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밍으로 인디 음악을 즐기다

아이폰에 20기가가 넘는 곡을 넣고 듣기에 처음에 32기가 모델을 사다가 4S이후로는 64기가를 사는 나로서도 듣는 음악만 듣기에는 역시 지겹기에 벅스뮤직 앱으로 새로운 음악을 듣기로 했다. 나는 국내 서비스를 통해 MP3를 다운로드 하지는 않는다(그렇다고 해적질을 하는건 아니다) 일단 그게 합당한 가치를 지불하는건지 의문이 들기도 하거니와. 들을 일이 있다면 스트리밍을 하는 편이다.

미국에서도 판도라 라디오, 일본에서는 레코쵸크가 주로 하고 있는 서비스인데 CD나 다운로드가 자릴 하던 일본에서도 점점 주류가 되고 있다.

음… 내가 얘기하려던건 스트리밍이 주류가 되고 있다. 라는게 아니고. 역시 이런식으로 하다보니 음악의 지평? 이런게 넓어지는 느낌이다. 들었던 음악은 인디 음악들이었는데 새로운 인디 음악을 들어보면서 ‘아, 이런 음악이 있구나.’ 금새 꿈속에서처럼 빠져들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사용료 부분이겠지. 아무리 내가 스트리밍으로 그냥 스치듯 듣더라도 가수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얼마일까. 인상이 된다지만 실제로 돌아가는 퍼센티지는 얼만가… 안타까운 노릇.

2014년 7월 추가: 나는 되도록이면 인디음악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 불공평한 수입분배가 놀라운 수준임을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튠스에서 많은 곡을 구입하는데, 적어도 이정도의 분배는 되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가끔 느끼는 장문의 트윗을 보면서

장문의 트윗을 나눠서 올리는 것에 관하여 

가끔 보는 장문의 트윗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좋은 글들이 참 많다. 개중에는 한 두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대 여섯개 이상으로 나뉘어 있는 것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트위터는 장문을 전달하기에 알맞은 매체가 아니다. 뭐 당연한 말이지만 140자로 한정되어 있는건 둘째치더라도 리트윗을 하면서 잘릴 염려가 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썼고 당신이 맘에든다고 치자, 이것을 140자로 잘라서 트윗에 올렸다고 칠때, 당신이 140자로 나뉜 토막을 1번 2번 3번 전부 리트윗 할 것이란 보장이 없고, 또 1번 2번 3번을 순서대로 리트윗 할 것이란 보장이 없다. 그것은 당신이 리트윗한 것을 리트윗 한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진의의 왜곡 가능성 

게다가 수동으로 리트윗해서 편집되어 왜곡될 가능성 마저 존재한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정말로 긴 말을 하고 싶고 진의를 전달하고 싶다면 블로그나 텀블러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아니 하다못해 긴글 서비스를 이용해서 전달하는 것을 고려해야한다.

기록이 남지 않는 것 또한 문제

그 뿐 아니라 정보의 기록이 남지 않는 것 또한 문제이다. 트위터는 그냥 흘러가 버린다. 아무리 주옥같은 정보라 할지라도 그냥 트위터에 써 올리면 시간이 지나가버리면 흘러가 버린다. 주워 담을 길이 없다. 당신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냥 한순간 자랑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자랑하는게 좋다면 할 말이 없지만 어딘가에 기록을 해두는게 더 낫지 않은가 싶다.

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이라면 블로그라도 하나 만들어야 

만약 당신이 일반 개인이라면 또 모르겠으나 단체이거나 정기적으로 의사를 개진하는 사람이거나(나같은 사람이 해당된다) 정치인, 혹은 공인이라면 홈페이지나 블로그, 텀블러 같은거 하나 만들어서 트위터로 링크를 해서 발행하는 성의조차 하지 않는다면 실격이라고 할 수 있다.

