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d shuffle : less is more

iPod shuffle은 Less is more 철학의 정점에 있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iPod shuffle은 iPod 패밀리 중에서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저렴하지만, iPod을 iPod이라고 불리게 하는 모든것을 가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iPod shuffle에는 참고용으로 명함 크기의 사용법 종이가 따라오지만 실제로는 iPod을 충전하는 방법과 전원을 키는 방법만 안다면 사용법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제품이다. 볼륨과 곡 선택, 재생/정지가 아이팟 특유의 원형 디자인에 잘 녹아 있어 한번 익숙해진다면 보지 않고도 작동이 가능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크기는 동전 하나가 들어갈만한 크기의 사각형이다 화투장만할까? 무게는 겨우 15그램. 작동하는지 안하는지 알수 있는건 오로지 클립부분의 LED 뿐이다. 버튼을 누르거나 전원을 키면 불이 들어오는데 이때 들어오는 LED의 색이 배터리 표시이다.

iPod shuffle은 이번으로 2세대를 맞이했다. 1세대의 iPod shuffle은 이렇게 생긴 녀석이다. 크기가 껌보다 크고 두꺼웠고 아랫부분의 캡을 빼서 USB포트에 바로 꽂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크기는 더 작아졌고, 덕분에 연결할때 전용 도크가 필요하게 되어(도크와는 이어폰 잭을 이용해 접속한다 3극 3.5″ 미니플러그를 이용) 예전처럼 USB 메모리로 겸용하기는 힘들어졌다. 이 제품이 나왔을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은 MP3가 10만원보다도 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하지만 정말 사람들을 놀라게했던 것은 당연히 아무런 디스플레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인생은 랜덤(Life is random)”이라는 문구와 함께 팔렸는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과연 디스플레이도 없어서 곡을 고를 수 없는 MP3를 어떻게 쓰겠냐고 비아냥 거렸지만, NPD Group의 자료에 따르면 플래시 기반 MP3 시장의 43%를 출시 2달만에 달성했고, 한달 후에는 58%가 됐다. 그리고 1년 9개월 뒤 스티브 잡스는 1천만대의 셔플이 판매되었다고 밝혔다.

셔플은 아이팟을 주류의 사람들에게 침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값때문에 사용법때문에 크기 때문에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를 사용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아이팟 셔플에 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차츰 아이팟의 상위 모델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굳이 상위 모델을 찾지 않더라도 iPod shuffle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휴대성과 접근성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을 다운받거나 CD를 구워서 버튼만 누르면 저절로 채워지고 집어넣은 순서대로 혹은 임의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작법을 따로 알려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디지털에는 완전 초보인 우리 어머니도 iPod shuffle을 아주 사랑하셨다. 실제로 이러한 형태의 플레이어는 아이리버나 삼성등 경쟁업체에서도 이제는 쉽게 볼 수 있다. 미키모양의 Mplayer같이 말이다.

수백곡이 들어가는 요즈음의 MP3 플레이어는 필연적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잘 활용하는 편이 좋다. 미리 짜놓던 그 자리에서 짜던간에 플레이리스트가 없다면 앨범단위가 아니라 곡 단위로 통용되는 요즈음의 세상에서 앨범/아티스트/제목별 분류로는 끊임없이 듣는게 매우 피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것이다. 같은 앨범이나 아티스트 곡이 많다면 문제가 없지만 한두곡 밖에 없다면 한두곡만 틀고 멍하니 묵음만 흘리는 MP3플레이어를 경험할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음악을 그때그때 넣어 듣기보단 곡들을 이따금 쏟아붓고 듣던 곡을 계속 듣는다. 그러므로 iPod 5세대를 가지고 있지만 보통은 미리 짜둔 플레이리스트를 튼다. iPod shuffle을 쓰기에 천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넣어둔 곡을 순서대로 DJ가 된것처럼 미리 선곡한대로 틀거나 아예 운에 맡길수도 있다.  

배터리는 가끔 통학할때쓰므로 꽤 오래 간다. 스펙상으로는 12시간이지만 며칠은 맘놓고 쓴다. 음질의 경우에는 iPod 5세대와도 견주어 손색이 없다. 부담없이 언제든지 쓸수 있는 음악 플레이어가 iPod shuffle이다. 나는 iPod shuffle에 쏟아지던 비판에 항상 한마디씩 응수하곤 했다. “내 마음대로 선곡하는 라디오라고 생각한다”

일하면서 운동하면서 산책하면서 통학하면서 일일히 LCD를 보면서 선곡하는 일은 자연스런 리듬이나 흥을 깨는 일일 뿐더러 그다지 하는 일은 아니다. 한번 이어폰을 꽂고 플레이를 눌러 끝이 날때까지 쭉 듣던 CD나 테이프를 생각해보라. 오히려 어쩌면 아날로그로의 자연스러운 회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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