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곰 이야기 1) 내 이름은 또미, 푸른곰 또미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여느날과 다름없는 하루였고, 그 하루는 낡은 침대에서 코를 박은 변함없는 내 모습을 확인하는데서 시작한다. 나는 열마리도 넘는 곰들의 형이고, 우리 집의 가장이다. 우리는 블루베어라는 캐릭터의 봉제 인형이고, 공장에서 우리는 ‘블루베어 봉제인형 대’ 따위의 이름으로 불리웟다. 우리 모두의 이름은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다. 그대가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싯구처럼, 우리가 이 집에 왔을 때, 그가 하나 하나 턱을 괴고 우리를 좌우, 우아래로 살펴보고선 고심끝에 손뼉치며 정했던 이름이다. 이제 너는 또미라고. 그렇게 한마리 한마리씩 늘어난 ‘또미’가 이젠 열마리도 넘게 되었다. 긴 이름을 가진 식구는 일곱자나 되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체로 우리들의 이름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이를테면 큰 또미는 작은 또미보다 커다란 또미고, 왕큰 또미는 정말 커다란 또미이다. 그런식으로 나는 작은 또미보다 더 작다해서 작은 작은 또미, 그걸 줄여서 작작 또미가 되었다가, 경음법칙에 의해서 짝짝또미가 되었다. 나보다 더 작은 또미는 지금은 없다.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잠재적인 또미들을 더이상 만들어 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때 그는 상당히 실망했다. 아마 그들이 블루베어인형들을 만들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식구는 더 늘지 않을 것이고, 나보다 작은 또미는 생기지 않을 것이며, 또 같은 연유로 나보다 큰 ‘동생’들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처음에 또미라고 불리웠다. 그러다가 나보다 큰 또미가 들어왔고 나는 작은 또미가 되었고, 새 또미는 그대로 큰 또미가 되었다. 그때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또미가 세마리가 네마리가 되고 그러자 그는 한 마리 한 마리를 데려 올 때마다 골머리를 앓았다. 11년전 크리스마스 이브, 그가 우릴 끔찍이도 아끼던 동생을 위해서 선물로 나보단 크고 큰 또미보단 작은 새 또미와 나와 큰 또미를 합친것보다도 더 큰 또미를 데려오자, 그는 재치를 살려서 나를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대신 그 또미에게 작은 또미란 이름을 주고, 비슷한 식으로 더 큰 또미는 큰큰또미가 되었다.

난 행복한 걸까? 그는 우릴 가끔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슬프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저 그를 향해 바라볼 뿐. 그에겐 미안하지만, 그걸 대답할 수 있더라도 나도 그거에 대한 대답은 잘 모르겠다. 난 올해로 열살이지만, 예순 살이 되면 대답할 수 있을까? 어찌됐던, 그가 나를 품으며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내 친구이자 주인으로써. 그의 곁에 있어서 행복하노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만약 단한마디라도 내가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다면 그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 전까지는 요행을 바랄 뿐이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가 행여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안전하게 해외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 씨티은행 국제현금카드

재미있었습니다. 준영이가 권해준 국제현금카드는. 일단 간단하게 말하면… 세계 약 30개국의 시티은행 ATM에서 뽑을 경우 수수료 전혀없이 인출가능하다는것이죠(4/1자로 1000원 수수료 발생). 왜냐면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국제 현금카드(Cirrus나 Plus에 가맹한 카드)의 경우에는 은행에 따라서 0.8~1%의 가맹 수수료와 ATM수수료가 2~3불 더 들어갑니다.