PC통신의 추억

연배가 드러나는것 같아 그닥 하지 않은 이야기지만, 나는 상당히 어릴때부터 PC통신을 한 세대이다. 확실히 말해서 내 또래는 PC통신을 하지 않았다. 내가 PC통신을 하거나 IRC에 접속을 하면 모두가 대견하다고 여겼다. 내가 IRC에 처음 접속해서 내가 초등학생이라고 밝히자 육군사관학교에 다닌다는 분은 학교에 나오면 맛있는걸 사줄테니 꼭 나오라고 했을 정도였다.

내가 처음 PC통신을 썼을때가 1995년인가 1994년인가. 천리안을 지정점을 통해서 어머니의 지인이 대신 가입을 해주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이 통신사 저 통신사 다 가입했다. 하이텔도 가입하고 나우누리도 가입하고 유니텔도 가입했다. 넷츠고, 채널아이도 가입했는데, 유니텔에 가입했을때는 한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유니텔은 초등학생인가 미성년자는 꾸러기라는 서비스에 가입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서비스가 정말 재미없었다. 나는 천리안이나 나우누리, 하이텔을 통해 어른이 쓰는 서비스에 길들여질 데로 길들여져 있는데 ‘애들 서비스’에 가둬질 수가 없었다. 덕분에 어머니를 닥달해서 삼성SDS에 전화를 해서 들들볶아서 추가 요금과 문제가 생길 경우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감수한다는 조건을 달고서 꾸러기를 떼고 사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ID 들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도 문제가 없었던건 아니다. 파란 화면에 추억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전용 프로그램의 추억 또한 많이 있었다. 호기심이 충만했기 때문에 알록달록한 프로그램에 가지는 호기심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불법으로 깔려왔던 이야기 대신에 내가 돈을 주고 샀던 통신 프로그램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고. 그 커다란 박스를 잊을수가 없다. CD가 되면서 작아진 박스에 좀 실망을 하긴 했지만. 용돈을 모아서 산 프로그램에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생이 돈 한푼 한푼 모아서 그걸 샀는데 황태욱님은 상 안주나? (농담)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롬 데이터맨을 썼지만 그래도 마지막 버전 가까이 까지 돈을 주고 이야기를 샀던것 같다. 무료가 되기 거의 직전까지. 이야기의 설명서 몇 페이지 몇 째줄 몇번째 단어는 뭐죠라는 특이한 복제 방지 장치(?)를 풀기 위해서 서재의 수많은 책을 뒤져야 했던 추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도 이야기의 5.25″ 디스크가 있으나 아마 드라이브와 OS이전에 책이 없어서 쓰지 못할것 같다. 하하.

통신비… 천리안과 통신비는 참 많이도 나왔다. 전화료도 많이 나왔고 천리안 요금도 많이 나왔고. 아버지가 경제적으로 윤택했을 때였고. 덕분에 곧잘 혼나지 않고 잘 썼다.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오늘날 이런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지 않을까? PDA를 처음으로(Palm III를 1998년에 Cyberian Outpost에서 내 스스로 수입한게 이 때 즈음이다) 만지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니 정말로 감사한 노릇이다. 나중에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아이팩을 만지게 되니 집안의 도움이 참 커다랗다. 몸이 좋지 않아서 인생의 변화가 있었지만 이래저래 집안 도움은 많이 받았으니 버림 받은 팔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 어찌보면 신은 공평한 셈이다.

당시에 하드웨어 동호회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18세 미만은 가입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고 있었는데 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못하냐고 동호회 운영진과 천리안이었나? 까지 항의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라질. 아아. 지금으로써는 우스울 노릇이다. 게시판을 살펴보고 3메가짜리 MP3 파일을 몇분 걸려서 그것도 분당 요금내면서 다운로드 받아가며(그게 아마 음원단체의 압박때문에 그렇게 바뀐 걸로 안다, 마치 지금의 저작권 단체의 압박마냥) 들었고.

인터넷을 쓰기 위해서 인터넷 프로바이더를 따로 수소문하거나 했더랬던 시절이 기억난다. 조금이라도 빠른 회선에 접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속 회선이 통화중이면 안달이나고 회선이 연결되더라도 느리게 접속되면 속이 터지고… 흐흐 브로드밴드 세상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그때는 있었던 것. 왜 나는 그 시절을 반추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