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y IC 레코더 – ICD-SX88

메모를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요컨데 매일 적는 메모는 나의 블로깅의 원천이고, 나의 비망록이며, 나의 생각의 발자취이다.
나는 메모로 읽은 책(만화책을 포함하여)과 영화와 감상을 적고, 떠오른 생각과 체중과 몸무게 그리고 혈압 등의 건강 정보를
적어둔다. 이렇게 되면 굳이 시간을 내서 내 생각을 일기라는 형태로 정리해서 적을 필요가 없다. 여하튼 메모는 중요하다. 이젠
강박에 가까워서 메모를 해두어야 안심이 된다. 대신 안심은 절대적이다. 꼼꼼히 메모해 두면 나는 안심하고 잊을 수 있다.
이쯤되면 기억하기 위해서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잊기 위해서 메모하는 것이라는 ‘메모의 기술’의 저자의 말에 더이상 동감할 수가
없다. 나는 처음에는 일일 수첩의 메모란에 적었다가, 보존성과 휴대성 때문에 이런 저런 메모 장소를 찾다가 결정된 나의 검은색
몰스킨 노트는 꾸준히 적는 나의 메모 겸 일기로 차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 아무리 휴대가 쉽고
간편한 포켓 사이즈의 노트라 할지라도 펼쳐야 되고, 또 사용이 간편한 굵은 촉의 노크식 볼펜이라 할지라도 노크를 눌러서 펜심을
꺼내야 노트가 된다. 펼쳐서 책갈피를 한 장소를 펼쳐 빈 장소에 노트를 적을 때 즈음이면 잊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곰곰히 생각을 해보면 다시 떠오를 때가 많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경우, 특히 그 아이디어가 내 생각에 꽤 괜찮아
보였다면. 그 아쉬움은 마치 다낚은 고기를 놓치거나, 모처럼 베스트 샷이 찍혔는데 사진이 흔들려버린 것 같은 커다란 아쉬움을
준다.

나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홀연히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상대가 있던 혹은 없던 간에 나는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때부터 생활기록부를 뒤져보면 나는 항상 말을 조리 있게 잘한다는 소릴 들었다. 나는 말을 조리있게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생각한다. 글을 쓰는것과 기본적으로는 같지만 글은 문법이나 어법에 맞추어 써야 하고 일정한 수준의
논리 정연함을 갖추어야 하며, 또 글을 잘 쓰는것과, 말을 잘하는 것은 100% 같은 것은 아니다. 물론 글은 손으로 쓰는것이고
말은 입으로 하는데, 말이 나오는 입의 속도는 글을 쓰는 손의 속도를 압도하고, 또 말로는 굳이 단어나 표현을 엄선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수많은 아이디어를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설명하거나 설득하면서 얻는다. 마치 친구를 가르쳐 주면서 공부가 되는
것처럼, 어떤 개념을 이미 알고 있다거나 하더라도 그것을 입을 통해서 해설함으로써 훨씬 더 정확하게 정립되고, 내가 모르는
부분까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스 레코더(혹은 IC 레코더)를 구하게 되었다. 주머니나 손에 휴대하다가 필요할 때 녹음 버튼을 누른뒤에 떠오른
생각이나 본 정보를 녹음 해둔다. 그런 뒤에 나중에 시간이 나면 천천히 메시지를 들어보면서 글이나 메모로 적어 두는 것이다.
이어폰을 꽂아 들으면서 타이프를 하거나 노트에 옮겨 적는 것이다. 원본 내용은 파일에 남아 있으므로, 제목을 붙여두었다가
언제든지 다시 들어 활용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 전달 하는 것도 간단하다.

요컨데 제3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도 매우 편리하다.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녹음 해두었다가 전달 해줄 사람 앞에서 재생해
주거나, 혹은 전송해주는 것이다. 문자로 해봐야 자필인 경우, 그 사람의 필적만을 전해줄 수 있고, 프린트하거나 휴대폰 혹은
이메일의 경우에는 그저 문자 량에 상당하는 내용 이상은 전달 할 수 없다. 전언인 경우에는 길이도 문제가 되지만 그 정확성
조차도 차이가 나며, 보존성은 제로다. 하지만 음성을 통한 전달은 정확성에서 추종이 불가능하며, 표정이나 음성의 톤과 억양 등을
통해서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 그 보존성 또한 뛰어나며 그 정보의 왜곡 또한 억제되어있다. 나는 전화 음성을
녹음할 수 있는 조그마한 골전도 마이크를 같이 하나 구입했는데 이를 이용하면 깨끗하게 전화 상대방의 메시지를 녹음해서 제3자에게
전달할 수 있다. (물론 기록용으로도 일품이다)

