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촛불의 촛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볼때

촛불은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부에는 개털만큼도 영향이 없는 것 같았지만, 비록 악어 눈물일지언정 두번씩이나 대통령이 고개를 숙이도록 만들었다. 촛불은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시위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축제로 만들었다. 등등등. 좋은 수사는 다 갖다 붙여도 모자름이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다. 촛불이 우리의 일상이 되는 것이 두렵고 세파에 흔들리고 긁히고, 묻히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들불처럼 번진 6.10항쟁 21주기때의 야만스러운 콘테이너성에 응수라도 하듯 밝혀진 100만 촛불은 우리가 가만히 정권의 부당한 처사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굳이 하나 꼽자면 나올만한 ‘클라이맥스’였다.

솔직히 나 또한 기름칠한 컨테이너로 수도 한복판을 막는 처사에는 혀를 내둘렀고, 그것을 두고 시민들이 스티로폼을 쌓고 태극기를 꽂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에 일련의 감동을 받았더랬다. 하지만 혹자들은 이에 도취되어 의제를 확대하겠다는 일련의 행동을 개시했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체제 전복을 꾀한다는 우익일각의 주장은 믿지 않는다.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걱정인것은 아젠다가 확대됨에 따라 촛불의 포커스가 흐려진다는 것이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돋보기로 땡볕 아래서 검은 종이에 불을 피워본 기억이 있는가? 돋보기의 볼록렌즈가 빛을 한점으로 모아주어서 온도가 올라가 발화한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는 촛불 집회가 돋보기로 불을 붙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역량을 쇠고기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한점에 지긋이, 그리고 강렬히 빛을 모아야 불이 붙는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의 힘을 극대화 할 수 있고, 앞으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어떤 의제에도 당당하게 맞서서 분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 자신에게 주고, 또 그럴 것이라는 두려움을 정권과 일부 언론에 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촛불 집회를 주도하는 이들(글쎄, 이게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촛불집회에 있어 미디어의 발언의 주도권을 가진 이들을 이렇게 칭하자)은 의제를 늘림으로써, 돋보기 하나를 가지고 애써 모인 빛을 굳이 여러군데에 불을 붙이려고 하여, 이리저리 흐뜨러 트리려고 애쓰는 것 같다. 상수도나 의료 민영화, 공기업 매각 등등 뜻은 이해하고 담론으로 나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모두에 불을 붙이려해서는 한군데에도 제대로 불을 붙일 수 없다. 

사실 그것보다 더 걱정인것은 촛불이 일상이 되어가는 요즈음의 현실이다. 조중동 말따라 이제는 그만 촛불을 놓고 일터로 돌아가란 소리는 아니다. 연일 집회를 하고 항의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이 일상화되는 것이 문제이다. 점점 이 돋보기가 백내장 생기는 수정체처럼 피로하고 성능이 떨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찾아가는 장소에 가면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그 향취이지마는 제일 먼저 사라지는 것도 그 향취이다. 이는 후각이 쉬이 피로하여 적응하기 때문이다. 촛불을 드는 쪽에서도 이를 지속하기엔 피로감이 생기고, 그것을 지켜보는 수많은 다른 국민에게도 도로를 가로 막고 광장을 차지하는 다소 불편하고 피곤한 일상의 풍경으로 묻혀들어갈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심지어 불편감과 피로조차도 무감각해질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촛불의 의미를 민감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이 정권이 그냥 일례 행사 쯤으로 으레 치부해버릴까 두렵다.

이제 촛불의 촛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적은 수의 산발적인 시위보다는 한꺼번에 단결된 힘을 한번에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인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조금은 휴식과 충전을 취하면서 다시 힘을 보여주는 지혜가 필요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Posted

in

by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