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라덴의 죽음 그리고 라이브 블로깅 저널리즘

빈 라덴이 죽었다. 라이브 블로그가 꽃을 피웠다.

사실 IT 업계에서 Live blogging이라는 단어는 이제 그다지 생소한 언어가 아니다. Live blogging platform은 이미 여럿 출시되어 여러 현장에서 사용되어 왔다 대표적인 현장이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였다. 수년 전 까지만해도 애플은 WWDC 등의 키노트 등을 생중계 해줬으나 이제는 세계적인 폭발적인 관심으로 인해, 단념 이제 새로운 정보를 얻는 수단은 내부자에 의한 소식 뿐이었다. 물론 Wi-Fi나 무선 인터넷이 있으므로 그것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로바로 투고할 수 있으나, 기존의 블로깅 시스템은 지나치게 느리고 따라가기 힘들다. 그래서 라이브 블로깅 플랫폼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IT geek들이 사용하던 시스템들이 갑자기 최근 들어 주류 언론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아래, 뉴욕타임스의 WWDC 라이브 커버리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보다 다양한 반응에 라이브 블로깅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난리통’에서의 라이브 블로깅의 위력을 주류 언론도 이제 체감했기 때문이다. 가디언의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에 관한 라이브 블로깅은 일품이었다. 매분마다 리프레시하면서 새 글이 있는지 체크하고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띄워주었다.

뉴욕타임스는 빈라덴의 죽음 이후 9.11로 희생자를 냈던 뉴욕의 모습을 라이브로 업데이트했다.

시시각각 사태가 올라오는 때 마다 기자가 업데이트 했기 때문에 정신없이 사태가 돌아가는 상황을 리프레시하고 돌아다니면서 알아볼 필요 없이 알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실 여기서 보면 사진과 음성 등을 포함한 그야말로 ‘인터넷’ 만이어야 할 보도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뉴욕타임즈는 리포터들의 블로그를 통해서 중계가 이뤄지고 있었다. 가디언도 어떻게 이걸 활자로 옮긴단 말인가? 그야말로 웹을 위해서 만든 컨텐츠고 또 그렇게 만들어서 올린것이다.

오디오 버튼을 누르면 오디오를 들을 수 있다. 이걸 어떻게 신문에 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사실 이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기자들은 신문 기자는 신문에 싣기 위해서, TV기자는 TV에 싣기 위해서 취재를 한다. 또,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기자가 취재데스크를 거치지 않고 본인의 의견을 접할 수 있는 케이스는 ‘취재수첩’이니 같은 후기 류밖에 없으며, 단독 혹은 집단으로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운영해서 기자에게 ‘전권’을 준 케이스는 드문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왜 중요하냐. 라이브 블로깅은 본디 채팅을 발전시킨 형태였다. 그것을 좀 더 정제 가공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라이브 블로깅 플랫폼이고. 그 말은 라이브 블로깅을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투고를 하고 데스크의 승인을 받고 편집을 거쳐 올라가는 기존 신문이나 TV 방송과는 완벽하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신, 2신, 3신’… ’1보, 2보, 3보’… 기존의 언론 시스템으로는 ‘한진중공업’은 커버할 수 없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단순명료하며 명징하다. 우리는 시사적으로 여러 변혁기에 처해있다. 1신, 2신, 3신 이런식으로 ‘기사 포맷’으로 써서 갱신하고 승인받고 올리는 현재의 언론 형태로써는 현재의 파상적인 사태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한진중공업 사태에서 잘 목도한바 있다.

트위터가 있지 않나요? 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트위터가 정보의 속보성이나 전파성에서 상당히 유용성을 발휘했을지 모르나, 추적성이나 보전성이 매우 떨어지며, RT가 되다 보면 공신력 또한 떨어지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원 저작자(source)가 누락 되거나 원문이 탈락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 140자나 거기에 포함되는 사진만으로는 모든 맥락을 전달하기 부적당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운이 좋아 다 따라잡는다 하더라도 중간에 인지한 사람이 맥락을 따라잡기란 쉽지 않다. 라이브 블로깅은 처음부터 사태가 잘 정리되어 끝날때까지 시계열로 정리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 즉, 트위터는 전달하는것을 보조하는데 적합할 수 있어도 완벽하게 대체하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기존 언론도 언론 나름대로 속보성의 태세를 갖추고 순발력과 기동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행동이 필요하다. 160년된 미국 신문보다 한국의 가장 진보적인 언론이 뒤쳐져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를 비롯하여 앞으로 많은 사회적인, ‘회오리’를 일으킬만한 그리고 실시간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야할 사건이 있을 것이다. 선거, 재해, 집회 등등. 순발력과 기동성이 필요한 모든 것에 빛을 발할 것이다. 물론 예의 한진중공업과 같은 ‘불상사’는 없었으면 좋겠지만. 좋은 소식이건 나쁜 소식이건 간에 우리 또한 이런 라이브 저널리즘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위 진보 언론일수록 인터넷 언론일수록 이것에 훨씬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의 가장 진보적인 인터넷 언론도 선진국의 160년도 더 된 신문보다 더 굼떴다는 것이다.

추후 포스트에서 이 라이브 블로깅 저널리즘의 추를 이루는 신문과 블로그, 즉 ‘블로깅 저널리즘’에 관해서도 한번 의논해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