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스 아키텍 전기 면도기

나는 근년까지 브라운 면도기를 사용했다. 비정형의 스마트포일과 파워콤이 달린 비교적 최신 제품이다. 나름대로 깨끗한 면도를 할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제품이었다. 다만 물세척이 안되고 세정액을 정기적으로 사다가 끼워줘야 했던게 좀 불만이긴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오래 면도를 하다보면 레이저 번이 생기길래 시기도 되었겠다 날을 갈았지만 왠지 처음만큼 면도성능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고보니 내 수염의 양상도 처음 이 면도기를 샀던 3년전하고는 좀 달라졌다. 수염도 누워서 나는것이다.  

면도기라는 기계 한번 사면 몇년은 쓸 수 있다지만, 카메라나 다른 전자제품이랑 마찬가지로 매해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매해 더 나은 점을 홍보한다. 그냥 혹해서 8월달에 아키텍을 샀다. 여지껏 썼던 면도기가 전부 종주식이었기 때문에 한번 써보자는 것이었다. 로터리식은 한번도 써본적이 없으니까. 피부에 좋다는 둥 누운 수염에 낫다는 둥. 뭐 이런저런 소리가 있어서.

처음에는 개판이었다. 생각보다 안잘렸다. 게다가 피부에 맞지 않아서 벌겋게 오돌도돌 일어나고 난리가 났다.  애프터셰이브로션까지 발라가며 그냥 한 한달 가까이 꾹 썼나보다. 원을 그리듯이 가볍게. 피부의 굴곡에 따라 세개의 헤드가 들어가고 나가고를 반복한다. 요령이 생기고 피부가 좀 익숙해지자(실제로 매뉴얼과 웹사이트에 다른 전기면도기에서 바꾸거나 처음으로 전기면도기를 쓰는 경우 익숙해지는데 몇주 걸린다고 적혀있다) 서서히 만족도가 올라갔다. 힘을 주지 않고도, 큰 자극없이도 매끄럽게 면도가 됐다.  진동이 적고, 레이저 번 없이 빠르게 면도할 수 있었다. 필립스 웹사이트에는 눕거나 안으로 자라는 수염의 경우 계속 자사 면도기로 면도를 하면 나아진다고 했는데, 실제로 몇주 쓰니 많이 좋아졌고, 덕분에 면도후의 감촉도 좋아졌다. 이제는 브라운 면도기를 쓰기 위해 적응이 필요하다. 거울로 수염이 자란것을 보고 면도를 하고 나서 얼굴을 확인하고 만져보고 만족하기까지 2달이 지나고서야 감상을 적는 것이다.
 
청소의 경우도 물론 젯 클린이라는 독자적인 세정기가 있지만, 그냥 물로 헹구고 말려도 무방하다. 평소에는 물로 씻었다가 때때로 세정기를 사용한다.

본체에는 액정 디스플레이로 사용가능한 시간과 청소시기, 날 교체시기 등을 안내 해주는데 리튬이온 배터리를 내장해서 완방전에 대한 걱정을 안해도 좋다. 약 65분 쓸 수 있다. 충전은 접점을 이용한 방식인데, 브라운 제품은 커넥터가 본체에 있어서 여행시 어댑터를 본체에 연결해 충전할 수 있지만, 아키텍은 파워포드(powerpod)라는 플라스틱 여행용 케이스에 넣거나 젯클린 도크에 꽂아야 된다. 한번 면도하는데 2~3분이면 되니 짧은 여행시에는 괜찮겠지만 긴 여행시엔 은근히 휴대가 귀찮을 듯 하다. 충전은 꽤 빠르다. 아, 그리고 충전 시스템의 한계로 인하여, 당연히 방전시에 전원을 꽂고 면도는 할 수 없다. 하지만 1분간 전기를 물리면 3분간 면도할 분량은 충전되니 아쉬운대로 쓸수 있다. 그리고 브라운의 Clean & Charge(최근에 Clean & Renew로 바뀌었던가…) 시스템은 이름 그대로 충전과 세척이 동시에 이뤄진다. 하지만 아키텍의 젯클린은 세척시에는 세척만 가능하다. 특히 건조하는데 스펙상 2시간이 소요되는데 이 동안에는 충전이 되지 않는다. 뭐 어차피 아키텍은 브라운 제품과는 달리 도킹을 이용한 청소를 기본으로 상정한 제품은 아니다. 청소하라고 불은 들어오지만 물로 청소하든 솔로 청소하든 젯클린을 쓰던 상관없다. 애시당초 브라운 제품은 프로소닉이라는 작년모델부터 물청소가 되기 때문에 솔로 털던가 기계로 청소하는가 둘밖에 방법이 없지만.

조금 아쉬운 점을 하나 더 얘기하자면 트리머가 쓰기가 힘들다. 일단 쉐이빙 헤드를 분리하고 트리머 날을 빼내고, 다시 헤드를 끼워야 한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럽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일단 세척액 구하기가 브라운에 비해 쉽지 않고, 아직 새 모델이라 쉐이빙 유닛을 갈 수요가 별로 없겠지만, 쉐이빙 유닛을 파는곳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저렴한 기종이 아니니만큼 신경을 써주면 고맙겠다.

습식면도냐 건식면도냐. 논란은 많겠지만 일단 나는 아키텍으로 당분간은 결론을 내렸다. 굳이 면도 젤과 한달에 한번씩 가는 면도 날이 없이도 이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런 면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빠르고 깔끔하게 게다가 피부에 부담없이. 더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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