 사실상 판단을 포기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애플 워치, 30일 후

오늘은 애플 워치(Apple Watch)를 받은지 30일째 되는 날입니다. 처음에 사서 감상을 올렸습니다만. 사실 아는 분이 애플 워치의 ‘굼뜬’ 작동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미리 보여주셨었고, 어지간한 ‘애플 빠’가 아니라면 그 동영상을 보고 나서 애플 워치를 살 생각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첫 소감에도 적었지만, ‘정말 못 쓸 정도라면 환불하지’라는 생각으로 샀습니다. 솔직히 성인이 되서도 시계를 차긴 했는데 조본(Jawbone) UP을 얼마 차다가 내팽개친 이력이 있어서 꾸준히 찰 수 있을까 싶기는 했습니다. 실제로 컨디션이 정말 안좋은 날에는 그냥 도크에서 잠자기는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처음 우려와는 달리 꾸준히 찼습니다.

트위터의 지인께서 여쭤보셨다. “안 좋습니까?” 라고.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어느 쪽을 고르라면 만족합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지금도 만족하는 편입니다. 물론 빠릿빠릿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정말 본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일, 가령 중요한 알림을 받고, 전화기 꺼내기 힘들때 전화를 걸고 받고 그리고 몇가지 앱을 사용하는 정도는 아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분좋게 톡하고 알려주는 느낌도 좋았어요. 애플 페이가 지원되서 결제가 된다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르죠. 임정욱 님이 올리신 사용기을 읽어 보면,

사실 내가 애플워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필요로 하는 기능은 운동측정기능이다. 지난 2년동안 핏빗을 착용하면서 가장 덕을 본 것이 매일 꾸준히 움직이도록 해주는 동기부여 덕분에 매일 1만보이상씩 걸었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애플워치가 보다 정교한 운동량측정을 해준다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중략) 한시간가까이 일어나지 않고 앉아만 있으면 자꾸 일어나라고 신호를 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나 복도를 한바퀴 돌고 올 때도 있다.

실제로 저도 애플워치의 부추김(?)에 넘어가서 매 시각마다 돌아다니고 조금 더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적당히 격려하며 부추기죠. 칼로리 소비와 운동, 그리고 일어서기 목표, 세가지가 있다는건 아실텐데 운동은 채우지 못했지만 나머지 두개는 몇번이고 달성했고 300%, 400%를 달성한 날도 있습니다. 메달이 나오는데 뿌듯하더군요.

“아예 않써볼 수는 있지만, 한번 써보면 계속 쓰게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저는 오늘 애플 워치를 환불할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지금 사기에는 늦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여러분도 만족하실 거라고 봅니다. 지난해 4분기에 410만개가 팔려 단숨에 업계 2위가 된 데에는 사과 마크 말고 이유가 있습니다.

트위터라는 비밀 결사 모임

트위터가 아픈 모양입니다. 사실 블로그는 제쳐두고 트위터에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붓는 저로써는 매우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좋은 서비스라면 돈을 내는 저로써는 무료로 대안이 있는 서비스가 있더라도 가령 RSS 서비스인 feedbin이나, 북마크 서비스인 Pinboard에 얼마간의 돈을 냈거나 내고 있습니다. 물론 엄청난 반발과 이탈을 피할 수 없지만 트위터가 돈을 받겠다고 하면 기꺼이 내겠어요.

하지만, 트위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트위터의 매출에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물론 트위터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습니다. 월트 모스버그는 The Verge(더 버지)의 컬럼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쓰기 난해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몇 달전에도 바로 얼마 전에도 어떤 식으로 트위터 초심자가 접근을 하면 좋을까 설명하는 글을 쓰려고 시도는 했습니다만 너무 방대한 여정이 될 것 같아 현재로써는 보류 상태, 즉 초고 상태인 채로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끝날지 모르지만 정작 그 언제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할 일 관리 프로그램에서 비활성화 시키는게 건강에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트위터 사용의 난해함은 모스버그 옹이 잘 설명했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시간이 허용한다면 번역도 생각해 볼 참입니다만. 여하튼 저는 그것과는 조금 다른 트위터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해서 얘기해 볼 참입니다.

