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2019/06/06

나는 대한민국의 하등 국민입니까? ⎯ 스마트폰 본인 인증 유감

일본에 정착하고 사시는 아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혀를 두르십니다. “휴대폰 인증이라는걸 하도 요구해서 휴대폰을 개통하려고 했더니 그것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인터넷 사이트든 금융 사이트든 요즘은 공인인증서 대신에 휴대폰 인증을 요구하는데 (당연히) 한국 본인 명의 휴대폰만 통한다는 것이죠. 당신은 이렇게 스마트폰 인증이 보편화 되기 전에 일본으로 건너왔고 당연히 한국 휴대폰이 있을리가 없죠. 그래서 만들려고 하니 제일 먼저 걸리는 것이 은행 계좌가 없어서 개통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은행 계좌라는게 요즘 좀 만들기가 쉽지 않지요. 재외국민이다보니 주민등록지라는게 없다보니 더 난감한 경우가 발생하는 모양입니다.

제 동생의 경우에는 싱가포르로 취업을 하러 갔었었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아예 휴대폰 회선을 살려두고 갔습니다. 표준 요금제로 해놓고 로밍 데이터만 막아 놓고 간 거죠. 매달 1~2만원씩 이동통신사에 내고 있습니다. 각종 사이트와 기관에 “내가 대한민국 국민 아무개”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죠.

제가 작년에 경제적인 상당한 핀치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휴대폰이 끊겼었는데, 이 상황에서 금융 관련 업무는 사실상 올 스톱이 됩니다. 금융업계는 저들이 제일 선봉장이 되서 공인인증서라는 해악거리를 들여온 주제에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휴대폰 본인인증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으로 하는 각종 업무가 그렇고 2채널 보안 인증이 그렇고 원칙적으로 다 본인 명의 휴대폰이 없으면 되질 않습니다.

휴대폰 본인 인증란을 보면 심지어 외국인도 체크할 수 있는 란이 있습니다. 아는분의 사례나 동생의 사례, 그리고 제 경험을 조합해보면 휴대폰을 갖지 못하거나 휴대폰 요금을 꼬박꼬박 내지 못하는 사람은 대한민국 인터넷에서 지위가 외국인 이하라는 기이한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그야말로 ‘하등 국민’인 셈이죠.

공인인증서의 경우 그 범용성으로 인해 필요한 경우 해외 주재 대사관에서도 발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사실상 꿰어차기 시작한 휴대폰 인증도 뭔가 대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휴대폰 인증을 한건 할때마다 사이트는 돈을 냅니다. 문자 하나 보내는데 공짜가 없는데 문자를 보내서 확인을 하고 이동통신사의 시스템을 경유하는게 공짜라는걸 믿느니 차라리 대동강 강물을 마시겠습니다. 본인 확인/인증은 이동통신사, 은행, 카드사, 공인인증기관, 핀테크 업체(카카오페이 등) 등이 참여해서 군웅할거 하고 있습니다. 근데 우스운건 이 모든 인증 수단이 기본적으로 ‘본인 휴대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예를들어 공인인증서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발급을 받으려면 은행에 등록된 본인 휴대폰으로 인증이 필요합니다. 그런 식이죠.

국민이 국민임을 온라인에서 주장하기 위해서 100% 민영 영리 기업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그것도 공짜가 아닌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생각이 필요합니다.

노인을 위한 핀테크 혁신은 없다

제목을 이렇게 적었지만 사실 핀테크 흐름에 커다란 반감은 없습니다. 토스가 대형 사고를 치긴 했어도 저는 공인인증서로 사용하고 있었고(이걸 트위터에 올리면서 공인인증서를 옹호하게 될 줄은 전혀몰랐다고 자조했었죠) 토스 자체는 편리한 서비스니까요. 스타트업에 관해 지난번에 쓴 글도 반향이 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또한 스타트업을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타트업의 신기한 서비스는 조금이라도 더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타입이지요.

월요일에 국민은행 창구를 갔습니다. 운이 없었다고 할지 당연한 결과라고 할지, 월초의 주말 끝나고 첫 월요일에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요행이 얼마나 부질 없는지 뼈아프게 통감했다고할지요. 그런데 한가지 비책이 있었습니다. 국민은행 어플이나 리브 어플에서 먼저 번호표를 뽑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기능을 이용해 은행에 도착하기도 전에 번호표를 끊어서 평균 대기시간 한시간 걸리는걸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은행 가기 위해 소요한 시간 만큼 말이죠.

그런데 생각해보죠, 창구에서 은행일을 보는 사람들은 일부 거액의 현금 입출금을 하거나 뭔가 트러블이 생긴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어르신이거나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일종의 금융 접근권 약자라고 볼 수 도 있는 사람들이 창구를 사용하는데 ‘핀테크’랍시고 은행에서 내놓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젊거나 빠릿한 사람들은 창구를 이용하는 순서와 속도마저 앞따라잡게 되네요. 이게 공평한걸까요? 게다가 제가 사정상 여러 은행의 입출금 계좌를 연달아 만들어야 했는데 비대면이 아니라 대면 창구에서 발급할때, 그렇게 고통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져온 계좌 개설 목적 증빙 서류에 개설에 필요한 서류, 인터넷 뱅킹 신청서, 각종 서약서와 체크카드 신청서 등등 종이만 스무장을 만진 느낌이었습니다. 창구에 앉아서 한시간이 족히 걸렸는데 스마트폰 비대면은 이렇게 걸리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번호표 뽑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말이죠.

저는 십여년전 쯤에 누구나 늙으니 쓰기 편한 인터넷 뱅킹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중년이었던 사람은 장년이 되고 그때 장년이었던 사람은 이제 노년층이 되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은행들이 ATM마저 철수시키는 마당인지라 예전보다 큰글씨 뱅킹이니 쉬운 뱅킹이니 이런 저런 편의를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는 여전히 공인인증서와 씨름하느니 차라리 텔레뱅킹을 쓰겠다고 하십니다. 그 유일한 예외가 카카오뱅크입니다. 어머니는 카카오뱅크로 거래 내역을 살펴보고 이체를 하는것을 무리 없이 하실 수 있습니다.

기업은행이 이번에 i-One 뱅크 앱을 개편하면서 공인인증서를 폐지했습니다. 저는 아주 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족하고 있어요. 복잡한 인증절차가 없으면 없을수록 어르신들이 사용하기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앱들의 변화의 중심에 (연령)보편적인 접근을 위해서가 일차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핀테크 혁신이 활발해져서 젊은 사람들이 편해지는 한편, ATM이 사라지고 지점이 사라지고, 지점에 상근하는 직원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앞서 말씀드린 국민은행 말씀입니다만 입출금 창구의 대기 인원이 30명을 넘어서 대기 평균 시간이 1시간을 넘기는데 처리하는 직원은 겨우 두명이었습니다. 창구가 총 4개였는데 2개 창구는 부재중이었습니다. 이 은행 지점보다 훨씬 적은 방문객을 처리하는 적은 규모의 하나은행의 점포의 인원이 더 많았습니다.

모든 은행이 카카오뱅크처럼 될 수 없다는걸 압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립니다. 당신들도 늙습니다. 좀 더 쉬운 인터넷 뱅킹을, 결제 서비스를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나 대개의 핀테크 스타트업은 그보다는 대출이나 보험 등 소위 돈 되는 부분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더군요.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