음성을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생기는 활용처는 사실 무궁무진하다, 그중에서 내가 사용하는 것을 소개 해주자면, 강의 녹음이다.
수업시 발표자의 뉘앙스와 표현을 그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복습효과가 높다. 노트 테이킹을 시도해보기는 하지만, 일단 나는
메모나 하이라이트를 치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두시간 수업의 자료를 빠짐없이 세심히 노트하거나 아니면 요점만 추려 노트하는
것은 자신이 없다.  하지만 결국 변함 없는건 발표자가 강의한 정보가 가장 중요한 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표한 정보를 다시
그대로 들을 수 있다는건 경쟁력이 된다.

그렇지만 노트도 그렇고 메모도 그렇고 영상수단도 그렇고, 역시 오디오도 그렇고, 모든 기록 수단이 그렇지만 그것을
리뷰(review)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메모는 쓱 읽을 수 있지만 오디오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확실하게 오디오로 강의나 생각을 녹음해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시 듣거나, 들은 뒤에 문서화 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점은
확실히 단점이다.

그런면에 있어서 소니의 IC 레코더 ICD-SX88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전원버튼이 따로 없이 그냥 레코드 버튼을 누르면 바로
녹음이 될 뿐 아니라 녹음만을 위해서 특화되어 있다. 녹음의 질은 마이크에도 크게 좌우되는데 감도가 좋은 세개의 마이크가
달려있어, 두개는 평상시 스테레오 녹음에 사용되고, 하나는 지향성 마이크로서 사용이 되어 향하고 있는 방향의 소리를 중심적으로
채록한다. 시끄러운 장소에서 도움이 많이 된다. 감도가 좋아서 굳이 켜지 않아도 10m 정도 거리라면 굳이 크게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게 알아 들을 수가 있고, 교수들이 수업할때 처럼 크게 말하는 경우에는 꽤 큰 강의실에서도 문제가 전혀 없다. 스테레오
모드로 녹음하면 마이크의 위치를 중심으로 좌우로 움직이는 것과 거리감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다.

크게 도움이 되는 기능은 앞서서 설명한 지향성 마이크 기능이고 그 다음으로 유용한 기능은 DPC(Digital Pitch
Control)와 Digital Voice Up 기능이다. 전자는 내가 음성으로 기록을 남길 때 고민했던 문제였던 시간 문제를
해결해 준다. 재생을 느리게도 해주고 빠르게도 해주는 기능인데 디지털 기술로 재생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함으로써 생기는
음의 높낮이의 변화를 완화 해준다. 따라서 거의 내추럴한 피치로 속도만 느리게 해서 받아적을때 타이프 속도에 맞출수도 있고,
혹은 속도를 1.5배에서 2배 정도로 빠르게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 동안 복습을 할 수 있다. 한번 들은 수업이므로 속도가 좀
빨라져도 이해하는데 커다란 지장이 없다. 후자는 전반적으로 음성을 키워주지만 큰 음성은 약간만, 작은 음성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증폭 시켜주어 멀리 있거나 작은 소리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다. 십수m 떨어진 곳에서 화이트보드에 마커펜이 닿는
소리도 녹음이 될 정도로 섬세한 마이크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필요할 경우가 있을 것이다. 소니 IC 레코더 홈페이지를 가보면
예를 잘들었는데, 요컨데 질문자 가까이에 마이크를 두고 녹음을 하는데 저 멀리 청중이 질문을 하는 경우, 녹음을 해도 잘
안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 이 기능을 사용하면 작게 녹음 된 소리도 잘 들린다(물론 상대적으로 잡음도 늘어나지만).

컴퓨터에 연결해 USB로 충전하는 니켈 수소 배터리는 십수시간을 녹음할 용량이고, 긴급시에는 AAA 배터리 두개를 넣으면 작동가능하다. 메모리는 최고음질로도 수십시간 녹음할 수 있다. 만약 스테레오를 포기하거나 음성이나 강의 회의 등 음질이 조금 희생되어도 괜찮다면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컴퓨터로 전송해서 보관할 수 있으므로 괜찮다. 전용 코덱을 사용하는 탓에 윈도우 컴퓨터에서 전용 소프트웨어 Digital Voice Editor 3 을 이용하여야만 하지만 MP3나 다른 코덱으로 변환은 빠르고 쉽다. 윈도우와 DVE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면 레코더 내의 소리를 전송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외하면 괜찮다. 소프트웨어는 기능이 괜찮은 편이고, 플레이 기능 등은 편리하다. 꽂으면 파일을 저절로 복사해주는 기능도 괜찮고, 보이스 레코더에서 사용가능한 앞서 언급한 DPC나 Digital Voice Up 모두 소프트웨어에서도 구현되어 있어 굳이 본체에 옮기지 않고도 효과를 사용할 수 있다.

