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Archives: January 2013

비실재 청소년과 성범죄

솔직히 이 글을 써야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나는 글을 쓸 때 두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첫번째 방법은 마인드 매핑이다. 두번째는 독백강연이다. 허공에 대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서 설명하며 설득하듯이 논파하는 것이다. 이 글은 독백강연에 의해 쓰여지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걱정이 된다. 이 글이 가져올 파급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비실재 청소년은 커녕 성인이 등장하는 것 조차 본 적이 없어서. 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닌가? 유해물을 옹호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허나, 기본적으로 논리를 펴보자면, 사실 이것은 비실재 청소년 묘사와 아동 성폭력에 국한된 말은 아니다. 게임의 폭력성이나 중독, 애니메이션 속의 폭력성 등 오만가지 것들에 적용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실제로는 보지도 않는 비실재 청소년 등장물에 대해 변호를 할 수 있는 이유다. 단어나 구절만 조금만 바꾸면 바로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보호하는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아동 청소년 보호법이 시행되고 나서 우리는 극도로 제한된 세상을 살고 있다. 각종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동 포르노는 아동 성폭력의 가능성을 유의미하게 증가시킨다고 한다. 나는 아동 포르노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도 아니며, 그것을 찬성하는 것 또한 아니다. 우선 아동 포르노는 출연하는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황폐하게 만드는 커다란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동포르노그래피의 제한은 이뤄져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라고 봄직하다. 그렇다면, 아동청소년 보호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인식될 수 있는 조항’ 다시 말해 ‘비실재 조항’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일단 누구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

마법소녀와 로봇은 졸업했다. 

여기서 들어 올 수 있는 반박은 실재던 비실재던 아동 성묘사를 보면 범죄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라는 것이다. 간단하게 생각해보자, 어렸을 때 당신은 로보트 애니메이션에 흥분한 적이 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마법 소녀에 감흥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언제 그 환상에서 깨어났는가? 성인이라면 실재와 비실재를 구분할 수 있다. 그것이 실제의 아동포르노그래피와 ‘인식될 수 있는 조항’의 문제를 결정적으로 차이 긋는 점이다.

만약, 그것을 차이 짓지 못하고 성범죄를 일으킨다면, 그 사람은 두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첫번째는 욕구조절의 결여이다. 두번째는 2D(혹은 가상세계)와 3D(혹은 현실세계)의 구분인식의 결여이다. 우선 첫번째로 욕구조절의 결여는 이런것이다. 길을 걸어가다가 당신은 섹시한 이성을 보면서 성적인 매력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혹여 술이라도 취했다면 한번 객기에 헌팅이라도 시도해보려고 할지 모른다. 성적인 매력을 느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따라가서 덮치진 않는단 말이다. 두번째로 2D와 3D를 구별짓지 못한다면 역시 마찬가지로 2D나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현실 세계와 구분짓지 못하는 것이다.  솔직히 이 두가지 문제 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아서 해결을 짓지 않으면 안된다.

쉿! 구멍이 보인다.

왜? 간단하다. 가령 불법 컨텐츠 들을 막는다고 쳐보자. 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도착증’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서든 구하지 못하리란 법이 없다. 그것을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고? 간단하다. 영화나 음악을 보면 모르나? 웹하드를 막으니 토렌트로 가고 어떤식으로든 요리조리 피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심의를 무시하고 돌아다니는게 인터넷상의 파일이다. 그것을 막을 길이 있나? 인터넷에 유통되는 파일을 일일히 검문할 것인가?

아동 성도착자와 잠재적 성폭력자들 눈앞에 길을 걸어다니는 것이 아동이다. 아동은 저항력도 떨어지고… 뭐 더 설명이 필요한가? 근본적인 해결은 결국 그들을 지방자치단체나 병원등에서 치료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답이 나온다.

왜 당신은 이런 위험한 말을 하나?

헌법재판소의 심판자체로 심의 자체는 검열도, 위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기검열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의에 걸리면 불이익을 보기 때문에 심의에 걸리지 않기 위해 컨텐츠를 내리고, 표현의 수위를 내리기 시작하고 심의에 걸리지 않도록 컨텐츠를 만들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다수 선량한 시민의 표현과 향유할 자유가 위축되기 시작했다는데 문제가 있다. 사실상 이는 심의란 이름을 쓴 검열에 다름 아니다. 설령 그것이 저속한 것이라 할지라도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 따라서 만약 근본적인 다른 방법이 있고, 그것이 더 효과적이라면 심의제도에 매달리는 것보다는 다른 장치에 의존하는게 훨씬 효과적이고 다른이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옳은 길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튼 이런 전차로, 동기가 뭐가 되었던 잘못된 방법인 규제와 심의로 사람들을 자기 검열로 이끌고 있다는데는 비실재 청소년 음란물이나 앞서 말한 게임, 애니메이션 등이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중독이 문제가 된다면 셧다운제가 아니라 중독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사용 방법을 지도했어야 했고, 애니메이션의 폭력이 문제가 된다면 어린이나 청소년이 보지 않도록 부모의 지도등을 통한 방법을 강구하였어야 했다.