그래서 조사해봤더니… 미국에서 뽑을경우 전신송금할때 환율에 1000원이 더해지는 것이고, 일본 등 삼국에서 뽑을때는 Interbank 기준 환율로 미국달러로 환산한뒤 다시 원화 전신 송금 할때 환율에 1000원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일본을 갈때 50만원가량을 현금으로 가져가고 나머지 100만원은 현금카드를 사용할 작정인데, 현재 기준환율은 10000엔에 100.343불가량. 따라서 100만원은 1003.43불. 이것을 전신환 매도율(997원)로 계산하면 1,000,419원, 여기에 수수료 1000원을 붙이면 1,001,419원이네요. 현금으로사면 1,013,000원으로 11581원 차이가 납니다. 만약 Plus 가맹 ATM에서 찾을 경우에는, 1,010,917원이네요.(가맹 수수료 0.85%, ATM Fee 2$ 기준, 제 신한은행 Plus카드는 1%였는데 이 경우, 1,012,417원)

미국에서는 그냥 달러 전신환 매도율 997원에 달러화를 곱한 뒤 천원을 덧붙이면 되니까, 예를들어 100불을 찾는다면 99700원에 1000원 수수료를 넣어 100,700원이네요. 현금으로 사는 경우에는, 105,000원이군요. 근데 금액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득입니다. 예를들어 500달러는 499,000(수수료 포함)원 대, 525,000원, 1000달러를 인출하면 997,000원(수수료 포함) 대 1,050,000원입니다. 만약 시티은행이 아니라 일반 Plus ATM에서 뽑으면, 100불에 102,541원이군요.
 
미국은 말할것도 없고, 일본 도쿄에는 꽤 많은 시티은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티은행이 있는 국가로 가는 경우에는 TC와 더불어 매우 편리한 환전 수단이 될 것 같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시티은행이 없는 유럽국가 등에 가더라도 Plus로 뽑을수가 있는데 500유로를 뽑는 다고 가정할 경우, 790,391원(0.85% 수수료, ATM Fee 2$ 기준)이고. 현찰로는 794,880원이라… 약소하지만 저렴한 편입니다.

제가 발견한것은 이것입니다. 어떤경우에서든 한번에 찾는 금액이 많을수록, 실질적으로 원화환산금액은 현찰구매시보다 더 저렴하다는 것이죠. 저렴하고 말고를 떠나서… 일단 안전하다는 점이 있습니다. 현금처럼 도난의 염려도 없고 ATM은 어디에나 있으니 편리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현금을 인출하는것과 마찬가집니다. 수수료가 있으므로, 적당한 양을 예측해서 뽑아야 하죠. 뭐든 쓰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재미있네요.

여권 디자인 – 수정

앞서 포스트를 포스팅 한 이후, 여러 친구분들에게 디자인을 보여드리고 나서 고민을 했는데. 그 결과 몇가지 새 수정안이 떠올랐습니다. 일단 여러 사람들께 보여드리고 가장 무난하다 라고 결정난 디자인은 이것입니다.?


여권 디자인, 디자인 김한솔, 일러스트 장준영 (C)2008 김한솔
여권 디자인, 디자인 김한솔, 일러스트 장준영 (C)2008 김한솔
일단 이게 가장 좋은 평을 들었습니다. 전에 올린것에서 글자 위치를 바꾸고 Alignment를 바꿨으며, 태극괘의 비율을 비교적 5:5로 분할했습니다(목측이라 정확할런진 모르지만).?

그 다음은… 으음.. 틀림없이 일러스트레이터에서는 일렬인데 JPEG로 옮기자 좀 이상하게 틀어져 보이는데… 이 미묘한 언밸런스가 왜 나오는건지 전혀 모르겠네요 암튼 대충 참고하시라고 보여드리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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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디자인, 디자인 김한솔, 일러스트 장준영 (C)2008 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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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디자인, 디자인 김한솔, 일러스트 장준영 (C)2008 김한솔
쩝. 뭐 이것도 역시 시간에 쫓겨 만들어 좀 엉성합니다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컨셉 자체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습니다. 이렇게 제가 3월을 시작하면서 시작했던 프로젝트를 마칠수 있게 되었습니다. ㅎ?