트위터를 시작한게 2009년입니다. 사실 그 때부터 꾸준히 트위터를 하시는 분도 계시고(연락이 따로 되는거는 아니지만), 아니면 그 이후에 시작하셔서 교류가 있는 분도 계십니다. 아이러니한건 2010년대 초반들어서 교류가 있었던 분보다 2010년대 중반, 그러니까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분과 교류가 좀 더 잦습니다. 사실 꽤 많은 분들을 팔로우했는데 크게 나뉘면 뉴스를 전달하는 계정, 그리고 IT 관련, 마지막으로는 서브컬쳐 계열입니다. 작년 3/4분기에서 4/4분기 정도쯤에 저는 트위터 프로필에 ‘오타쿠’라는 점을 명기했습니다. 그러니 꽤 오랫동안 팔로우했던 오타쿠 여러분이 팔로우 백(follow back;맞팔)을 해주셨습니다. 그 외의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이 자리를 빌어 (조촐하게나마)영광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지난번에 오타쿠에 대해서 장황하게 썼을 때도 말씀 드렸습니다만 오타쿠라는 집단은 꼭 국정원의 옛날 목표를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였나요? 몇몇 분들은 제가 ‘고고한’ IT 블로거로 남아 있었다면 팔로우하지 않으셨을겁니다. 장담하죠.

트위터는 초심자에게 불편한 서비스입니다.

“여유 시간”에는 사람들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데, Twitter는 그런 일을 필요로 합니다. 당신의 흥미를 알아야 하고, 누구를 팔로할지 알아야 하고, 거기에 더해 필터링되지 않은 트윗에서 당신이 흥미로워할 내용만을 뽑아내야 합니다. 반면 Facebook은 그 모든 작업을 알아서 해 줍니다. (중략) Twitter 식으로 말하자면, Facebook은 자신의 관심 그래프(interest graph)를 만들었고 Twitter가 이루지 못한 정도로 훨씬 뛰어나며 쉽게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Twitter는 NBA 트위터나 저와 같은 뉴스 사냥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니치를 소유하고 있습니다만 – 중국을 제외한 – 세계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1 Facebook을 가장 먼저 체크할 것입니다. 아침뿐만 아니라 여유 시간이 있다면 언제라도요. 요약하자면, Twitter가 서비스를 다시 한 번 써 보도록 권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것도 새 사용자를 불러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지만요. 설사 마술같이 서비스가 완벽한 알고리즘 기반 피드로 뛰어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게 필요한 사용자가 왜 Facebook 피드 대신 그걸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득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 How Facebook Squashed Twitter- Ben Thompson / 나가토 유키님의 번역 발췌.

저는 몇년 트위터를 했고, 그러다보니 관심사를 가진 조그만한 몇 개의 ‘그룹’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페이스북의 그룹이나 그런 것과는 다른데 말이죠. 실체가 없습니다. 가령 A와 B는 서로 친구입니다. 여기에 C가 A를 팔로우하고 A가 C를 다시 팔로우해서 맞팔이 됩니다. 근데 C가 A와 B 두 사람의 구미를 맞는 글(트윗)을 쓰면, A는 이를 리트윗하고, B는 C의 프로필과 트윗을 보고 C를 팔로우하게 됩니다. 그러면 C는 A와 B의 그룹에 들어가게 됩니다. 간단하게 3명만 이야기하면 몇 안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그룹’은 작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수십명 수백명이 될수도 있기 때문에 이 안에 들어갔을때 트위터에서 자신의 발언의 영향력은 천양지차가 됩니다. 혼자서 막 시작해서 팔로워가 없고 지인도 없다면 그야말로 독방에 갇혀서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지만 한 번 ‘그룹’에 들어간다면 트윗 하나 둘에도 통통통 반향이 있어서 ‘쓰는 맛’이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그러면 마치 펀치 라인(punchline;네타)를 구사하면서 관객들을 웃기는 코미디언 같은 기분이 듭니다. 반응이 좋을 만한 일침이나 순간의 번뜩이는 재미있는 생각, 고찰거리를 트윗하고 코미디 쇼의 관객들이 웃어 대듯이 반응이 오는거죠. 리플라이든, 리트윗이든, 좋아요든. 그러면 신나서 또 뭔가를 궁리하게 됩니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습니다.