침묵하는 시인을 위해 대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서두에서 밝힌 바를 다시 말하자면, 나는 에로게임도 에로 애니메이션도 보지 않는다. 따라서 어쩌면 완전히 남의 얘기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 법 기준이라는 것이 워낙에 미묘하고 자의적이기 때문에 내가 즐기는 다른 작품에 어떠한 형태로든 피해가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고, 아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에 대한 발행이나 판매에 대한 자숙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 시리즈의 마지막 <도서관 혁명>(도서관 전쟁 : 혁명의 날개로 극장판 애니메이션 영화화 되었다)에서 검열제도에 순응하며 묵인하며 그럭저럭 팔리는 소설을 쓰며 살다가 자신의 책이 검열의 대상이 되어 국가의 도피의 몸이 되는 소설가는 후회하며 말한다. 이러한 제도에 암묵적으로 묵인하여서는 아니되었다고… 당장 내가 즐기지 않는 작품이라고 해서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리고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런 우화가 있다. 왕이 허락한 노래만을 부르지 않으면 잡혀간다. 다른 사람이 잡혀갈 때 구전시인은 침묵했다. 모두가 잡혀가고 정작 자신이 잡혀갈때, 그를 구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에게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글은 그래서 씌여졌다.

어떤 블로그에 전재된 글에 관해

얼마 전에 아이폰 시대의 종말에 대한 포스트를 읽고 쓴 글이 있다. 워드프레스 계열 블로그는 핑백(pingback)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포스트에 링크를 포함하면 자동으로 그 글을 썼다는 알림을 상대방에게 날리게 되어 있는데, 자연스럽게 그 원래 포스트를 쓴 블로그에도 갔다.

워드프레스는 사실 그런데 CMS(Contents Management System)이라 개인용 블로그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 명이 사용할 수도 있고 여러 명이 사용할 수도 있고, 블로그의 형태일 수도 있고 그것이 하나의 사이트의 모양을 취할 수도 있다. 나는 모바일에서 그 글을 보고 글의 초안을 작성해서 글을 써서 업로드 했기 때문에 그 사이트가 여러 필진이 참여하는 블로그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냥 좋은 글을 썼던 블로그였으니 선의로 재게재를 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던 것이다. 물론 좀 찜찜하긴 했다. 재게재라는게 걸리긴 했다. 그래서 몇번이고 내용을 고치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이쯤에서 막았어야 했었다라는 예감은 들었지만.

헌데 이 블로그의 운영자가 내 글을 보고 내 글을 재게재 해도 되겠냐고 물었는데 나는 승낙을 했다. 해서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블로그는 개인의 블로그가 아니라 여러 필진의 글을 모아서, 편집자가 편집을 해서 발행하는 블로그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을 쓴 사람과 운영자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더 불안해하며 밤새 계속 모니터를 했는데 올라오지 않았고 그 다음 아침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선 제목이 변경되었다. 내가 매기지 않은 제목이 입혀졌을 뿐 아니라 중간중간 내가 쓰지 않은 내용이 삽입되고 삽화가 들어갔다. 게다가 내용이 도려져 나간 부분도 보였다. 이건 재게재가 아니라 편집게재였다. 명백하게 허락받지 않은 사용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라이센스에서조차도 비변경조건으로만 허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히 남의 독점 저작물을 마음껏 희롱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저자의 기명 컬럼에서 저자가 쓰지 않은 내용을 올라온 당일에야 맞이하는게 말이 되는가? 글을 보고 나중에 댓글로 불쾌함을 완곡히 남기고 당장 메일로 글을 내리라고 하려는 찰나 메일로 사과하는 내용이 추후에 날아왔다. 화가 끝까지 났지만 저쪽에서 우호적으로 다가왔던 입장이고 이미 물이 엎질러진 상황이니 문제가 생기거든 내리기로 하고 일단 덮어두기로 했다.

사실 여즉 내 블로그의 글을 종이 책으로 내도록 허락한 적도 두어건 있고, 인터뷰를 실은 적도 있다. 그 때도 최종시안을 확인하고 책이 나왔었다. 그때 내가 컨펌을 하고 말고가 어땠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확인을 했다는게 중요하다. 적어도 아침에 브라우저를 띄웠을때 내가 쓰지도 않은 문장이 내 기명 컬럼으로 나온게 큰 문제 아니겠는가?