전자여권을 계기로 하면서 여권을 다시 디자인 했으면 하는 바람

스위스 하면 어떤색이 떠오르십니까? 아마 선명한 붉은색이 떠오르실 겁니다. 스위스 국기와 스위스 아미 나이프의 색깔이라서 마치 코카콜라의 색을 붉은 색으로 기억하듯이, 스위스에 대한 색 또한 자연스럽게 붉은색으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태극기입니다. 붉은색과 푸른색, 그리고 흰색이지요.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 운동복만 해도 알 수 있죠. 다만, 숙적 일본이 푸른색을 전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까닭에 푸른색은 배제되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우리나라의 색이 이 삼색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002년 이후로 우리나라의 태극기는 단순히 국기를 넘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국기앞의 선서로 대표되는, 엄숙주의의 상징이던 국기가 망또로, 두건으로, 치마로, 쉴새 없이 응용되었습니다. 덕분에 이제는 누구도 우리나라 태극기를 과거처럼 엄숙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 최초의 태극기의 원형이 발견되었다지요? (이글은 3월 초순에 작성되었습니다 ; 주)우리에게 있어서 태극기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이렇게 늦게 타국에서 발견된 것이 솔직히 안타깝습니다만 그만큼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태극기의 위상은 공고히 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에 여권을 받으면서 여권의 디자인에 궁시렁 거렸습니다만, 제 불만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과연 녹색과 청색(관용), 검은색(외교)여권이 우리나라의 색을 충분히 드러내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스위스 이야기를 한것은 스위스 여권의 디자인을 보고 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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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ss Pass 2006 (from Wikipedia)

이것이 스위스가 도입한 2006형 여권입니다. 2003년에 새로이 디자인 한 여권에서 생체정보(biometric)을 담은 개정형입니다. 스위스의 버건디색과 십자가의 하얀색과 엠보싱처리된 십자가 모양이 인상적입니다. 국기의 변형이라… 그것에서 착안해서 스케치를 시작했고 친구인 장준영군이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려주었습니다. 여기서 사의를 표하면서 여러분께 한번 보여드리고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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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여권 Designed by 김한솔, Illustrated by 장준영.

제 목표는 간단했습니다. 여권을 꺼냈을 때, 이 소지인이 여권을 꺼내면 한국인이라는 것을 수미터 바깥에서도 척보면 알 수 있을 정도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문양도 그렇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 보아도 칙칙한 녹색은 한국을 대표하는 증명서의 표지색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음과 양의 조화과 화합을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관용이나 외교 여권은 색이 다르다고 알고 있고, 실제로 스위스 여권도 종별에 따라 컬러가 달라집니다만… 종류에 따라서 태극기의 색을 바꾼다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띠(stripe)를 그리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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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여권 Designed by 김한솔, Illustrated by 장준영. (C) 2008.
이렇게 말이지요. 일반여권에 말그대로 색을 넣은 띠를 넣어 구분하는 것입니다. 마치 일본 공책 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태극 모양은 유지하면서도 종별을 쉽게 구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생각을 처음한게 3.1절 때였고. 일러스트를 부탁한 장준영군이 사정이 생겨서 거의 4주가 지난 이제야 부탁한 일러스트를 받아 포스트합니다. 준영군이 바빴던 관계로 사실 몇가지 고쳐야 할 점이 보입니다만 차마 그걸 부탁할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았습니다. 일단 스위스 여권처럼 글자를 우측정렬하면 보기 좋을 것 같군요. 그리고 태극의 비율이 약간(slightly) 안맞네요. ICAO biometric 로고도 글자와 어울림이 좀 안맞네요 좀 우측으로 가면 좋을텐데.  그것도 좀 바로잡아 생각하시면 좋겠고. 글씨체는 임의로 선택했습니다만. 멋진 서체를 임의적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전 그냥 신 지폐들의 고딕이 맘에 들어서 그걸 의도하고 부탁했습니다. 영문서체도 역시 모던한 고딕 계통이 좋겠다고 해서 골라진것이구요. 글자크기도 좀 키우는 편이 나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여권 / Republic of Korea Passport 이런식으로 적어도 나쁘진 않겠지요. 그러면 하단에는 ICAO biometric 로고만 남습니다. 이것도 심플하니 괜찮을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3.1절에 태극기를 휘날리던 선열의 모습을 생각하며 디자인했습니다. 전자여권으로 8월달에 바뀐다죠. 이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후 위키피디아를 이잡듯 뒤져서 십수개국의 여권을 살폈지만, 2색을 도입한 여권은 없습니다. 스위스 여권처럼 전위적인 여권도 없죠. 제 아이디어는 무난한색에 국장과 국명을 적는 여느 여권 표지 디자인에 비해서 약간은 아방가르드한 감이 있지만, 확실히 재미있는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부그럼을 무릅쓰고 여러분께 선뵈입니다. 위키피디아를 보니 이런 말이 있더군요. Henley & Partners 란곳에서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권은 Henley 비자 제한 지수 115라고 합니다. 이말은 한국 여권 소지자가 115개국을 무사증 혹은 도착사증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세계에서 11위에 해당하며,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싱가폴 다음가는 수치입니다. 우리 여권은 이만한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 어디에선가 우리 국민이 태극기가 그려진 여권을 자랑스럽게 펼칠 수 있는 날을 그려본다면 오버일까요?