해서, 그렇다면 이 그룹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어떨까요. 재미가 없습니다. 물론 설령 저 사람이 나를 팔로우해주지 않는다 치더라도 멘션을 보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팔로우할 수 있기도 하죠. 적어도 저는 합니다. 근데 문제는 막상 처음 시작한 분들을 팔로우하려고 한다면 문제는 이 분들이 올린 글이 별로 없어서 사실 트윗량이 많지 않으므로 팔로우해도 큰 부담은 없지만 이 분들이 뭘 올릴지 모르기 때문에 팔로우 백하는것이 망설여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인거죠. 아마 지쳐서 트위터를 나갈지도 모릅니다.

거기다가 아까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정교하게 리스트를 관리하지 않는 이상 홈 타임라인에 넣고 읽을 수 있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기껏해야 수백명에서 많아봐야 천명 언저리일까요. 그러다보니 처음 시작하는 사용자들의 많지 않은 트윗을 받는것이 큰 부담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로우백에는 소극적이 됩니다. 수천 수 만명의 팔로워와 팔로잉을 가진 소셜 미디어 운동가가 아니면 말이죠. 그분들은 트윗을 전부나 읽기는 하나 몰라요. 여튼 수용 가능한 한계가 있어서 새로운 사용자들에게 ‘끼워 줘’라고 말하기가 힘듭니다. ‘끼워 줘’, ‘응, 그래 이리와 같이 놀자’가 안되다보니 멀리서 ‘얼레리 꼴레리~ 푸른곰은 관심 종자래요~’ 같은 ‘어그로’성 트윗 혹은 멘션을 하거나 순간적으로 관심을 끌기 좋은 차별 발언(젠더 이슈가 대표적)이나 정치적인 문제 에 관한 헛소리를 해서 ‘광역적인 어그로’를 일으키는 등 자극성이 올라갑니다. 그런 이유로 기존 사용자들은 신규 사용자들을 더 경계하고 배타심이 생기는 악순환이 형성 됩니다. 놀이터에서 친한 친구끼리 잘 놀고 있는데, 엄한 녀석이 와서 어그로를 끌어대니 앞으로는 못 본 애가 와서 말만 걸려해도 반쯤 털이 곤두서서 언제든 갸릉거릴 태세고, 그걸 보고 끼워달라고 할 용기나 ‘적의 없음’ 혹은 ‘선의’임을 나타낼 시간이나 노력을 기울일 수 없다면, 언제든지 복잡한 룰 따위는 버리고 ‘친구들이 가득한’ 페이스북으로 가서 놀면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트위터가 극적으로 나아질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한국에 있어서 트위터의 동맥경화 혹은 뇌혈전은 사용자 스스로들이 만든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트위터가 매우 강세라서 2015년말 기준으로 보면 페이스북보다도 사용자가 많습니다만 NHK에서 소셜 미디어(라고 쓰고 라인이나 트위터)를 쓰는 일본 고교생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는데 친구들끼리 ID를 교환해서 쓰는 계정과 ‘취미’ 등을 숨어서 하는 계정 등으로 나눠서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실제 생활에서 만들어진 그룹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인상 깊더군요. 사실 이게 페이스북의 장점이니까요. 글쎄요, 저도 제 ‘리얼 ID’의 계정이 있지만 사용은 거의 안합니다. 사실 주변 사람 중에서 트위터 하는 사람이 얼마 없어요. 필요성을 못느끼는 건지도 모릅니다만, 트위터가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서는 오프라인의 친구를 끌어들이든, 아니면 이미 사용하는 사용자들과 위화감 없이 섞이도록 유도하거나 해야할 것 같습니다만, 우리가 그러듯이 서로 ‘끼리끼리’ 논다면 백날 그래봐야 소용이 없겠죠.


  1. 여담으로 그는 일본의 사정을 몰랐나 봅니다.

