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 감상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최신 애니메이션 영화, 언어의 정원(言の葉の庭)을 감상했다. 시대는 디지털이라고 iTunes로 디지털로 극장과 동시공개를 하는 독특한 흥행 방식에 힘입어 개봉일 새벽에 다운로드해서 네 번인가를 돌려서 볼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46분이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러닝 타임 덕택도 좀 봤다만. 줄거리부터 새로 짧게 적어보자면 순수 스포일러 그 자체니 원치 않으면 다음을 읽지 않는게 좋다.

비오는 날에는 지하철을 타기 싫어하는 남자 주인공 고등학교 1학년생 타카오는 6월 초, 서 일본이 장마에 들 무렵 신주쿠에서 JR에서 지하철로 갈아타지 않고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 들린다. 그러다가 일본식 정원에서 한 여성과 마주치는데 글쎄 깡맥주를 마시면서 안주로는 초콜릿을 먹는 것 아닌가, 어디선가 본적이 있던가? 싶어 물어보지만 없다고 대답하며 단가를 한 구절을 읊으며 사라지는데 적어서 물어봐도 모르는 구절이다. 다음에 비가와서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있다. 맥주만 먹으면 속 상하지 않느냐, 왜 학교는 빠지느냐 같은 얘기를 하다가 보니, 그럼 비가 오는 날에는 다시 만날 수 있겠구나? 라고 일종의 암약이 생기고 말았다. 장마 전선은 동일본까지 뻗쳐 그 둘은 점점 자주 만나게 되었고 이윽고 그는 속내를 최초로 터놓는다. 구두 장인이 되고 싶다고. 그는 계속되는 지각으로 학교에서 주의를 받아가면서도 밀회를 계속한다. 이야기를 나누기도 차를 마시기도 도시락을 나눠먹기도 하면서, 사회도 직업도 모르는 그에게 있어 그녀는 비밀 그 자체로 보이지만, 단지 구두를 만드는 것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일로 보인다고 생각한 그는 재료와 구두 전문학교를 위한 학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구두 만들기에 열중한다. 한편 그녀는 아침에 단정하게 차려입고도 전차에 올라타는 것을 망설이고는 공원으로 향한다. 무엇이 있는 것일까? 어느날 밤 그녀는 전화에서 타카오의 도시락을 화두로 올린다. 이제껏 맥주와 초콜릿 밖에 맛을 느낄 수 없었는데 ‘그 사람’의 도시락만은 맛이 느껴지더라고. 상대인 남자는 이제 미각장애가 나아진것이냐면서 일을 관둔게 잘 된것 아닐까라며 퇴직은 휴직이 끝나고하자고 말한다. 그녀는 다카오의 정체를 다른 사람으로 숨겼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달이 바뀌어 7월 도시락의 보답을 하고 싶다며 타카오가 갖고 싶어하던 구두 제작에 관한 책을 선물한다. 타카오는 조심스럽게 여성화를 한 족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흔쾌히 구두를 던져 발을 내어주고 그는 조심스럽게 발의 본을 뜬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이젠 잘 걸을 수 없다 라고 말한다. 일때문이냐는 질문에 ‘응, 여러가지로’라고 답한다. 타카오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것도, 고민은 커녕 나이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마가 예상보다 빨리 걷히고 ‘마치 스위치가 켰다 꺼진것’ 처럼 날씨가 바뀌자 그녀는 타카오가 학교를 빼먹지 않아도 되었다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역시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면이라고 바란다. 장마가 끝나고 덥고 맑은 신주쿠교엔의 일본식정원은 자신이 늘 있었던 곳과는 같은 장소이면서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어 있었다. 한편 방학이 되고 8월이 되었을 즈음 타카오는 아르바이트에 매일을 바치고 있었다. 그 와중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점점 자신은 어디에 향해야 하는걸까, 나이는 먹었어도 집에 틀어박혀 절망하다가도 날씨가 흐리기를 기도하곤 하지만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낙심한다. 시간은 흘러 9월이 되고 신학기. 타카오가 등교를 했는데 그 앞에 나타난 그녀는 유키노라는 그 학교의 고전 문학 선생이었다. 전말인 즉, 유키노 선생은 한 3학년 여자 학생의 남자친구가 고백을 했다는 것에 그 여자아이에게 원한을 사서 한 반 전체가 악성 소문을 퍼뜨리고 급기야는 학부형에게까지 들어가서 정신적으로 몰리게 되어 학교를 쉬게 된 것이었고, 경찰에 신고해서 처리하라는 일부 학생의 간청도 있었지만 마음이 여린데다 학교에서 사건화 되지 않기를 바랬었고, 결국 이렇게 그녀가 직접 나타나 퇴직하게 되는 것으로 일이 정리된 것이다. 