최근 그 블로그는 나름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려서 고맙다고 해야하나? 적어도 이런식으로까지 하면서까지는 좀 사양하고 싶다. 내 블로그만으로도 년 17만 PV 이상이 나온다. 자랑하고 싶은것도 아니고 유세하고 싶은건 아니지만 내 글을 무단으로 난도질 당하면서까지 영향력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앞으로 이런 류의 전재에 대해서는 확실히 거절을 할 생각이다.

갈라파고스에 어서오세요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일본의 휴대폰을 보면서 정말 눈이 휘둥그래해진 적이 있다. 세상에 우리가 이런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을때 일본인들은 이렇게 첨단의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니. 라고 말이다. 나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앞서는 휴대폰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궁리를 머리속으로 짜내 본 적도 있다. 개중에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엇비슷한 것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럴런지 모르겠지만 PC는 없어도 휴대폰 없이는 살지 못한다고 할 정도로 휴대폰 문화가 발달 해 있었다. 휴대폰으로 못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들이 쌓아 올린 휴대폰을 부르는 명칭은  ‘가라케’다(물론 신문 등에서는 종래형 휴대전화 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갈라파고스와 휴대폰의 케이타이를 합친 것이다. 방수, 방진에 텔레비전을 보고 방송을 보면서 투표를 할 수 있고, FeliCa(우리나라로 치면 T머니 칩 같은 IC칩)을 지원하면 전자 지갑으로 결제를 하고 정기권이 탑재되어서 통근할 때 전차표를 따로 지갑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이 그냥 휴대폰을 찍고 다닌다. 게다가를 지원하는 곳이라면 출입증으로 쓸 수도 있다. 카메라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을 할 수준인데…

일본인들은 일본 휴대폰은 세계 최고라고 자랑스러워 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동의했다만, 스마트폰 세계에서는 이 모든게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애플의 등장을 제2의 흑선(쿠로후네;黑船)이라고 했을 정도고, 삼성의 성장에 대해서는 대놓고 경계를 하고 있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어 하고 있다. 일본 업체들은 지금도 세계 시장에서 해메고 있고, 겨우 일본시장에서야 안드로이드라는 구세주를 만나서 ‘갈라파고스 기능’을 집어넣어서 근근히 팔아치우고 있다. 애플은 그나마 전세계 공통 사양으로 나왔다지만 삼성 같은 경우에는 현지화로 승부하고 있어서 더욱 경계하고 있다. 내수에서 외세에 야금야금 파이고 있는 동안, 파나소닉은 방수방적기능과 빌딩퀄리티를 셀링포인트로 내세워서 유럽시장에 나갔다가 그냥 처참하게 깨져서 철수해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소니 밖에 없다지만 소니의 영향력은 초라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스마트폰은 정말로 훌륭하다. 삼성 스마트폰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린다. 뭐 LG 제품도 나쁘지 않고, 기타 제품도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러나 해외 제품이 애플을 제외하고 단 한대도 판매되지 않는 시장이라는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휴대폰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에 굳이 해외 제품이 들어와서 고민할 필요가 없을까,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결과적으로 다양한 휴대폰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시장의 활력성은 죽어갈 것이고 과점업체(=삼성,LG, 특히 삼성)의 횡포는 더 심해만 갈 것이다. 휴대폰의 가격이 내려가지 않는다 라던가, 국내의 기능이 차별이 나온다던가, 해외에 나오는 모델이 한국에 안나온다던지…

무엇보다도 언제까지고 한국산 휴대폰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할 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다. 캐나다의 RIM이나 핀란드의 노키아는 한 때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메이커였다. 만약 우리나라 메이커가 리드를 놓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해외 메이커가 없는, 한국 메이커만이 남은 시장이 된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야말로 갈라파고스 그 자체가 되는것 아닌가? 아니 이미 훌륭한 갈라파고스 그 자체 아닌가?

음, 뭐 IT강국이니 모바일 강국이니 허울은 좋지만 결국 이미 우리나라 또한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린것 아닌가? 단지 우리나라가 리드를 하고 있으니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뿐…

자, 갈라파고스에 어서오세요.

덧말. 이 이야기를 예전에 트위터에 해본적이 있다. 그러자 ‘푸른곰 님은 어떤 기종을 생각하신적이 있나요?’ 라던가, ‘아이폰이나 갤럭시 이외에 좋은 기종이 있던가요?’ 같은 소리를 들은적이 있는데, 후 글쎄, 설령 지금 쓰레기 같은 기종을 내놓더라도 앞으로 무슨 기종을 내놓을지 모르는데 아예 판매 사업 자체를 접어 버리면 앞으로 좋은 기종을 내놓아도 선택지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 가령 모토롤라 모빌리티가 나갔는데 구글과 모토롤라는 ‘X Phone’이라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지만 그림의 떡이다. 그야말로 갈라파고스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의 실수