시계로써 애플 워치의 디자인과 앞으로의 디자인에 관해

애플워치를 디자인한데 있어, 그리고 앞으로 디자인하는데 있어 고심되는 부분이라고 짐작하는건 시계라는 물건이 시간이 간다고 ’구식’느낌이 확 나면 디자인적으로 실패라는 점이다. 스위스 시계를 생각해보라. 구형이라고 해서 한물간 인상은 들지 않는다. 정말 고심되는건 그렇다고 인상이 옅은 디자인은 매력이 없고.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면 나오는 대로 그게 참신함이 드러나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형이라도 뒤떨어지는 느낌이 아니라 ’아 저 사람이 애착을 갖고 쓰는구나/썼구나’라는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 점이다. 최소한 일단 지금까지 볼때, 관심을 가진 사람이면 착용자의 손목을 보면 저 사람이 애플워치를 찼구나 라고 인지할만한 특색의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하긴 했는데, 이게 가령 올해나 내년에 과격하게 바뀌어서 아이폰 마냥 전년도 모델이 확 구식으로 보이면 난감하다는거다, 적지 않은 돈을 주고 비 필수재를 사는 고객 입장에서. 그리고 애플도 난처해지긴 마찬가지다, 한 두해에 외관상으로 확연하게 구식이 된다면 주머니에 넣는 전화기와는 달리 늘 착용하고 노출되는 애플워치(게다가 애플 워치는 몇년간 쓸 수 있는 품질 좋은 전통적, 다시 말해 크게 변할 일 없는 시계를 사고 남는 가격이다)를 안심하고 살 사람은 줄어 들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무언가 ’전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애플이 삼성을 법정까지 끌고간 사유중 하나인 ‘둥근 사각형에 화면 하단 버튼’ 마냥 최소한 몇세대는 갈 디자인을 염두해 둔게 아닌가… 라고 생각은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같은 관점에서 삼성이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기어 S2 같은 걸출한 물건을 만들어냈지만 그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여지껏 디자인이 이리저리 바뀌었으니… 답을 찾는 여행으로는 좋은데 너무 IT가젯 감성이다. 이제 ‘이거다’ 싶은걸 찾았으면 너무 ‘과격한’ 변화는 삼가야 한다고 본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지난 ’15년 4분기에 애플워치 덕에 스위스 시계 판매량을 스마트워치가 추월했다는데 처음에 스위스 시계회사들이 애플워치 출시 전이나 초기에 잠재적 위협으로 보면서도 어느 정도 과소평가를 한 이유가 자신들의 자존심인 스위스 시계의 정립된 형태로써 완전성을 범접할 수 있을까, 전자 기업들이 사이클이 길어봐야 1년인 전자기기로써 소비자에게 매년 신기종을 소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변할수 밖에 없는 숙명을 어떻게 극복할지 알까? 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신감,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의외로 3월 이벤트에서 ’시계는 경미한 변화’만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은게 안쪽만 살짝 바꾸는. 그니까 차세대 모델이 나오더라도 ’취미’였던 애플TV 마냥 폼팩터는 그대로 두고 속만 갈아 엎는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 정말 밴드 같은 것만 추가되더라도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단순히 ’줄장사’가 아니라 이리저리 휙휙 해 넘어간다고 바뀌는게 아니라는 신뢰감을 줄 여지도 고려할 수 있다. 30핀 도크 커넥터나 라이트닝 커넥터처럼 최소한 밴드는 당분간 호환되게 만들 가능성이 전망되고 그러자면 애플은 과격한 변화는 일이년은 참을지도 모른다.

물론 스포츠 에디션 가격대라면 기존 시계 세그먼트에서 캐주얼 워치 마냥 비교적 좀 더 공격적인 변화가 가능하겠지만, 애플은 전통적으로 (격전이 예상되는 시장에서) 고가 부문을 공략해서 높은 이익을 내는 전략을 취해왔기 때문에 경쟁사, 특히 시장 쉐어를 놓고 보면 가장 위협적인 샤오미를 위시한 중국세가 장점인 중저가 보다는 고가격대인 스테인레스 이상의 모델을 중심으로 디자인과 마케팅할 것이라 추측 가능하다. 아무리 고가를 노린다더라도 에디션 급을 기준으로 둘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전략은 자연스럽게 스테인레스 모델이 중심이 될거고, 그게 어느 정도는 앞서 말한 이유로 긴 안목으로 설계를 해야했고 그 결과로서 1세대 애플워치가 나온거고 앞으로도 이를 준거해서 하지 아닐까? 예컨데 맥북은 불 들어오는 사과마크와 검은색 불 들어오는 키보드가 떠오르고 점점 기능을 분산시킨다고는 하지만 아이폰/아이패드의 둥근 홈 버튼이 있어 둥근 사각형 화면과 아래의 둥근 버튼의 픽토그램이나 아이콘 만으로 두 기기를 연상이 가능하다. 더 거슬러 올라가 아이팟의 사각형안에 화면과 둥근 휠 아이콘은 전설이다. 같은 이유로 형태든 네모난 화면과 디지털 크라운과 한개의 하드웨어 버튼은 당분간은 아이덴티티 정립상 유지하지 않을까?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13주기 – 헬조선에 관하여

