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스펙다운 – 편하게 가는 혁신 태만의 결과

휴대폰의 스펙다운 – 갈라파고스는 만들어진다 에서 과분한 인기를 받았다. 이글은 트위터나 각종 휴대폰 관련 사이트에 입소문을 타고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특히 드림위즈의 이찬진님께서 트윗을 하셔서 수많은 리트윗을 낳아, 하루동안 트위터에서 트래픽이 몰리는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호응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 이자리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엔지니어링에 관한 것이다. 엔지니어링의 혁신에 대해서 다루는 글이 될 것이다. 엔지니어링에 있어서 혁신의 방향은 크게 두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첫번째는 점증형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말그대로 어떤 골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점증형 이노베이션의 대표적인 예를 ‘황의 법칙’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회사는 이 점증형 혁신에 있어서만큼은 우등생이라고 볼 수 있다.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몇메가비트의 DRAM을 만들었느냐가 뉴스가 되었고, 삼성이 일본 업체를 앞서서 세계최초로 256Mbit 512Mbit DRAM을 만들었더라 하면, Mbit와 MB도 구분 못하는 일반 대중들한테 나팔을 불어댔던 것을 잘 알것이다. 요즘은 DRAM에서 LCD 쪽으로 옮아가는 형국이다. 몇m의 글라스에서 몇 인치짜리 디스플레이가 몇개가 만들어지는지 같은. 한국업체, 특히 삼성전자는 다시 말하지만 이 분야에 있어서는 우등상을 타도 아깝지가 않다.

그리고 한가지 다른 이노베이션의 방향이 있는데 그것은 한도형이다. 명칭 자체는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다. 개념을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를 고민하고 싶지만, 일단 개념 자체를 설명하자면 말그대로 점증형의 반대 개념이다. 예를 들어 점증형이 어떠한 목표(goal)을 향해 증가한다면, 한도형은 어떤 형태의 목표(한도)를 세우고 그것에 맞추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다. OTP(One Time Password) 발생기를 예를 들어보자, 보통 OTP는 동글(dongle)형태인데, 이것을 휴대하려면 따로 들고 다니던가, 아니면 어떤 물건에 매달아야한다. 키체인이나 휴대폰 스트랩 홀더 같은. 그러나 기존의 보안카드는 지갑에 수납이 가능하다. 번거롭게 무언가에 매달 필요가 없다. 그래서 똑똑한 엔지니어들이 카드형태의 OTP를 만들어냈다. 카드형태의 OTP는 지갑에 기존 보안카드처럼 수납이 가능하다. 값이 두배가량 비싸지만 이 카드형 OTP는 인기가 있어서 구하기 쉽지 않다.

이러한 것은 여러 군데에서 발견 할 수있는 형태의 것이다. 즉, 점증형이 어떤 수치의 상한을 깨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한도형 이노베이션은 어떤 형태나 수치, 즉 규모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운신의 폭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이노베이션은 한도를 인정함으로써, 발생하는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도형 발전은 엄연히 존재하는 혁신의 한 형태이며, 이런 혁신은 주로 고도의 창의력과 엔지니어링 능력이 요구되는 형태로 주로 구미 선진국이나 일본 업체들이 이런 일에 능하다. ‘서류봉투에 넣을 수 있는 컴퓨터’란 모토로 만든 맥북 에어는 그 엉뚱함과 말도 안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두루 회자가 되었고, 청바지의 작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MP3 플레이어를 만들겠다는 모토로 키노트에서 사람들을 경악시킨 iPod nano를 가능케 했던 것은  ‘늘 하듯이’ 대용량 플래시 메모리를 삼성에서 만들어 말도 안되는 가격에 대량 공급했기 때문이지만, 정작 그 메모리를 써서 청바지 주머니에 들어가게 MP3를 만든 애플이 세계 MP3 시장을 석권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르고 왕서방이 돈을 쓸어담는다는 말은 이럴때 쓰는것이다. 승승장구하는 iPod nano를 보면서 당시 언론은 삼성의 메모리 사업부가 한국 MP3 플레이어 시장을 고사 시키네 마네 하면서 한동안 입방아를 찧었다. 아마 삼성의 MP3 사업부는 메모리 사업부를 보면서 이를 부드득 갈았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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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od nano가 처음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나왔을때 나 혼자만 경악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나라 삼성은 메모리성 반도체는 일등을 하는데 비메모리 반도체는 늘 후발주자라는 말을 한다. 인텔의 예를 들어보자, 인텔은 무어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서 꾸준히 CPU의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여나가고 있다. 몇년전에 더 이상 집적도를 올리는것은 전기적인 특성이 어쩌구 저째서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말이 돌던때 CPU 공정이 미크론 단위였는데 지금은 nm 단위로 내려가고 있다. (수치는 자세히 기억이 안난다, 컴퓨터에 담을 쌓은지 좀 되서)