나는 2005년에서 2006년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커다란 실수를 했다. 소니가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망할 줄 몰랐다. 나는 컨텐츠와 하드웨어, 플랫폼의 컨버전스를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란 훌륭하게 성숙한 컨텐츠와 하드웨어 플랫폼을 키워낸 경험이 있고, 컨텐츠 풀도 충분한, 전자회사가 이렇게 폭삭 주저 앉을 줄이야. 오히려 일본 내부에서는 ‘중대형 디스플레이 패널 사업을 삼성에게 맡겼기에 패널 단가 하락으로 대손해를 보는 샤프 파나소닉 보다 덜 손해를 보는거다’ 할 정도로 체면이 구겨져 버렸다. 그 요인은 여러 설이 있으나 내부의 협력이 안되는 관료주의설 내부정치설 등에 지난번에 언급했듯이 소니 자체가 2012년까지 ATRAC을 포기를 못할 정도로 정신을 못차린 면도 있고…

하여, 결과적으로 말해서 나는 삼성을 과소평가했고(물론 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주변인에게 삼성주식을 있는대로 매입하고 보유하라고 했었다, 들은 인간이 없어서 유감이다) 소니를 과대평가했다. 그걸 내 거의 치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당시에 내가 삼성을 평가 절하한 이유는 하드웨어에만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였다. 아이러니하게 재빠르고 맹렬하게 전략이 되는 하드웨어를 갈아타는 것이 삼성을 오늘날의 위치에 이르게 했으니 참 이 얼마나 짖궂은가(당시에는 액정TV를 비롯한 중대형 LCD에 조금씩 열을 올리기 시작했을 때 였을 것이다, 오늘날 액정TV는 포화시장이다).

재미있게도 소니가 몰락한 컨버전스의 왕좌를 애플이 꿰차고 있는데 그 ‘소니가 못했던 일’을 아마도 스티브 잡스라는 미치광이 독재자가 일도양단으로 해치웠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참고로 그것을 보좌해서 아이튠스라는 컨텐츠 제국을 이끌은 사람이 지금 애플의 현재 온라인 서비스를 총괄하는 에디 큐(Eddy Cue)였다. 그가 앞으로 뭘할지 아주 기대가 크다). 팀 쿡 조차 ‘애플에는 사내 정치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고 스콧 포스탈이 짤렸던 이유 중 하나가 회사에서 파워게임을 하려던 게 아녔던 것 아니었나? 라는 언급이 있다.

소니가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소니에 대한 예측이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고 나서, 나는 섯부른 예측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그것이 단기적인 추측이던 장기적인 전망이던 말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어떤 기시감에서부터다. 물론 소니의 몰락의 이유가 되는 일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그 2000년대 중반 이전부터 있었고, 사유 또한 복합적인 사유에서 비롯한 것이고, 회사의 규모 또한 소니와 애플의 규모는 차이가 크지만… 왜인지 애플 또한 뛰어난 컨텐츠와 플랫폼, 스토어, 하드웨어 등의 에코시스템을 두고 있고 견실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방심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일일히 단기적인 변동이나 흐름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지는 않겠지만 팀 쿡을 비롯한 애플로써는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할 것이다.

아이폰5 가격 하락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이유

아이폰5 가격 하락 얘기가 화두에 올랐었던 적이 있었다. 뭐 그게 실질적으로는 떨어진게 아니라 어땠네 저쨌네. 말이 많은데 솔직히 나는 떨어지면 잘됐다 싶었다. 물론 내가 100만원 가까이 주고 사는 모델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기분이 좀 유쾌하진 않지만(물론 정확히 말해서 내가 산 64G 모델이 그렇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아이폰을 쓰면서 프리미엄 전화기를 쓴다고 생각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런저런 약정이나 할인을 걸면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에서는 16기가 모델은 실질적으로 무료로 쓸 수 있을때도 있기 때문에…(우리나라에서는 이것저것, 심지어 위약금3을 해도 돈을 내지않는가?) 오히려 여러 전화기를 쓰는 입장에서 보면 전화기 가격 자체가 하나같이 거품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가격 하락이 반가운 이유 중 하나는 아이폰이 그간 비쌌기 때문에 아이폰 구입을 망설인 사람들이 아이폰을 더 많이 살 수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학생이 그럴 수도 있겠다. 같은 휴대폰이라면 안드로이드는 반값이면 살 수 있는데 아이폰을 굳이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드로이드가 태반인 한국에서. 오히려 나는 저렴한 아이폰 모델이 나오면 더 어떨까 싶을 정도다. 한번 쓰기 시작한 스마트폰을 특별한 경향이 없다면 Lock in 현상이 생겨서 계속 쓰기 때문에 더욱더 그럴 필요가 있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아이폰의 가격이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중고 가격이 떨어진다거나 일부 사용자가 가지고 있는 프리미엄 이미지가 하락하는 것으로 인한 변심은 있을 수는 있지만 나는 오히려 아이폰의 저변이 넓어지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