타카오는 사건의 당사자를 찾아가 따지다 그 주위의 인물들에게 된통 당하게되고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신주쿠교엔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처음 헤어졌을때 단가와 답가를 읊고 그 해석을 읊조린다. ‘비가 온다면 여기에 머물러 주겠소?’ ‘비가 오지 않아도 여기에 있겠소’ 그 구절은 달리 아닌 교과서에 있었던 만요집이란 단가 구절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교복을 보고 자신이 고전 문학 선생임을 알리기 위해서 그 구절을 읊었지만 그는 그의 세계, 구두에만 몰두해 있었다. 둘이 그렇게 다시 만났을때 갑자기 벼락이 치고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쫄딱젖어 정자에 피신했지만 완전히 젖었기에 근처의 그녀의 집에 가게 되고 옷이 마르는 동안 타카오가 요리를 하고 음식을 먹으며 그녀가 커피를 내리는 동안 담소를 나눈다. 둘은 똑같이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순간 중에서 제일로 행복한 순간이다라고. 그렇게 생각한 때 타카오는 그녀에게 좋아한다 고백을 하지만 얼굴을 붉힌 그녀는 넌지시 자신은 ‘선생님’이잖니라며 거절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구두없이’ 혼자 걸어가는 연습을 해왔다며, 다음 주에 시코쿠의 본가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좌절한 그는 다 마르지도 않은 옷을 갈아입고 집을 뛰쳐나간다. 그녀는 한동안 앉아 눈물 흘리며 있다가 그와 함께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마침내 신조차 신지 않고 복도로 박차고 나가 옥외 비상계단으로 뛰쳐 따라 내려간다. 비상계단 중간, 층계참에서 마주친 그녀에게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라고 철회한 다음 이뤄지지 않을 꿈이니까, 자신은 할 수 없는 인간이니까,  그냥 안되는 아이인줄 알면서도 아이 장단 맞춰준 것 아니냐면서 따져묻는다. ‘선생님’이면 그냥 학교나 가라고 하지 그랬냐면서. 마치 아까 그녀의 말을 파고 들듯이… 중간에 계속 고개를 젓기만 하던 그녀는 그의 말을 막기라도 하듯 계단의 위에서 힘껏 뛰어내리며 와락 껴안으며 말한다. 네가 매일 차려 입고도 학교에 갈 수 없어 공원에 있던 자신을 구해 주었다고. 장면은 줌 아웃해서 둘이 서있는 건물과 신주쿠교엔을 보이며 암전하고, 엔딩곡과 함께 타카오는 학업과 함께 구두 만들기를 계속하고 그녀는 이사를 하며, 그곳에서 다시 교편을 잡는다. 둘은 서신을 통해서 연락이 닿는듯 한다. 눈이 내리는 정원에서 그녀로부터의 편지를 접으며 완성된 그녀의 신발을 꺼내며 언젠가 재회를 기약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새로 적고보니 별로 짧지 않구나. 아무래도 말을 줄이는 재주는 없는 모양이다. 이 이야기는 약 46분의 단편에 가까운 작품인데, 템포도 좋고, 메시지도 잘 짜여있다고 생각한다. 길이가 짧은 만큼 주변인물은 거의 곁가지로 쳐져 있고, 두 사람의 2인극이라고 보면 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성우(이리노 미유, 하나자와 카나)들이 하는 만큼 나름 잘 이끌어나간다고 생각한다(하나자와 카나가 27세 여성 역할을 하니 좀 목소리가 젊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절규 부분은 놀라우리만큼 감정이 이입되는 연기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사랑이 테마이지만 내가 캐치하고 싶은 메시지는 달리 있다. 첫번째로 소년인 타카오의 성장을 향한 욕구이다. 신비에 쌓인 이제 막 호감을 갖게 된 그녀에게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해, 단지 사회니, 직업이니 그런것은 전혀 모르는 미숙한 아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만 15세의 고등학생에게 무엇이 있을까?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은 묵묵히 구두를 만드는 것 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구두장인의 꿈을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밝히며 쑥쓰럽게 구두의 본을 떠도 되겠냐고 묻고 그녀를 위한 신을 위해 조심스럽게 본을 뜨며 극 내내 그녀를 위한 신을 만들어 가면서 구두 학교를 위한 학비를 보태고 재료와 도구를 사기 위해 학업과 동시에 묵묵히 일하는 모습은 순애이기도 하지만 그의 성장을 위한 달리기이기도 하다. 그녀를 향해 애가 달는 그의 모습과 함께 그가 깨닫게 된 걷는 연습의 길을 응원 하고 싶다. 두번째로, 그녀, 유키노의 치유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깊은 트라우마를 입었다. 그녀는 메이크업에 세련된 옷을 차려입고서도 전차 승강장에 들어선 다음에도 전차를 타지 못하고 공원에 들어서서 유일하게 맛을 느낄 수 있는 맥주를 마시며 초콜릿을 안주삼아 지냈었다. 