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형 디바이스에 대하여 생각

애플이 시계를 내놓을지 모른다 카더라가 한창 돌때 썼던 흑역사적인 글이 있다. 여기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나는 손에 조본(Jawbone) UP을 차고 있는데 꽤나 유연하고 부드러운 재질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녀석을 며칠 차다가 그냥 집어 던졌다가 다시 잠깐 찼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 작고 부드럽고 편안한 녀석이 이럴진데 만약 스티브 잡스가 크고 둔탁한 갤럭시 기어를 봤다면 어땠을까.  …애시당초 왜 웨어러블로 한정되어야 하며 그게 손목으로 집중되는것인지 모르겠다.

글쎄, 공교롭게도 이 글은 이렇게 맺고 있다.

뭐 어디까지나 예상의 범주일 뿐이다. 수많은 스티브 잡스 운운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리고 그들 태반이 그러하듯 나 또한 시간이 지나면 실언 했네. 라고 돌이켜볼지 또 아나. 그게 애플을 즐기는 도락이다.

사실 손목에 애플워치를 차고 있으면서 이 글을 쓰는 입장이 참 애매한데(사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손목이 굵어서 조본 업이 그렇게 편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한가지 맞은 것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나마 시계를 차는것에 저항이 없는 편이고(초등학생 때부터 카시오 데이터뱅크 시계-키패드가 달려서 계산기나 주소록을 사용할 수 있는-를 썼었다), 뭐 남들이 공인하는 애플빠지만 역시 시계를 잡고 뭔가 복잡한 일을 하는 것은 여전히 영 끌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애플워치(든 혹은 여타 다른 스마트워치든)를 이용해서 뭔가 앱을 실행해서 어떤 일을 하거나 읽는 것은 매우 비합리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일단 손목을 들고 시계가 움직이지 않게 하는 가운데 조작해서 조그마한 화면을 통해 읽어야 한다. 애플워치는 옆에 디지털 크라운이라고 하고 휠을 달아서 내용을 읽는데 손가락을 플릭할 필요가 없게 만들었다, 라는 점을 키노트 때도 자랑을 했었는데, 크라운이 있던 없던 이걸로 뉴스 기사 등 긴 내용을 읽는것은 문자 그대로 고문이다. 팔이 아프다! 몇번 이상 버튼을 눌러 뭔가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필연적으로 하던 일을 멈추고 팔 아프게 손을 들고 화면을 탭하는건 뭔가 잘못됐다. 차라리 전화기를 꺼내는게 기능이나 속도, 편의성 어딜 봐도 낫다.

애플워치를 사고 처음으로 올린 포스트에서 나는 이 점을 지적했다.

…사실 기계나 속도보다는 ‘시계에 걸맞는 앱이 어떤 것인가’ 에 대한 궁리가 아직 개발자들에게도 완전히 끝난게 아닌 듯 하다. 그게 더 문제다.  …즉시 원하는 것을 확인하는것 그게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까 시계에 걸맞는 앱에 대한 궁리가 다 끝나지 않았다고 했는데  잘 만들어진 앱은 이점이 빠르고 편하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 앱은 많이 쓴다.

잘 만들어진 앱은 알림이 왔을때 필요한 정보를 보여주며, 이동중에 꼭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도와준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보고 하트를 박을 수 있고 트위터 앱도 하트를 박거나 리트윗을 하거나 아니면 (내키진 않지만) 답글을 달 수도 있다. 뉴스앱은 헤드라인만을 보여주고 전화기를 꺼내서 락을 풀면 기사를 열어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나중에 앱을 열어 보도록 저장을 할 수도 있다. 모든 작업이 수 초안에 끝나고 ‘정보 알림의 트리아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슨 알림이 왔다. 그럼 톡하고 시계가 건드려준다. 본다. 중요한 일이다. 그러면 휴대폰을 꺼낸다. 그정도의 일은 아니지만 궁금하다. 그러면 시계로 톡톡 건드려서 일을 처리한다. 그 정도 일도 아니다. 그럼 나중에 휴대폰 열어서 처리하면 된다. 여튼 이 모든 과정은 슬쩍하고 보고 하던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다행이라면 적지 않은 앱들이 시계로는 슬쩍 보여주고, 전화기를 켜면 Handoff로 이어서 볼 수 있도록 넘겨준다는 점이다. watchOS 2도 그렇고 이 점은 얼리어답터가 아니라서 다행이지 싶다.