도려져 나간 내 추억의 장소.

커피나 마실까. 양손에는 서점에서 산 책이 바리바리 들려 있었고, 아직은 찬 날씨에 몸을 데울 겸, 산 책을 찬찬히 살펴볼 겸 익숙한 발걸음으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여러 사람들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면서 왁자지껄할 수원역 스타벅스로.

정확하게 그로부터 일주일전 나는 역시 수원역에서 볼일을 보고 있었고 주체할 수 없이 늘어난 지출로 스스로를 질책하며 수원역을 빠져나왔다. 그렇지만, 나는 이미 엄청난 지출을 책과 DVD, CD를 사는데 해버려서 학을 뗀 나머지 커피는 커녕 물 한모금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곳을 얼른 떠버려서 집에 돌아와야겠다는 생각 뿐.. 몇년간 그래왔듯이 항상 불을 밝히던 스타벅스의 사인과 사람들로 가득찬 매장안 그리고 이젠 몇 안남은 내가 아는 ‘파트너’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커피는 다음에.’ 라고 하고 지나쳐버렸다.

에둘러 말했지만, 그게 내가 스타벅스 수원역점을 본 마지막이었다. 내가 수원역을 다녀가고 나서 며칠 뒤에 그곳은 헐렸고, 내가 그 다음으로 갔을 때는 준비중이라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내부를 안보이게 막아 놓았었다. 나는 기가 막혀서 위에서 스타벅스를 볼 수 있던 위층으로 올라가 봤더니 이미 카운터와 쇼케이스가 뽑혀져 나갔고, 의자를 비롯한 가구들은 전부 치워졌으며, 예전에는 관계자외 출입금지라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 하지 못했던 칸막이 뒷편의 부분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휑하니 드러난 빈 공간에는 음료가 나오던 곳을 밝히던 램프가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었다.

나는 착잡한 마음에 기운이 쫙빠져서 들고있던 책봉투를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숍 하나, 그것도 지극히 상업적인 커피숍 하나가 사라져버렸다지만, 내게는 단순히 커피숍 하나가 아녔다. 왜냐면 그 장소는 내 응접실이었기 때문이고, 그곳은 내 인간관계의 허브였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먹었을때가 기억난다. 2000년대 초엽이었고, 그 맛은 쾌히 좋지는 않았다. 아마도 설탕이 잔뜩 들어간 매일유업에서 나온 카페라떼를 기대하고 먹었기 때문이리라. 장소는 코엑스에서였다. 내가 본격적으로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건 2002년 동수원 뉴코아에 생긴 스타벅스에서 모카를 먹으러 가면서였고, 2004년부터는 수원역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특히 졸업을 앞두고 있던 2004년 후반부터는 거의 나는 스타벅스에 ‘출근’하곤 했는데, 학교가 일찍 끝나면, 나는 수원역으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와서 한가한 오전의 스타벅스에 자리잡고 베이글과 커피로 끼니를 때우면서 몇시간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오후 즘에 귀가하곤했다.