그녀는 좌절한다. 27세가 되었지만 15세의 자신보다 조금도 현명해지지 않았다고, 지금도 있을 곳을 모르겠다고, 사실 생각해보면 한창 활기차게 활동해야할 27세의 나이가 되서 자신의 제자한테 음험한 짓을 당한다는 쇼크를 받는 것도 큰 일이지만 사실, 하루 아침에 자신이 있던 직장이나 학교, 인간관계에서 자의반 타의반 붕 떠버려서 정처없이 헤매는 것 또한 참으로 고독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주위가 돌아서서 숨을 죄여오고 가까운 연인조차 배신하고 자기가 발을 내딛고 걸을 기반이 없다는 것.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 소년이었고, 그 후유증으로 생긴 미각장애에, 한정되지만 ‘미각’을 되돌려 준 것이 그의 요리였다. 그와의 시간을 통해 그녀는 상처입은 마음을 달랬었고, 잠시나마 ‘머물 장소’를 찾았다. 미약하나마 인간관계의 ‘끈’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녀의 말대로 그에게 구원받은 것이다. 주저앉아 버린 그녀는 그곳에서 일어나 그를 의지해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둘의 서로를 향한 애뜻한 연모하는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랑 이야기는 전술한 대로 그 과정 자체가 가치가 있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보듬고, 누군가가 누군가를 채워주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격려해주는 그런 이야기라 나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십대의 남자 주인공의 조바심 어린 마음을 기억하고 20대 중후반의 여 주인공의 좌절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단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극 마지막에 소년의 지나가듯 하는 수줍은 고백과 서로를 따듯하게 감싸안는 포옹 밖에는 직접적으로 나오거나 하지 않아도 그 둘에게는 분명히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恋(こい)」는 「孤悲(こひ)」라고 썼습니다. 고독하고 슬프다는 의미입니다. 8세기의 만엽인들───우리들의 먼 선조───이 사랑이라고 하는 현상에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연애(恋愛)」는 근대가 되어 서양에서 유입된 개념이라고 하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옛날의 일본에는 ‘연애(恋愛)’가 아니라 ‘사랑(恋)’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본작「언어의 정원」의 무대는 현대지만, 그려내는 것은 그러한 사랑(恋)───사랑(愛)에 이르기 이전의, 고독하게 누군가를 희구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와의 사랑(愛)도 유대도 약속도 없이, 먼 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개인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현 시점에선 그 이상은 전달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랑(孤悲)」을 끌어안고 있거나 끌어안았던 사람을 북돋워줄 수 있는 게 가능한 작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출처

비가 내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잔잔하게 이뤄지는 감성적인 이야기가 컴팩트하고 농밀하고 전술한대로 템포가 좋게 시계열로 빠르게 진행되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감독이 연출한 빗물이 연출하는 다채롭고 신비로운 효과가 도심과 자연속에서 연출하는 모습도 신선했고 여전한 배경과 소도구(프롭)묘사도 감탄할 만했다. 이번에 대담하게 시도한 인공적인 배경 뿐 아니라 자연적인 배경에 대한 시도 또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연애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사랑은 완성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조그마한 정원에서 한 여름 순애보는 지나갔다. 마침 일본은 장마가 한창이다. 신주쿠교엔 어딘가에서 둘의 이야기가 실제로 펼쳐질 것 같은 그런 상상을 해본다.

아, 아쉽지만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는 픽션이며 신주쿠교엔을 모델로 하고 있으나 실제 신주쿠교엔에서 음주는 금지되어 있다. 참으로 아쉬운 노릇이다. 이걸 영화 끝나고 굳이 자막으로 넣다니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잔인하구나, 현실은.

ps. 역시 언젠가 구두를 전해주고 재회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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