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에서 단종과 단명을 다하는 장치가 어디 하나 둘이겠나, 플로피 디스크 같이 거의 고사해버린 것이나, DVD에 밀려서 점점 뒤안길로 가고 있는 CD 나. 그리고 하나 더 이야기를 하자면 HDTV 셋톱박스를 들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디지털 텔레비전을 산건 2002년이다. 당시에 우리는 무척이나 이른 선택을 했었다. 아직 디지털 텔레비전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나는 월드컵을 HD로 본다는 꿈에 젖어 HD 셋탑박스를 구입하기 전까지 구매를 보류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3년에는 지상파 디지털 방송의 전송방식을 놓고 갑론을박이 시작되었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MBC가 주로 주장했던 것으로 유럽식의 전송방식과, 우리가 선택했던 미국식 전송방식간의 차이를 두고 말이 많았고, 정부는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던것이 사실이다. 어찌됐던 그 표준화 논란은 정부가 2004년 미국식 ATSC로 최종적으로 정하자 어찌됐던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까지. 그러니까, 표준화 논란이 종지부를 찍기 전까지는, HDTV 가격은 매우 높았고, 또한 셋탑박스 가격 또한 상대적으로 고가(최소 30만원 이상)였다. 그래서 대다수의 텔레비전이 HDTV 분리형으로 나왔다. 또한 표준방식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어쩌면 합당한 지도 몰랐다. 만약에 미국식 표준이 유럽식 표준으로 바뀌었다면, 모든 내장형 디지털 텔레비전은 ‘껍데기’만 HDTV가 될 터였다.
HDTV 분리형이란 결국은 HD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는 모니터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다. HDTV를 전파를 수신하는 튜너는 내장되어 있지 않으므로 별도로 셋톱박스를 구입하여 연결하여야 HDTV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2002년 월드컵을 HDTV로 본다라는 꿈(결국은 우리나라에서는 HD방송을 안해서 결국은 거품처럼 꺼져버렸지만)때문에 그때 HDTV 셋톱박스를 구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작년 연말부터 고장이 나기 시작해서 화면이 깨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올해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사람이 완전히 간사한 동물이라서 한번 HD 화질에 길들여지자, SD 화질에 전혀 적응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셋탑박스를 알아보기 위해서 돌아다니기 시작했지만 이미 시중에는 HDTV 셋탑박스를 내장한 모델들 뿐인지라, HDTV 셋탑박스는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어찌됐던 우여곡절끝에 셋탑박스를 구하는데 성공했고. 다시금 보던 디지털 방송을 볼 수 있게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염려가 되는 것이 있었다. 이제 2010년인가 2012년인가이면, 아날로그 지상파 방송은 중단이 되는것이다. 그런데 벌써 셋탑박스를 중단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간 아나로그 방송을 보던 텔레비전 수상기들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 어차피 못보게 되니 새로 하나 장만하라는 말일까? 사뭇 궁금해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