아, 아까 북마크 기능과 분할 기능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강의의 토픽이나 주제가 바뀌는 부분에서 분할을 누르면 녹음중에 파일이 변경되어 편리하다. 그리고 또 강의 같이 긴 내용을 듣다보면 한꺼번에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중요한 부분도 있는데 한군데 뿐이지만 북마크를 할 수 있어서 마크 해둔 부분으로 빠르게 이동해서 계속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

소니의 테이프 레코더 중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하는 제품은 찍찍이라는 별명으로 어학기로 사용되었는데 나도 많이 애용했다. 테이프를 속도를 달리해서 들을 수가 있어서 였고 플레이 버튼이 눌린 상태로 뒤로 돌아가 재생할 수 있어 반복에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근데 요즘 보면 많은 어학교재가 테이프 보단 MP3를 제공하는 편이다. 학생도 선호하는 편인데, 이 제품은 어학기기로도 매우 훌륭하다. 찍찍이를 쓰듯이 리뷰 버튼을 누르면 앞으로 가고 포워드 버튼을 누르면 뒤로 간다. Easy Search 모드를 켜두면, 우선 지정해둔 시간 만큼 버튼 한번만 누르면 되돌아간다. 버튼 한번만 누르면 된다. 반복해서 듣기 편리하다. 또 A-B 리피트 버튼이 따로 있어서 반복해서 듣고 싶으면 시작부분에서 버튼을 누르고 끝부분에서 다시한번 누르면 몇번이고 반복된다. 디지털이므로 되감기도 필요 없고 소리도 안들려서 매우 쾌적하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피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가지 않아서 찍찍이 보다 훨씬 좋다. 찍찍이로 150%를 하거나 50% 재생을 하면 틀림없이 형편없이 피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것이다. 이 녀석으로는 세배속으로 해도 문제 없다(3배속으로해서 알아 들을 수 있을때 얘기지만).

VOR 기능은 소니 녹음기에 많이 있어 왔으니 놀랄것이 없고, 방이 조용하면 괜찮은 편이다. 다만 멈추는데 무음 상태가 3초간 필요하고, 녹음이 약 한두박자 미묘하게 늦게 시작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앞에 한두음절이 잘리는 경우가 있다. 로컷 필터는 프로젝터, 풍절음, 에어컨 소리 등을 잘라주지만 저음도 상대적으로 희생이 된다. 그외에 중요한 기능은 마이크의 감도인데 기본은 High인데 조용한 방에선 Low로 하면 감도가 낮아지는 대신에 잡음은 적게 들리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주변음에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쓰고 녹음이 된다. 구술 녹음이나 좁은 방에서 이야기 할때 쓰면 좋을 것 같고, High로 맞추면 반대가 된다. 감도는 높아져서 조용한 곳이나 넓은 곳에서 사용할 때 좋다. 잡음도 상대적으로 올라가지만 멀리에 있는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까 말한 지향성 마이크를 켜고 대충 향하면 모노로 녹음되지만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의 소리만 녹음이 된다. 뭐 전용 지향성 마이크는 아니라 건마이크 처럼 효율이 좋진 않다. 그냥 주위가 시끄러울 경우 가리키는 방향의 소리 근처 바깥은 약간 작게 들린다 정도…. 기대는 많이 했지만, 실망도 많이 됐던 기능으로 DPC와 디지털 볼륨업이 만족시켜준 반면 이건 좀 실망시켜준 기능. 하지만 의외로 마이크 성능이 멀리서 녹음해도 괜찮아서 무리는 없다.

음악은 녹음해보지 않았으니 평가하긴 어렵지만 주파수대역이 80-20,000Hz라(뭐 동급 기종 중에서는 크게 나쁘진 않지만, 저음이 살짝모자르다)  스펙상으로는 조금 고려가 필요하다.

여하튼 몇일간 수업을 듣고 여러 메모를 하고 블로그에 쓸 글감 몇개를 이 기계로 건졌으니 매우 만족한다. 27만원 가까운 값이라, 값비싼 장난감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