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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디지털 네이티브, 기는 디지털 리터러시

내가 처음으로 ‘핸드폰’이라는 걸 손에 쥔 것이 1993년의 일이다. 당시 휴대폰이라는 물건이 가입비도 기계값도 기백만원하는 물건이었다. 물론 내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아버지 물건이었는데 집바깥에서든 어디서든 통화가 되는 그 신기한 물건을 몰래 들고 바깥에 나가서 통화를 시험해봤다가 혼난 기억이 난다. 비슷한 시기에 나는 전자식 타자기에서 컴퓨터로 갈아탔다. 그리고 책을 보고 착실히 따라해서 모뎀 선과 방에 있던 전화선을 잇고 데이콤 지정점에 전화를 해서 천리안 ID를 만들어 PC통신이라는 것을 시작한다. 그게 우리집 전화 요금이 무한정 치솟는 시발점이 된다.

나는 PC통신, 약해서 ‘통신’으로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했고 자료실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기도 했고 물건을 사기도 했다. 나중에는 인터넷이라는 것을 알게 되서 해외에서 물건을 사기도 했다. 해외 직구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내 첫 직구는 90년대말이였고,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일이다(그 즈음 처음으로 내 휴대전화가 생겼다). 잡지를 보고 이렇게 하면 되나? 싶어서 필요한 물건을 샀던 기억이 난다. 개중에는 PDA가 있었는데 그게 연이 되서 모바일 쪽 사이트로 갔었다(관세를 받으며 배달직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뭔가 해볼일이 없나 싶어서 자격증에도 도전을 했는데 MCP(Microsoft Certified Professional)를 준비했는데 접수를 하는 사람이 주민등록번호를 듣고 나이를 재확인 했었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센터에서는 가장 어린 나이로 취득한걸로 안다. 그렇게 여차저차 쌓인 잔지혜로 지금까지 IT블로거를 해오고 있고, 인터넷으로 쌓은 영어로 대학을 갔으며 어떻게 보면 인생사가 순간의 몇가지 선택지가 퇴적되고 퇴적되서 지금까지 온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비록 ‘디지털 네이티브’는 아닐지라도 ‘온라인’이 내 인생에 있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까지는 접속을 끊을 수도 있었고, 2000년대 후반까지는 컴퓨터의 전원을 끄면 끝이라는 것이다. 통신에 있어서 예절이라는 것이 있었고(물론 예나 지금이나 몰상식한 사람은 있었다), 통신에 있어서 실제 삶과의 확연한 구분이 존재했다. 뭐 당연한게 지금처럼 컴퓨터를 켜면 수도나 전기가 흘러나오듯 네트워크가 흘러나오는 것도 아니고 손에 들려진 휴대폰이나 태블릿이 쉴새없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폐해라면서 언론에서 카카오톡과 게임, SNS에 중독된 아이들을 얘기한다만서도 사실 그 스마트폰이라는게 항상 연결된것도 사실 불과 몇년전의 일이다.