나중에는 친구도 데려와서 같이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었는데, 장소는 역시 스타벅스였다. 나는 매일같이 카페모카 그란데를 마셔댔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한창 맛들인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수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그중 상당수는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볼 수 있다. 일촌 공개지만… 아무튼 중요한건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들을 스타벅스에서 찍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님은 내게 지출에 있어서 무척 관대했고, 그 관대함은 후한 ‘커피 인심’과 식사 대접으로 이어졌다. 그 소문으로 많은 친구들이 수원역을 지날때 유난히 도드라지는 내 모습이 있는지 한번 쓱 훑고 지나가곤했다. 생각해보라 한잔에 4000원하는 커피와 시간만 잘 맞춘다면 식사도 해결 할 수 있다. 나는 그 시간에 정말 많은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나눴다. 몇탕을 뛰기도 해서 나는 하루에 많게는 서너잔의 그랑데를 비워서 속을 버리고 잠을 설친적이있었다. 우스개 반 진담 반으로 커피값을 아끼면 자그마한 집을 월세로 얻을 수 있을 정도로 커피를 마셔댔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스타벅스는 내 응접실이었다. 나는 안산에 살았고 친구들은 수원에 살았다. 친구들을 만나려면 수원에 가야했고, 수원은 안산보다 대도시였기 때문에 내가 찾는 물건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틈틈히 수원을 가곤했다. 잘은 모르겠다. 장소를 생각하는게 귀찮지 않았을까? 내가 스타벅스에서 죽친 이후로, 내가 수원에서 누구를 만나기로 하면, 당연히 그 장소는 수원역 스타벅스였다. 나는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하는 나름대로 자랑할만한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커피를 한잔 시켜서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고, 시간이 되어 사람이 만나면 얘기를 좀 나누다가 근처에서 뭘좀 먹고 술 한잔 걸치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꽤 많은 사람들과 만났다. 누구누구는 불만이 좀 있었던걸로 안다. 하지만 내가 편리한 장소가 약속 장소가 되었다. 수원의 번화가라면 남문도 있고, 동수원쪽도 있지만, 내 친구들은 동수원에 살지 않았다는 점과, 내가 거기까지 가기가 힘들었고, 돌아오기도 힘들었다. 불만이 있더래도 어찌됐던 청구서는 내가 냈으므로 거절할 명분이 없단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싫다면 안나오면 그만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누구누구는 ‘푸른곰의 여자’라고 불리는 누가 보아도 매력적이었던, 내가 짝사랑했던 여성들은 태반이 스타벅스에서 만났고, 스타벅스에서 얘기했고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짝사랑했던 사람 중에서 단 한명만이 나와 앉아서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언제 커피나 한잔 하자고 약속했었는데 아직까지는 약속뿐이다. 애석하게도. 그러므로 내 청춘사에서 잊혀질래야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이 깃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혹자는 상술로 표현하지만, 스타벅스의 ‘파트너’들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나와 내 친구 장쯔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수원역 스타벅스 방문을 좀 뜸하게 되자 많은 파트너들이 바뀌어서 아는 얼굴이 몇 안되게 되었지만, 한때는 점장이하 모든 파트너의 이름을 꿰고 이야기를 나누던 적이 있다. 물론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그들도 내 피사체가 되어주었다. 나는 두명의 파트너가 정직원이 될때 제출하게 되어 있는 추천서를 정성껏 작성해주었고, 그 유능한 두 사람은 정직원으로 영전하여 다른 점포로 발령받았다. 개인적으로 무척 아쉽다. 아직도 그 중 한명과는 연락이 닿고 있다.

