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한다. 나는 '배제당한 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제2국민역이다. 병무청에서 조회하면 나는 선병자원이 아니라고 나온다. 병적증명을 떼면, 제2국민역으로 편입되어 군복무를 마치지 않은 사람란에서 모든 기록이 멈춰있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몸이 안좋은 까닭에 학교도 졸업일수 맞춰서 겨우겨우 졸업했고, 고등학생때부터 지금까지 입때것 2주일에 한번씩 대학병원을 다니고 4단 서랍장을 마련해서 아침에 먹을약, 점심에 먹을약, 저녁에 먹을 약, 취침전에 먹을 약을 나눠서 먹지 않으면 헷갈려 약을 먹지 못할 정도이다. 통원치료(검사비 제외)로만 의료비 총액이 연간 기백만원이니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신경과, 순환기내과, 소화기내과, 안과 등등. 거기에 2년의 시간 여유라는것도 휴학 2번하면서 쉬느라 다 까먹어버렸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거듭 나빠져가니 그걸로 끝나지 않을 예감이다. 게다가 면제자는 당연히 취직에서 군필자가 받는 2년의 연령 제한 연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어떤면에서는 마이너스다.
... 해서 서류를 제시하자 몇가지 문답끝에 면제를 받았다. 말이 서류지, 문서 덩어리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병무청에서 판정을 내렸을때, 나를 판정한 사람은 기백페이지가 되는 내 기록지와 검사결과를 훑기에도 바빴다. 그냥 훑어보고는 힘드지 않냐고 묻기에 보다시피 지금 보는 과만 해도 대학병원을 2주일에 한번씩 다니고 등등 대충 대답은 그랬을 것이다. 혹자는 속여서 면제를 어떻게 받았는고 하지만 나는 판정을 받을당시까지 7년을 치료를 받았고, 처음 진단서를 낸 이후로도 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치료를 받고 있다. 지금이라도 치료 여부를 재검증 받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가서 제시할 수 있다. 악화되면 됐지 개선되지 않은것은 사실이니까.
군대에 갔던 친구들 셋과 오랜간만에 만나 이야기 했다. 그냥 일대일 대면을 했으면 이런 저런 세상일과 군대 생활 얘기하면서 보낼터인데, 애시당초 미필자 하나와 군인들의 대화라는게 제대로 돌아갈리 없다. 이야기는 전부 군대 이야기. 뭐 놀랄것도 없고, 나쁘게 보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민간인'과 '군인'은 말의 주제나 생각하는 방법이나 모든게 다르다. 특히 군대에서 적응을 한 친구들을 보면 마치 한바탕 풍파를 겪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전혀 다른 지역에서 전혀 다른 병종과 계급으로 일하는데 일관성과 일체감이 느껴질 정도로 생각이 똑같다는 것은 개인적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비극이 아닐수 없다. 그 일관성이 층을 만들어냈다. 마치 에스프레소 위에 생기는 크레마처럼. 나는 위에 분리되서 둥둥 떠있고 세사람의 보디가 데미타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것이다.
아버지께서 병무청을 가기전에 나를 부르시면서 말했다. 정말 면제를 받아야 하는것일까라고. 그냥 공익이라도 해서 가는게 낫지 않을까라고. 나는 대답했다. 내가 아프지 않은곳을 아프다고 하는 것도 아니니, 부르면 갈것이지만, 오라는데 안가는게 아니니 괜찮다고. 어리석었던 것일까.
나는 결국 말에 끼지도 못하고 혼자서 소주병을 기울여 잔을 몇잔 삼켰다. 예전에는 혼자 한두병을 오롯이 마셔도 그냥 기분이 좋을 정도였건마는, 그날따라 몇잔만 마셔도 기분 나쁜 어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몇잔을 그렇게 들었을까. 해가 기울때 자리잡은 창가에서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때까지 앉아서 말없이 나랑 전혀 다른 세계 이야기를 들으며 창을 보다가 완전히 화두에서 이탈했다는걸 확인했을 때즈음 중간에 자리를 일어섰다.
외치고 싶었다. 내가 안가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고. 내가 죄를 지어서 안간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오지 말라기에 오지 않았던 것 뿐. 2년의 시간이 있다지만 어차피 몸이 아파 휴학을 두번하고도 계속 나빠질 뿐이라, 한번 남은 휴학도 써버리면 그때는 공부는 접어야 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라고... 결코 공짜로 남들 고생하는데 빠진게 아니라고.... 면제를 받고 얘기 할때는 씁쓸하게 웃으며 "이제부터는 국가가 공인한 병신이구나." 라고 농담을 던지자, 그런거는 아니라고 했던 친구들이, 입대하고 첫 휴가 나와서 "그렇게 고생하는데 나는 참 이러고 있으니 미안하다"고 하니 '몸이 그러니 어쩌겠냐'면서 건강이나 생각하라고 이해해주었던 친구들이 아니었던가. 더 이상 죽상으로 내가 죽쳐봐야 분위기나 망치겠구나. 그때즈음. 아침부터 위산이 역류해서 구역이 나오는데, 신물을 삼키듯이 갑자기 서러워서 터지는 눈물을 삼킬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안좋다고는 일어서서 먹은 값하고 술값은 내고 갈테니 마저 놀다가라고 하고는 입하나 대지 않은 음식값과 몇잔 삼킨 소주값을 계산하고는 식당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하고는 택시를 타고 마치 소주 몇병을 나홀로 마신것처럼 쳐져서는 돌아왔다.
택시에서 내리며 택시비를 치르고는 전봇대 근처에 서서 친구들 집에 전화해 인사하고, 행여 걱정할세라, 잘들어왔다고 전해달라고하고는 끊고 한동안 집의 계단 하나를 오를 기운이 나지 않아 슈퍼에 가서 소주를 하나 사서는 난생 처음 깡소주를 마셨다. 가게에서 경월을 사서 집쪽으로 향하는데 어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소주를 병째 들이키며 축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소주로 목이라도 적시듯 마시고는 마개를 닫아 들고 있던 서류가방에 남은 소주를 넣고는 비틀비틀 갈림길에서 갈라졌다. 왠지 나도 그렇게 마셔보고 싶었다.
그 다음날 애들이 일제히 돌아가는 날, 하나같이 아쉽다고 좀 미안했다고 얘기했다. 거기에 차마 매정한 소리는 못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았듯이, 그네들에게도 죄가 없다. 나는 나라가 부르지 않아서 서러웠을 뿐이고. 그네들은 나라가 그네들의 청춘속 2년을 징발해나간 게 죄라면 죄일 테니까. 솔직히 나도 좀 섭섭하게 생각했던걸 반성하고 있다. 말은 안했지만. 동생에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말해졌다. 우리 자손 때에는 통일이 되서 우리 자손대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노라고. 동생 녀석은 뭐가 뭔지 모르겠단 반응이다. 정확히는 그러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냔다. 요즘애들은 영악하구나(나랑 동생은 6년 터울이다)... 어찌됐던 그 술자리 전에 찍었던 사진을 나눴다. 사진은 참 잘 나왔구나 이때까지만 해도 참 즐거웠는데... 그리고 나중에 그중 한 친구의 홈페이지를 보니 내가 나왔던 1차 이후에도 화려하게 놀았나보다. 나도 그 자리에 있고 싶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건강하지 않은게 죄인걸까? 아픈걸로 모자라서 벌을 받고 있다라는 생각을 하자 다시 소주가 간절해졌다.
ps. 앞으로 이게 차별의 시작이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슬프다.