휴대폰 이야기를 하는데 혁신의 두가지 유형을 구분하여 굳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업체가 휴대폰을 스펙다운 하는 이유로써 드는 단골 핑계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스펙다운을 하는 가장 흔한 핑계는 한국 시장에 맞는 기능, 요컨데 DMB나 고해상도 액정 같은 기능을 넣기 위해서 해외 모델에 있는 어떤 특정한 기능을 구현할 여지(공간)가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 업체는 예의 점증형 혁신 모델에는  우수생이지만, 한도형 혁신에는 열등생인 셈이다. iPod nano의 예는 이를 아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내가 마지막으로 쓰던 CDP의 예를 들어보자, D-NE20이라는 형태의 CDP이다.사용자 삽입 이미지이 CDP의 경우 제조 당시 세계 최소/최박/최경량이라는 세가지 혁신을 낳은 기종이다. 케이스와 픽업, 배터리를 넣을 공간을 제외하면 하나의 군더더기가 없는 모델이다. 당시까지 CDP는 보통 배터리 지속시간의 이유로 두개의 납작한 Ni-MH 배터리를 픽업하단에 있는 컴파트먼트에 삽입하도록 만들어 졌는데,  이 기종은 두께와 크기를 줄이기 위해서 하나만을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다. 어떻게 하면 CD가 들어가는 크기를 유지하면서 작고 가볍게 만들 것인가 하는 고심이 엿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사진에는 이 CDP의 앞면이  나와있는데 이 제품의 뒷면은 그림과 같이 픽업 구동부가 있는 경첩부와 아랫측에 배터리실을 넣을 구석외에는 없다. 그야말로 CD가 들어가는 ‘한계’가 있는 이상, 가장 극단을 달린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금이야 종이 호랑이라는 소니지만, 이런 집요함과 무서움이 있는, 이런 곳에 장기가 있는 회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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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mm라는 두께의 신제품 바이오 X 시리즈, 97년 소니가 보랏빛 바이오 X505 시리즈 랩톱을 내놨을때 경악했던 기억의 기시감을 낳는다.
 이쯤 되면 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지도 모르겠다. 첨단 기술은 단순히 점증시킨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iPod nano의 예에서도 보듯이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안에서 극복을 하면서도 발전이 이뤄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다. 어떤 한계를 들어 거기서 포기하는 것은 엔지니어의 태만이요, 수치이며, 자격 미달이다. 삼성을 비롯한 우리 업계는 1류를 표방하지만 단순히 점증형 혁신의 우등생이라고 해서 1류가 될 수는 없다. 소니가 한계형 혁신의 우등생이지만 종이호랑이가 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1류가 되려면 두가지 혁신을  다 아우르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보드에 넣을 구석이 없으니까 포기하다보면, 점점 뒤쳐질 수밖에 없다. DMB를 넣으면서 기능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원칩화를 시키든 복층화를 시키든 해서 꾸겨 넣을 방안을 궁리해야한다. Wi-Fi 같은 ‘만만한’ 것을 뺐기에 망정이지 예를 들어서 모뎀칩같이 빼도박도 못할 것이 부피가 늘어난다거나 아니면 해외에서 어떤 신기술이 생겨서 무언가 지금보다 더 꾸겨넣어야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오, 쏘리 크기가 한정되어서 못집어넣었어요.’ 할것인가? 말도 안되는 변명이 될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런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는 회사와 엔지니어가 우리나라 초일류 기업이며, 그 기업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 엔지니어라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이점이 깝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