또 특기 해야할 파트너는 안용준님인데, 미소년틱한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이다. 군대를 다녀오기전에 한동안, 그리고 전역후에 죽 스타벅스에서 일했는데, 처음 봤을때는 그는 앳된 얼굴에 미모를 자랑했기 때문에 내 친구 중 한명이 ‘깜찍이’라고 불렀고, 한동안 그는 ‘깜찍이’라고 불리웠다.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게 됐고, 내가 찍은 사진을 싸이로 가져가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잘 알게됐다. 네이트온으로 이야기하기도하고 한가할때 카운터 너머로 얘기하기도 했다. 내가 짝사랑으로 고민할때도 그도 고민중이었고, 인생 선배로써 몇가지 조언을 해주곤 했고, 소주나 같이 마시자고 하곤 했다. 복무중에 편지를 한 두통 보내기도 했었다. 그와는 스타벅스 수원역점이 철거 당한 지금에도 연락이 종종 닿는다. 소주를 같이 한잔 하자는 3년전의 약속을 한번 이뤄보는게 개인적인 소원이다.

이렇게 잠시 생각해본 추억이 이만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 모른다. 나는 운과 타이밍, 그리고 기술이 복합적으로 요구되는 단 두개의 녹색 벨벳소파를 차지하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타날지 모르는 내친구들을 기다리며 책과 신문을 보고 글을 썼으며. 친구들은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찾아 이곳을 오곤 했다. 스타벅스 수원역점의 상실은 단순히 앉아서 커피를 마실 장소가 사라진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짧은 인생의 한동안을 차지하던 의미있는 장소가 사라져버린 것을 의미했다. 당장 길을 건너서 매산로에 있는 생경한 스타벅스를 이용하라. 이런 불편은 차라리 경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언제나 거기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향 집이 헐린 충격에 비하면 말이다. 당장 헐리기 며칠전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든가. 안용준님과 얘기를 하면서… 나는 후회스런 어조로 말했다. 거기 있는 벨벳소파에 앉아 카페 모카 한잔만 더 마셨으면 좋겠다고….

아마도 임대료 혹은 스페이스 사용 문제로 인한 교섭 트러블일 것이다. 다음에 또 수원역에 가보니 그곳에는 싸구려 옷가지를 파는 매대들이 들어선 ‘행사장’이 들어섰다. 겨우 몇개 묶어 얼마 이런 식으로 떨이하는 물건을 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 헐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자 떨떠름해졌다.

혹시나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말하건데, 매장을 임대하는 이든 임대 받은 이든 점포 철수는 입점보다 몇갑절 더 신중해야한다. 나처럼 그 점포와 그 브랜드를 믿고 애용하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무감각하지만, 옆에 나라 일본에서만 해도 인기를 얻던 물건은 쉽사리 없애지 못한다. 같은 모양의 수첩이나 노트, 필기구가 수십년씩 나오는게 예사다. 인기가 없어 망했다는 베타맥스도 시장에서 결착이 난 다음에도 완전히 생산종료할때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만들고 너무 쉽게 없앤다. 이 물건 좋은데? 싶어서 알아보면 이미 내가 찾는 종류의 물건은 단종되어 버리곤 한다. 슬프게도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곰인형도 마찬가지다.. 이젠 생산이 종료되어서, 2004년에 들어온 ‘친구’들이 아마도 가장 젊은 친구들이 될 것이다. 명품과 명소라는게 생기는 과정을 생각해보라. 몇십년 몇백년 전통을 자랑하며 프리미엄을 받는 서양이나 일본의 브랜드들과 몇년도 안가는 우리나라 브랜드를 보면 아직 우리나라 브랜드는 전체적으로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덜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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