글쎄, 잠시 얘기가 샜는데,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다른 스마트워치 사용자들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런점은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PC Magazine 컬럼, 영문).

해서,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나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내가 손목위에 대한 장치에 대해 오판을 했던것처럼 많은 개발자들이 손목시계에 대해 이해를 못하고 있다. 첫 애플워치 사용기에서도 말했지만, 시계를 잘 이해한 앱을 계속 쓰게 되고, 그게 스마트 워치의 존재가치를 말해준다. 그 이외의 것들은 죄다 부수적인 문제이다.  이건 결국 시계다. 작동하는 시계를 하릴없이 주욱 보는 사람은 정말 시간은 많고 할일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근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비교적 시간 많고 할일 없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애플 워치(Apple Watch)를 구입하는 와중에 겪은 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망설여 본 적 있나? 스타벅스에서 수많은 메뉴를 보면서 뭘 주문 하나? 하고 고민해본 기억은? 아마 없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애플 워치를 사는 것은 이것과 매우 닮아 있다. 일단 베이스 모델을 골라야 한다. 일단 말도 안되게 비싼 에디션 모델은 논외로 치더라도 결국 스포츠 모델이냐 스테인레스 모델인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밴드로 시작할지 고민을 해야 한다. 이것은 흡사 포켓몬스터의 첫 포켓몬을 고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이전에 첫 인상을 다룬 포스트에서 이 시계를 얼마나 오래 쓰게 될지 궁금하다고 적은바가 있다. 물론 이 녀석을 10년 동안 쓸 수도 없을 것이고 쓰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것은 명확한 한계일 것이다. 만약 럭셔리 오토매틱 시계나 G-SHOCK 같은 시계가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 이 부분이 아닐까?

잠시 전에 링크한 이전 포스트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가죽 밴드 모델을 선택했다.

Courtesy by Apple
정말 무난한 디자인의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가죽 밴드는 방수가 되지 않습니다’ 라는 점이었다. 지난번 포스트에서도 ‘애플의 가죽 액세서리는 가성비가 의심 받는 경우는 있어도 품질이 의심 받는 적은 없다’ 까지 적었는데, 예전의 액세서리에 땀과 아주 상극적인 반응을 일으킨 까닭이다. 나도 이 모델을 고르는데 참여한 엄마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 애플의 가죽 제품이라 하더라도 다를리 없으니 일반적인 경험칙에서 ‘땀이 많이 차거나 하면 문제가 생기거나 닳지 않나?’라는 의문을 제기했으나, 결국 이런 상황으로 대화가 마무리 됐고, 새들 브라운 클래식 버클이 낙점 되었다.

나: 밴드는 간단하게 새 거나 다른 걸로 교체가 가능하니까요… 뭐.
엄마: 하긴 뭐 그렇게 오래 쓸 것도 아니고.

엄마는 그렇다 내가 한창 애플 제품에 돈을 쓰던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필경 이 녀석도 잘 해봐야 평균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최소한 바로 다음 모델을 사진 않겠지만 그래 봐야 그 다음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결국 애플 워치라는게 이런 감각으로 교체하는 ‘전자 기기’라는 사실을 간단한 대화로 알게 됐다.

과연 그러한 전자기기에 스마트폰이나 하다못해 태블릿 만큼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같은 의문이 들었다. 스테인리스 모델 하나면 하이엔드 스마트폰 한 대값이라고?

추기: 애플에 문의 해본 결과, 물이 닿을 것 같을땐 벗으란다. 물로 인해 자국이 생길 수도 있고 보증에도 문제가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