13년전 오늘 9시 53분. 어떤이가 불을 당깁니다. 예, 그렇습니다. 13년전 오늘은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있었던 날이죠. 사망 192명 부상 151명의 전무후무한 대참사였습니다. 매일 같이 이용하던 지하철에 불이 붙는 순간, 도심 수십 미터 지하에 갇혀 연기와 화염 속에 숨막혀 죽을 수 있다는걸 안 순간 우리는 전율했습니다. 분노하고 공포에 빠진 국민들은 자신이 사는 사회의 어떤 것이 이런 참사를 만들었는지 그야말로 암중모색하듯 뒤졌습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로 서울의 수많은 건물을 이 잡듯 뒤져, 위험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어안이 벙벙했던 것처럼, 언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지하철의 피난유도시설의 부재와 불구덩이로 만든 열차 속 방염처리되지 않은 내자재, 불이 붙는데도 패닉 상태에 빠진 철도원에게 모든 판단을 맡긴 체 역에 추가로 열차를 진입시킨것도 모잘라서 승객들을 가둬두도록 마스터키를 잠그도록 한 체계적이지 않은 매뉴얼 등등. 거론하자면 끝이 없군요. 덕분에 열차에는 방염개조가 이뤄지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천이 아니라 아예 금속제 좌석이 도입되었고, 종이로 된 걸림 광고마저 다 치워버렸습니다.

