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열기로 없앤다 – 지워지는 볼펜 프릭션(frixion)

언젠가 리뷰를 할 기회가 있다면 해볼려고 했는데 여태껏 안한게 있군요. 이미 좀 오래되서 알만한 분은 아실만한 건데 Pilot의 프릭션(Frixion)입니다. 이때까지 볼펜을 지운다, 내지는 지워지는 볼펜이라는 녀석은 많이 나왔습니다만, 하나같이 시장에서도 그렇고 저 자신도 크게 만족한 제품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일단 지워지는 볼펜은 지우개로 지워지기 위해서 특수하게 사용되는 잉크가 썼을때 보기 좋지 않고, 지워지는것도 연필로 쓰는것에 비해서 불편했기 때문이고 볼펜을 지우는건 말그대로 종이를 긁거나 수정하는 것인데요. 이는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죠. 여기에 공통점은 종이에 연필의 필적처럼 배이지 않고 압착되는 것을 지우개 등의 도구로 벗겨 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프릭션은 조금 다른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열에 반응하는 감온잉크는 여러 현장에서 보셨을겁니다. 하이트 맥주캔이나 PET에보면 먹기 좋은 시원한 온도에서 색을 발하는 마크가 붙어있는걸 볼 수 있었죠. 그것과 원리는 같습니다. 볼펜처럼 종이에 스며드는것까지는 동일하지만 영하 10도에서 영상 60도 가량의 온도에서만 보여지는 잉크로, 한번 60도에 다다르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는 잉크를 사용한것이죠. 따라서 펜으로도 만족스러운 느낌입니다. 이 펜은 지워지지만, 지우개로 지울수는 없습니다. 펜축 뒤의 고무를 이용해서 문질러 지웁니다. 마찰을 통해 열을 발생해서 잉크를 투명하게 만드는것입니다. 펜축 뒤의 고무로 문지르면 ‘사라지는’ 느낌도 확실한 편입니다. 아마 지우고 나서 여기에 글을 썼는지 알기 위해서는 냉동고에 쑤셔넣거나 아니면 코앞에 두고 펜촉에 눌린 흔적을 읽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 프릭션이 활약하는 것은 보존용이라기보다는 수첩이나 일지, 노트등에 어울립니다. 특히 Frixion Biz라는 바리에이션 모델은 수첩등에 어울리는 금속제의 슬림한 몸체를 가지고 있지요. 요컨데 일정이 변경되거나 취소된다거나, 글씨가 틀리거나 할때 이전에는 수정액이나 테이프를 이용해 수정하거나 선을 그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잦다면 연필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고, 그경우에도 지우개는 필요하지만 프릭션은 펜 1개로 쓰고 지우고를 할 수 있는 점이 특장입니다. 지우개 가루가 전혀 없다는 점과 몇번이고 고쳐쓸수 있는 점도 장점이군요. 정말 감쪽같이 지워지기 때문에 증명서나 중요한 서류에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펜이기도 합니다. 쉽게 변조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중요한 서류에 반영구적인 목적으로 쓰거나 영구적인 기입까지 교정이 필요한 경우에는 이 펜으로 적어두었다가 지워두면 편리하지 않을까 싶군요.

사실 이 녀석 앞에 컬러마커인 Frixion Line, 그리고 이 녀석 이후로 Frixion Light 형광펜이 나왔는데 이 녀석들도 나름 편리해서 요컨데 마치 태그를 붙이듯이 색을 칠하고 지우고 다시 칠하고 할 수 있습니다. 응용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죠. 요컨데 암기장에서 모르는 단어에 색을 칠해놓고 완전히 외운 다음에는 색을 지운다던지, 지도에 루트를 그린다던지 말입니다.

아무튼 정말 재미있는 발상의 제품인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여러개 쟁여놓는’ 장난감중 하나입니다. 그말은 여러분도 틀림없이 흥미있는 인상을 받으실 거란 말씀이죠.

ps. 이 제품으로 지우면 뒤의 고무가 조금씩 닮습니다. 아무래도 마찰을 시키다보니 어쩔수 없다고 보네요.

iPod의 딜레마

iPod은 잘 디자인되었다. 여태껏 iPod에 대한 많은 비판은 들어봤지만 iPod이 디자인적으로 추하다는 소리를 들어본적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그 망할 디자인 때문이다. 많은 아이팟은 정말 설탕같이 스크래치에 약하기 때문이다. 떨구거나 부딪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가방이나 주머니에만 넣고 다녀도 스크래치 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아이팟 사용자들은 액세서리 회사에 돈을 지불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이제 시작이다. 아이팟은 뭔가를 씌우지 않은 상태가 가장 예쁘기 때문이다. 요컨데 요즈음 아이팟의 유리 액정이나 아이팟의 고전적인 스테인레스 경면(鏡面)의 촉감이나 곡선(contour)의 느낌은 정말 훌륭하다. 근년 경쟁사에서도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있는데, 보는 것의 측면은 물론 만지는 것의 측면에서도 고민을 해야할 것 같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가 하나 더 있는데. 소니의 경우가 그러하다. 플레이스테이션 패드의 촉감을 개선하기 위해서 출시 직전까지 원재료 배합부터 제로베이스에서 뒤집었던 적이 있다.

… 해서 결국 액정에 보호 필름 한장 달랑 냅두고 모든 보호 장치들을 벗겨냈다. 마치 스무살의 젊음처럼, 영원하지는 못할지언정 화려한 편을 택하기로 한것이다.  스위스 군용칼을 어릴때부터 좋아해서 몇개 모아두고 있는데 보면 알겠지만 빨간 수지로 만들어진 핸들부분의 멋들어진 광택은 점점 스크래치에 의해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 녀석과 함께 ‘굴렀던’ 추억의 흔적이 된다. 언제까지나 새것같은 아이팟보다는 시간의 때를 풍미하고 싶다. 그렇게 내 손을 거쳐간 아이팟이 세개째가 되는데, 아마도 이 녀석들도 같은 생각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