나는 가끔 이렇게 생각한다. 애가 애를 가르친다, 디지털 리터러시, 즉 디지털 교양이 없는 부모가 또 다시 디지털 교양이 없는 아이를 가르친다. 그렇게 악의 연쇄를 일으킨다. 아마,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또 디지털 리터러시가 결여된 아이를 가르칠 것이다. 내가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 PC통신을 배울때는 책으로 기능과 구조, 예절등을 배웠지만, 요즘 애들은 그런 것 없이 자연스럽게 체득한다(심지어 내 세대때는 전화를 걸 때 예절 또한 배워야 했다–용건만 간단히 같은). 부모한테서 배우는 것 조차 거의 없다. 당장 몇년 터울인 내 동생 조차 그렇다. 입문서라는게 없는 요즘 아이들은 그런 것이 없다. 부모세대들 중 디지털에 대해 체계적인 지식이 있는 부모들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디지털 리터러시가 뭐기에? 한마디로 말해서 디지털에 있어 교통법규이며 디지털 하에서 자신을 제어하는 힘(능력)이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다거나, 함부로 글이나  특히 자신과 주변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남을 비방하거나 헐뜯지 않는다. 함부로 온라인의 인물을 만나거나 하지 않는다.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우선해서는 안된다 같은. 디지털 리터러시를 안다는 것은 교통법규를 숙지하는 것이고, 역으로 디지털 리터러시를 모른다는 것은 교통법규를 모르고 그냥 도로로 내달리는것과 다름없다. 교통법규를 의무적으로 배우고 필기시험을 치르고, 모든 국민이 의무교육을 마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쓰는 사람은 디지털 리터러시에 대한 소양이 갖춰져야 한다. 또다른 비유를 하자면 스키나 스노우 보드 같은 것이다. 초보자를 데리고 경험자가 대충 몇 번 태워서 감각으로 익혀서 초보자 슬로프를 몇 번 내려오는식으로 익히고 중급자 코스로 바로 갈 수도 있지만, 전문가에게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익혀서 천천히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대체로 디지털 리터러시는 오프라인의 상식과 도덕관념과 상통한다. 그리고 오프라인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규칙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지는등 실감하기 어렵고 온라인에서의 추태나 실수, 잘못이 고스란히 오프라인에 자신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정작 피해가 닥치기 전까지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역으로 오프라인에서 생긴일로 온라인으로 당하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 이미 꽤 많은 사례가 있는데도 말이다. 가상이니까, 온라인이라는, ID와 닉네임으로 가려져있으니까 가해를 하는 입장에서도 그것이 단순한 장난이라거나 분위기에 편승한 것에 불과하다는 가벼운 감각으로 접근했다가 크게 피해를 입거나 사법처리까지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뭐 그러고도 정신 못차리는 사람도 있지만), 또한 역으로 그렇게 가려져 있으니까 괜찮겠지 하다가 소위 ‘신상털기’에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일이 좀 커지고 나니 학교에서도 어느정도는 가르치는 모양이지만, 이미 머리 끝까지 자리잡은 태도를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우는 아이 달래는데 딸랑이 주듯 주고 피쳐폰이 보조금 없어서 비싸서 초등학생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것도 이해는 가지만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라면 철이 들기 전에는 피쳐폰을 줄 것 같다(그러므로 피쳐폰은 좀 더 저렴하게 더 많이 보급되어야 한다고 본다). SNS가 무엇인지 인터넷의 위험성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에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인터넷을 무한대로 쥐어주고 하물며 지도도 안한다면 그야말로 미성년자에게 필기시험도 안치르고 도로로 내지르게 하는 격이다. 그래놓고 부작용이 생기니 셧다운제니, 아이스마트키퍼니 하는 말도 안되는 구속장치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이걸 두고 애가 애를 가르치다 못해 정부에게 기대는 꼴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다. 처음 쥐어줄때 부터 부모가 디지털 리터러시를 잘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왜 자신에 대한 정보를 함부로 올리면 안되는지, 왜 남을 괴롭히면 안되는지. 왜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우선시 해야하는지 그것에 대해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초기 단계부터 거부감이 들지 않게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 청소년 사회에서 만연한 인터넷 문제, 더 나아가 몇 년뒤면 인터넷 사회문제의 상당수는 저절로 해결 될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컴퓨터를 네트워크에 연결한지 20년이 되어가고, 내년이면 인터넷을 쓴지 20년이 되어간다. 내 인생의 상당부분은 네트워크와 연결된 삶이다. 연결되지 않은 시간보다 연결된 시간이 더 길다. 이쯤 되면 앞에선 아니라고 했지만 디지털 네이티브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솔직히 애매하다. 잘라 말해서 나 자신도 인터넷과 연결되지 않은 삶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휴양을 하면서 트위터를 잠시 끊었지만 메일을 받아보고 있으며 인터넷에는 휴대폰으로, 태블릿으로 접속하고 있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지인이 페이스북에 적기를 회사사람들이 카카오톡을 쓰다보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내 친구의 말을 빌자면, 그냥 끄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카카오톡을 쓰지 않는다. 네트워크가 항상 연결된 오늘날 우리가 잃은 것은 연결을 끊을 자유인 듯하다. 그냥 끊으면 될텐데, 그게 말처럼 쉽게 안된다. 결국 조절의 문제인데, 그걸 어린시절의 나한테 할 수 있겠냐?라고 물으면 솔직히 나 자신도 대답하기 어렵다. 실제로도 나는 지금까지도 컴퓨터와 함께 한 삶을 보내고 있다. 컴퓨터의 리드를 닫고 있으나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쓰고 있고…  어릴 때 부터 써온 네가 왜 자기 자식에게는 그것을 제한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현재의 상황이 너무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자녀와 의논해보고 확실한 자기 분별력이 있을때까지는 유보해 두고 싶은 심정이다. 부모로써 삶의 반성의 결과라고나 할까?

당신은 어떤가? 미혼이라면 어떻게 할 셈인가? 기혼이며 자녀가 없거나 아직 어리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학령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그걸 논할 단계가 지났다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인것 같다. 토론. 토론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가족은 부부간에, 부모와 자녀간에 토론이 부족하다. 한번 진지하게 토론해 보시길.

2015년 2월 23일 정정: 함부로 온라인의 인물을 만나거나 하지 않는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을 우선해서는 안된다 에서 함부로 온라인의 인물을 만나거나 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을 우선해서는 안된다로 수정하였습니다. 트위터 글박(@glassbox_ko)님의 제보였습니다. 제보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