벌써 2월 중순입니다. 앞으로 2달이면 이번엔 불길이 아니라 수면에 갇혀 목숨을 잃은 국민들의 2주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건 뒤에도 배를 등지고 살아남은 선장의 인면수심함과 해경의 무능력함. 기타 등등. 국민은 분노했고, 유병언과 그 자식을 찾는 여정은 흡사 간첩을 찾는 듯한 전면적인 노력을 거쳤고, 그 과정의 일거수 일투족은 황색언론과 호사가들의 입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이달 초 타이완에서 지진이 있었을 때 일입니다. 사실 저는 일본쪽 뉴스를 많이 읽고 있고, 6 규모의 지진이 작은건 아니지만 어느정도 큰 일이 아니겠거니 생각했었습니다만, 그건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습니다. 수색은 114명의 시체를 꺼내고서야 종료했습니다. 어디서 이런 착각이 있었을까요? 저는 스스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동일본 대지진당시 일본에서 당장 큰 사망자를 낸 것은 강진으로 인한 건축물 혹은 인프라스트럭쳐의 파괴보다는 쓰나미였다는 점을 생각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층건물, 상업건물은 기본이고 일반 가정에서도 내진설계, 보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큰 문제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으나, 결과적으로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태가 겉잡을수 없이 커졌을때 생각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진이 왔다면, 우리나라에 진도 6의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 건물은 과연 얼마나 된단 말인가’ 아니, ‘내가 사는 건물은 안전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었습니다. 스스로 반성하게 됐습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불길과 연기에 휩싸이고, 물속에 묻히고 땅이 꺼져 우리 국민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반복되는 대답은 제각각이지만 한 줄기로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돈에 대한 끊임없는 탐욕, 안전성에 대한 타성에 젖은 오만, 위험성에 대한 막연한 무지, (만드는 쪽과 시행하는 쪽 모두의)규정에 대한 미필적/고의적 경시. 이 모든 과실들이 우리가 어쩌면 이들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라는 것을 뒷받침 합니다. 우리가 이들 사고의 교훈을 알았더라면 뒤에 일어난 사고는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한 점 희망을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분은 살아 오지 못하고, 다치신 분이 입은 (심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상처는 온전히 아물 수 없습니다. 이를 유족이나 생존자 가족 모두 오롯이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인정합시다. 작년,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20주년이라 잠시간 화두에 올랐습니다. 한편으로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은 이제 뉴스에서 단신 정도 거리로 중앙로역에 보존된 구역에 참배하는 가족의 모습이 단신 정도에나 오릅니다. 올해 4월 중순에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글을 쓰는 동안 인기 토크쇼 진행자인 코난 오브라이언이 한국에 왔습니다. 그가 노량진에서 산 산낙지를 보며 ‘헬조선’을 탈출하겠구나! 라고 우스개가 돌다가 ‘수족관에 기증했다’라고 하자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는 헬조선이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합니다. 지극히 자조적인 표현이지만 지옥에까지 빗대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견디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선량한 국민의 위로 하늘이 무너지고, 아무런 죄 없이 불길에 휩싸이고 물에 묻히고 땅속으로 떨어진다면, 여기를 더 떨어지기 어려운 지옥, ‘헬’이라고 부르는데 아깝지 않다면 어디에 걸맞는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앞으로의 일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주거에 대한 걱정을 덜고, 자녀를 안심하고 낳고 기르게 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희생자들을 낳은 사고. 세월에 풍화되어 잊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잊는 순간 문자 그대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불이 휘감고 물에 잠기고 땅이 꺼지는 지옥이 됩니다. 재난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일어날지 모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싫습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당장 많은 것을 변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나 학교에 건의해 AED를 놓고, 인공 심폐 소생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그곳은 지옥이 아니라 다시 살아난 천국, 아니 못되어도 현실이 될 수 있겠지요. 당신이 방재 담당자이거나 결정권자, 혹은 정말 기대하지 않지만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무언가 대단한 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일 항공기 사고중 가장 커다란 사상자를 낸 일본항공 123편 사고는 엔지니어가 리벳접합, 그러니까 무식하게 말하면 철판대고 구멍 뚫고 못박기를 규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작업이 엄청난 결과를 일으킨다는 얘기입니다. 설령 아무런 권한이 없더라도 무언가 압력을 가할 방법을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헬조선’을 문자 그대로 지옥으로 만들지 않도록 우리는 일어난 일을 눈돌리지 말고, 잊지 말고 무엇이 잘못 되었고, 무엇을 기억해야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해야하는가(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를 명심해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럽지만) 그 궤적을 기록해야 합니다. 글을 쓰는 현재(2016년 2월) 합법적으로 담배를 구입 가능한 연령은 1997년생부터입니다. 이들은 삼풍백화점 참사를 그리고 지금 중고등학생이하는 대구지하철화재참사를 겪지 못하고 자라난 아이들입니다. 한창 대학생이 되고 졸업반이 되고 구직을 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우리가 스스로 현재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비아냥거리는건 술자리에서 하는 씁쓸한 농담마냥 웃어 넘어갈 수 있지만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헬조선’을 물려주고 학교 졸업과 함께 내던져버리는건 나와 당신의 모라토리엄의 부채를 연체이자까지 얹어 떠넘기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헬조선이라면 그 헬조선을 살아가는 사람은 우리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가 사는 곳이 헬조선이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윗세대를 원망하듯이 우리를 원망할 것이고, 우리가 윗세대를 보고 비교하고 절망하는 것을 포기하듯이 우리를 보는 것을 환멸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오만가지 부조리가 젊은이들을 인내하게 만드는 헬조선을 만들었습니다. 꿈도 희망도 직장도 결혼도 내집도, 심지어 내가 누울 방마저 빼앗아가는 헬조선이 나와 내 다음 세대의 그나마 평등하게 남은 소중한 목숨마저 빼앗지 않도록 우리는 과거를 학습하고 반성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닭살같은 말을 하긴 싫지만, 희망도 절망도 목숨이 있고 나서 이야기입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스스로 끊는 것과 남에게 빼앗기는건 다른거니까요. 더 이상 어처구니 없는 일로 죄 없는 시민이 ‘학살’당하는 일이 없기를 희망합니다. 제나 저 다음 세대가 살 나라가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지옥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언급한 모든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판교 공연 공연장 추락사고, 그리고 나라가 다르지만 2016년 가오슝 지진,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애도를, 그리고 생존자와 그 가족분들께 위로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